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품절


그녀가 마침내 말했어요. "나는 내 또래에서 당신처럼 예의 바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그리 기쁘지 않은 어조로 말했어요. "예의 바르다고요?" 그녀가 미소를 지었어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에요. 지루한 예의 바름 말고요. 당신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줘요. 나는 정말로 그게 좋아요. 흔하지 않은 일이에요."-26쪽

"초조해요?" "초조하기보다는 불안해요. 내가 꼭 조개 같아요. 날카로운 작은 조각을 오랫동안 내 안에 간직하고 있다가, 더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천천히 그 조각을 진주로 만들었어요. 이제, 그것이 나오려고 해요. 그런데 나는 그게 나오면, 뒤에 틈이 남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것이 있던 자리에 틈이 남겠죠. 그래서 그 조각을 좀 더 붙들고 있고 싶어요."-50쪽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 그것이 근무 첫날부터 우리한테 반복하여 주입된 언더우드샘슨의 기본 원칙이었어요. 재정에 관한 사항에만 신경을 쓰고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의 진짜 본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정확하게 내가 해왔던 일이었고요. 종종 기술과 열정을 동원해서 말이죠. 정말로, 솔직히 말하면, 내가 곧 해고당할 직원들을 그렇게 자주 안쓰럽게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전력투구를 요구해서 그렇게 심란한 생각을 할 시간이 별로 없었던 거죠.-89쪽

나는 자신의 직업이라는 작은 세계의 구조에 그렇게 완전히 빠져있는 그를 존경할 수 없었어요. 그래요. 나도 전에는 일에만 집중하라는 회사의 충고에서 위안을 얻었죠. 하지만 이제는 금융 거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현재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개인적, 정치적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거죠. 달리 말해, 내 블라인드가 걷히고 있었던 거예요. 나는 내 시야가 갑작스럽게 넓어지자 어지러워 꼼짝 못 하고 있었어요.-129쪽

하지만 내가 보기에 당시에는 미국도 위험한 노스탤지어에 점점 더 빠져드는 것 같았어요. 국기와 제복, 전쟁 상황실에서 카메라를 향해 얘기하는 장군들, 의무와 명예 같은 말들이 나오는 신문 기사 제목에는 확실히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이 있었어요. 나는 늘, 미국이 앞을 바라보는 국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나는 돌아보려고 하는 미국의 의지를 보았던 거죠. 뉴욕에 사는 것이 갑자기 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 속에서 사는 것 같았어요… 당신네 나라 사람들이 뭘 바라는지 나한테는 불분명했어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우위? 안전? 도덕적 확신?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들이 다른 시대의 의상을 급히 입으려고 하는 건 명백했어요. 나는 그 시대가 허구적인지, 그 허구에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쓰인 일부가 있는지 의아해하고 불안감을 느꼈어요.-104쪽

당시에는, 솔직히 지금도 그렇긴 해요. 미국은 거드름만 피우고 있었어요. 하나의 사회로서 당신들은 당신들을 공격한 사람들과 당신들을 묶어 주는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어요. 당신들은 스스로의 차이, 우월함에 대한 신화 속으로 들어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세계 무대에서 실현에 옮겼어요. 그래서 지구 전체가 당신들 분노의 여파에 요동쳤어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쟁에 직면한 내 가족도 마찬가지였죠. 그런 미국은 다른 인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당신들을 위해서도 제지당해야 했어요.-147쪽

그런 여정들은 내게, 자신의 테두리가 어떤 관계에 의해 흐릿해지고 침범당하면, 되돌리는 일이 늘 가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전에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자율적인 존재로 되돌아갈 수 없는 거죠. 우리의 일부는 이제 밖에 있고, 외부의 일부가 이제 우리 안에 있는 거죠.-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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