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여행자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예담 / 2007년 7월
품절


"정신을 차려보니 녀석이 나를 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서 있더군요. 그러자 도기두에서 배운 내용이 생각났어요. ‘어느 한쪽만 대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죠. 그래서 개한테 말했어요. ‘어림없지’라고요. 처음 떠오른 말이 그거였거든요. 엄마는 내 잘못을 봐주지 않을 때 그렇게 말하곤 했어요. ‘어림없지’라고 말하면서 부러진 오른팔 대신 왼팔을 뻗었지요. 손바닥을 내밀고 눈을 똑바로 보면서-개들은 눈을 빤히 보면 못 견디거든요-천천히 일어났어요. 개가 당장 궁둥이를 대고 앉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죠." -167쪽

메이컨은 그녀가 가장 좋은 부분을 주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또 그녀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좋은 부분’은 셜리 템플처럼 머리를 한 모습이 아니었다. 가장 좋은 부분은 뮤리엘의 톡 쏘는 맛이었다. 턱을 비스듬히 들고 단호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톡 쏘는 맛, 싸움꾼 같은 통렬함이 가장 좋은 부분이었다. -346쪽

뮤리엘은 펼쳐놓은 책과 같았다. 그에게 무슨 말이든 했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가 불편할 정도였다. 그녀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성격이 거칠고 말버릇도 나빴다. 또 자기혐오에 빠지면 몇 시간이고 아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알렉산더에 대한 태도도 미쳤다 싶을 정도로 일관성이 없었다. 한순간 과보호하다가 금방 냉담하게 손을 놓아버렸다. 분명히 영특했지만 메이컨은 그녀만큼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지칠 정도로 자세하게 꿈 얘기를 하지 않고 지나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꿈에 나온 일이 앞으로 일어난다고 믿었다…전생에 패션 디자이너였고, 적어도 한 번의 죽음은 기억난다고 장담했다. 그녀는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신앙심이 깊었고, 신이 그녀를 보살펴준다고 믿었다. 작은 것이라도 얻으려면 힘들게 싸워야 하는 형편인데 그렇게 믿다니 메이컨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354쪽

하지만 둘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아이가 슬그머니 메이컨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정말로 분명하고, 정말로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이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났다. 알렉산더의 손을 꼭 잡으니 슬픔 같은 감정이 마음에 스르르 젖어 들었다. 예전에 느꼈던 위험이 다시 그의 삶 속으로 파고 들었다. 핵전쟁과 지구의 미래에 대해 다시 걱정해야 하게 생겼다. 이던이 태어난 후 ‘지금부터 다시는 완전히 행복해지지 못할 거야’라는 은밀하고 죄책감이 드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그 전에도 완전히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388쪽

메이컨은 그녀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싸움꾼을 본 적이 있을까?... 뮤리엘은 놀라지도 않은 눈치였다. 그녀는 여기서는 이웃 사람을 만나고, 저기서는 집 없는 개를 보고, 그 너머에서는 강도를 만나리라 예상하고 길을 활보했던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똑같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메이컨은 그녀에게 경외심을 느꼈고, 쪼그라든 기분이 들었다. 뮤리엘은 콧노래를 흥얼대면서 걸음을 옮겼다. 특별히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노래를 흥얼댔다.-423쪽

그는 흥미가 느껴졌다. 그런 커플이 왜 생기는지 이제야 알았다. 전에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이 어처구니없이 무얼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남들이 짐작하지 못할 이유 때문에 하나로 엮였음을 이제 알았다. -5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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