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장바구니담기


분명 그렇게 오래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일단 스쳐 지나가고 나면 계속 그리워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다른 어떤 것도 그 순간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있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니. 내가 한 말 같았다. 내 목소리가 그대로 메아리쳐 되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다른 말을 했다면 그것은 전부 거짓이었다. 나는 그저 "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23쪽

그는 우리가 행복했다는 것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하는 얘기려니, 생각할 것이다. 내 앞에선 믿는 척한다 하더라도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저토록 불행하면서 왜 저렇게 끊임없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까. 그렇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건 나 역시 인정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불행이 무엇인지는 모두들 알고 있다.
무슨 일이든 그 뒤에는 빈자리가 있게 마련이다. 낮에는 그것도 모른 척 슬쩍 지나쳐버릴 수 있지만 어스름이 내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노래를 듣고 있다보면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쉽게 잠을 이룰 수도 없게 된다. 도대체 이 빈자리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행복은 붙잡아둘 수가 없다고...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151쪽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애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슬픔 때문에, 단지 슬프기 때문에 서로를 안게 될 때는 자신의 뜻과는 반대되는 일을 하기가 십상이다. 안 된다. 그게 누구라도 슬플 때에는 서로를 애무해서는 안 된다. 한두 시간, 하룻밤만 지나도, 날이 밝아 길가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전보다도 훨씬 더 비참해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241쪽

2009.11.29-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