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구판절판


한국의 학벌체제는 현대판 신분제다...출생시점이 아닌 만 18세에 서열이 매겨진다는 점에서 과거 신분제와 다르지만...경쟁에서 낙오하거나 패배한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차별을 받아들이도록 작용한다. 과거 신분제에선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한국 사회상층에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이긴 자와 패배한 자 모두 학벌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누리는 지위,명예,권력과 부를 당연한 보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교육비 지출은 투자로 인식된다.-47,48쪽

진보적 의식이 '성숙'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게 아니라 기존에 형성되었던 의식의 '반전'을 통해 형성되면서 갖게 된 한계...지배세력이 주입한 의식 중 일부만 벗어났을 뿐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해 진보적 의식과 감수성을 형성하지 못했음에도 이미 '태양의 진리'를 획득한 양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진보의식의 성숙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부정의 과정을 단 한 번 거친 것으로 만족하는 '진보하지 않는 진보의식'이라는 형용모순에 빠진 것이다.-80쪽

..소수자들은 소수자이기 때문에 소수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된다. 소수자에게 강요된 '자기 돌아봄'은 사회적으로는 천형일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천혜일 수 있다.-136쪽

진보성을 일관되게 펼 수 있는 일간지는 진보의식을 일상성으로 확보한 시민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광고가 없는 진보적 주간지는 독자의 시민적 참여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그 독자는 소비자가 아닌 시민의 성격을 갖고 있다...-147, 149쪽

우리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생존 자체가 목표인 삶을 산다. 나라는 인간존재에 관한 관심이나 자아실현의 꿈은 사치고, 오로지 물질에 관한 관심과 소유욕에 머문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달걀의 깨진 부분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배타적으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에서 깨진 부분이 전체에 비해 크지 않더라도 그 부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막중하다.-160쪽

나눔과 분배는..분명 같은 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 ... 나눔이 사적 영역이고, 시혜,온정,베풂의 의미를 가졌다면, 분배는 성장의 반대로 공적 영역이고 제도에 의한 강제성을 갖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나눔을 강조하는 것은 나눔으로 분배의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데 있다. 가진 자들의 시혜나 온정이나 바랄 것이지 '불온한' 생각은 갖지 말라는 것이다. -163쪽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본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진다'는 뜻인데, 역사는 귀족이 스스로 의무를 졌다고 말하지 않는다....스스로 의무를 지지 않으면 지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배하기 위해 의무를 져왔을 뿐이다. 그게 역사의 진실이다. 따라서 귀족이나 사회상층이 스스로 의무를 얼마만큼 지느냐는 국민의 비판과 견제 능력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역에서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가당키나 한가.-164쪽

세상 사람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과거에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제도교육이 보편화되었고 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의 의식세계는 빈 채로 남아있지 않고 채워진다. ... 국가권력이 장악한 제도교육과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미디어에 의해 넘칠 정도로 채워지는 의식세계는, 특히 한국처럼 제도교육이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스스로 책을 읽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지배세력이 요구한 것만으로 채우게 된다. ... 지배세력에 대한 복종의 자발성에서 과거에 책을 읽지 못한 사람보다 오늘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더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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