열쇠 없는 꿈을 꾸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12월
절판


예의를 지키고 싶을 뿐인데, 한번 빈틈을 보이면 어디까지고 파고들려는 태도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82쪽

서점에서 잡지를 본 나는 몸 속에 작은 불꽃이 켜진 기분이었다. -191쪽

네 부모도, 누나도, 너를 둘러싼 환경은 너를 얼마나 아름다운 막으로 감싸주고 어리광을 받아주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현기증이 났다.-193쪽

"먼저 차서 미안."
그 말을 들은 순간, 전화를 받은 게 분했다.
갓 배운 단어를 잘못 쓰는 아이 같았다. ‘차다’라니, 내게 일어난 일은 그렇게 간단하고 깜찍한 일이 아니었다. 나를 덮친 것은 좀 더 다른, 격렬한 그 무엇이다. 상실이다.
내가 지금껏 사귀어온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 사람이 실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갈피를 잃었다.-194쪽

나는 이미 아무것도, 청결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동경하는 것도 두번 다시 손에 넣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꿈을 꾸는 힘은, 재능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아무 조건 없이 정의를 믿을 수 있는 이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의심 없이, 정의를 믿는 일, 그 정의를 자신에게 강요하는 일이다.
그것은 수조 속에서만 살 수 있는 관상어 같은 삶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깨끗한 물을 바랄 수 없다. 이제부터 손에 넣을 물은 분명 조금이라도 진흙이 섞여 있을 것 같았다. 숨이 막혀도, 나는 그 물을 마시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203쪽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로 유다이의 얼굴을 꽤나 변했다. 예전처럼 순수한 젊음과 아름다움은 자취를 감추었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그 자리에 필사적으로 머무른 자만이 갖는 피폐한 미숙함이 표면에 드러났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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