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디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이 말해준 것들
리사 나폴리 지음, 김유미 옮김 / 수이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잠깐밖에 머물 수 없어 갈까말까 망설이던 파티에 잠시 들렀다가 한눈에 반할만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가 가이드를 해줄 테니 함께 부탄에 가자고 권한다. 가고 싶은 맘 굴뚝같지만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포기할 만한 용기는 없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이 남자가 부탄에 와서 새로 생긴 라디오 방송국이 자리잡게 도와달라는, 경력상으로도 솔깃한 제안을 해온다. 그래서 직장에서 6주간의 유급휴가를 (놀랍게도) 어렵지 않게 받아 부탄으로 날아간다. 가는 길은 멀었지만, 부탄에 발 딛는 순간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굴러간다. 소꿉장난하듯 소박하고 순진한 나라라 라디오 방송국은 뭘 해도 화제 만발에 대성공이고, 외국인은 어디를 가나 대환영에 특별 손님 대접이다. 교류하는 사람들도 남달라서, 공주랑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고, 국왕의 동생은 지나가다 길거리 카페에서 만나며, 외교부 장관인 집주인에게 초대받는 식이다. 중간에 의도치 않게 멋진 남자도 소개받고, 외국인들이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아가며, 방송 덕분에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의 현지인을 만날 기회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남들은 여행자세금을 하루에 200달러씩 내며 수천 달러를 들여야 겨우 볼 수 있는 부탄을, 저자는 거저 초청받아 가서 간단한 일들을 도와주며 속속들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이런 판타지 같은 줄거리가 읽는 내내 전혀 거슬리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저자의 절제된 글솜씨와 균형잡힌 시각 때문이었다. 저자는 40대 초반의 미국 여성으로 CNN, 뉴욕타임스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곳에서 일해온 저널리스트지만, 이런 소개에서 연상되는 전형적인 이미지에서는 많이 벗어나있다. 이혼을 비롯한 몇 번의 실패 경험을 강단있게 극복하지 못하고, 본령은 잃은 채 정보조립공장처럼 변한 미디어업계에 지쳐 스스로 행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은 호들갑스럽거나 감상에 허우적대거나 나이브하지 않다.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 몰라도 뭔가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그냥 겪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담담하게 글 줄기가 되어 흘러간다. 하지만 숙련된 저널리스트답게 디테일과 전체 맥락, 매사의 양면, 공과 사의 비중을 거의 강박적으로 맞춰가며 균형을 유지한다. 그래서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불린다는, 바깥세상으로부터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던 신비의 나라를, 외부인치고는 꽤나 구석구석 살펴가며 내부의 시선까지 반영해 골고루 전해준다.

 

이 책에서 부탄이란 나라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기조는 아이러니이다. 저자는 부탄에 가서 개인적으로 문명사회에서 늘 그리워하던 시간적 여유나 인간다운 관계, 그림같은 풍광과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자신처럼 부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의와 관심이 결과적으로 부탄을 세상에 알리고 물질문명에 노출시켜 고유한 문물을 잃게 만든다는 데 혼란스러워한다. 실제로 부탄의 수도인 팀푸는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수도라고 하고, 책에서만 봐도 저자가 부탄에 가기 전과 다녀온 후 몇 년간의 급속한 변화가 생생히 느껴진다. 게다가 부탄의 젊은이인 나왕이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 쓰다 실패하는 일화나 부탄의 상품화 잠재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총리가 맥킨지에 큰 돈을 주고 컨설팅을 의뢰해 국민의 총행복을 현금화하자는 결론이 나왔다는 대목에서는 실로 아연해진다. ‘외국 문화가 고유한 기반을 지속적으로 잠식해 들어오는 이 독특한 왕국의 미래에 모성적인 보호본능을 느꼈다는 저자의 말이 비단 오만한 미국인만의 생각 같지는 않다.

 

다 읽고나서 책을 다시 살펴보니 책의 표지와 재질이 책의 분위기와 온도를 절묘하게 물성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이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이 책의 실물 표지를 보고 만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느낌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나처럼 부탄하면 단순히 가장 행복한 나라국민총행복지수’ 같은 타이틀을 떠올리고 언젠가 기회되면 가보고 싶은 독특한 불교국가 정도로 생각하는 독자라면 분명 대리만족과 더불어 얻을 게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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