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맛 -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12월
품절


'고운'이란 말, 참 절묘하다. 몰랐던 말이 아닌데도, 저 시를 읽고 나서야 '고운'이란 말이 얼마나 '고운'지 깨달았다. 예쁜 사람, 착한 사람, 바른 사람,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고운'이라는 말은 저 자리에 꼭 어울린다. 예쁘고 착하고 바른 것을 모두 합쳐도 '고운'이라는 말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듯싶다. 그 속에는 산뜻하고 맑고 부드러운, 다른 말로 대신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 녹아있다. -19쪽

백석은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 더러운 세상을 버린 자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26쪽

백석 시에는 우리가 음식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마치 그는 음식에 대한 문학적 탐구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음식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음식이 사소하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 또한 사소하지 않다.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이 실은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 중 하나이고, 또 그러한 증명이 예술적 가치로 빛날 때 위대한 시인이 탄생한다. 세상을 외면했던 백석은, 세상이 외면했던 맛있는 것들에 집착함으로써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문학적 경지를 일궈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맛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침이 고인다.-34쪽

예술작품은 그것이 진품이나 원본일 때에만 아우라라는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아우라는 예술 작품이 아닌 다른 사물에서도 나타난다...아우라의 특성을 종합해보면, 유일무이한 현존성,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인 현상, 일회성과 지속성의 모순 등을 든다. 그런데 이는 백석시에 나타난 음식의 성격에도 해당된다. 조리기간이 길든 짧든 음식이 식탁 위에 존재하는 것은 순간일 뿐이고, 음식은 그 짧은 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만 유일무이하게 존재할 수 있다.-88쪽

벤야민에 따르면 아우라의 경험은 '상호 응시'라는 시선을 동반한다. '상호응시'란 인간과 자연, 자아와 세계가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상호응시'가 이루어질 떄 주체와 대상은 동일성이 아니라 유사성의 관계에 놓인다. 서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서,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점점 서로 비슷해지면서 완전히 같지도 않고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도 않은, 어정쩡하면서도 묘한 상태가 된다. 즉 아우라의 시각적 경험은 나와 타자, 즉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가 흐물흐물해지면서 주체와 대상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는 상호 과정의 경험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체-객체의 동일시나 주체-객체의 분리, 양자 모두를 지양하는 독특한 지각양식으로만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다. -117쪽

인도 미학에서 예술의 영혼으로 간주되는 '라사(rasa)'는 여러 의미가 있다. 먼저 그것은 식물의 즙, 액체 등을 의미한다. 또 라사는 어떤 대상의 비물질적인 본질, 물질로부터 나오지만 말로는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향기, 가장 훌륭하거나 최상인 부분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감각과 관련해서는 미각, 맛 등의 의미도 있다. 이러한 의미들에서 미각적 경험과 관련된 의미가 파생되었다. 이때 라사는 고양된 기쁨, 오로지 영혼에 의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환희, 예술의 영혼 등을 의미한다. 라사를 포함하지 않은 작품은 예술로 분류되지 못했고, 라사없는 경험은 미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서구의 개념과 달리 지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넘어선 개념으로, 인간의 일과 신의 일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신인합일의 경지를 지칭한다.-143쪽

당신은 어쩌다, 하필 외면할 것투성이인 봄에 왔을까...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 황지우'거룩한 식사'중
우리는 조금 더 미칠 필요가 있다. <정본 백석 시집> <백석 전집> <원본 백석 시집>-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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