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개봉 전 부터 참 말 많았었다. 찍기는 벌써 언제 찍었는데 개봉관을 잡지 못했는지 아무튼 한참을 있다가 개봉했다. 그리고 개봉하고는 또 다시 말이 생겼다. 친일이다 어쩌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 하자면 난 잘 모르겠다. 내 지인의 말 처럼 손톱뽑고 발톱뽑고 고춧가루 물 들이붓는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인간이 그리 흔하지는 않을것 같다. 그리고 내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박경원은 절대 독립투사 같은걸로 나오지 않는다. 가공의 인물인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 비슷할 뿐. (사실 그도 독립투사는 아니고 그냥 단순 누명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일장기를 흔들고 일본에서 제공하는 각종 연회에 참석하며 일본의 지시대로 비행을 한다. 이런 마당에서 그녀를 미화했다니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나로서는 어떤 부분을 미화한지 잘 모르겠다. 뭐 그녀가 일본 누구누구의 아들네미와 내연의 관계가 있었다던데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아무튼 실화를 바탕으로 하긴 했지만 이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고증했다기 보다 그냥 컨셉만 살짝 들고 온 정도이다. 그리고 사실 다큐멘타리가 아닌 영화에서 사실과 얼마나 흡사한지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은가?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청연은 박경원이라는 우리나라 최초 여류 비행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려서부터 날고 싶었던 그녀. 고생고생 끝에 드디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한국인이라는 더불어 여자라는 이중적 차별로 인해 그리 평탄하지는 않지만 고집쌔고 강단 쌘 그녀는 그럭저럭 잘 해 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매력으로 자신의 적이었던 여자마저 친구로 만든다. 나는 그 부분이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으로 끌고 나가지 않은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한 부분. 박경원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 함께 붙잡혔을때 내 남자가 나가지 않으니 저도 감옥에 있을테야요. 혹은 내 남자 잡혀있는데 비행이 웬말인가 하며 눈물바람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에는 여자들이 그런다. 사랑하는 남자가 어딘가에 잡혀있으면 그 여자의 인생도 올 스톱이다. 아니 오히려 뒷걸음질친다. 그리고는 뻔한 스토리가 이어진다. 그를 빼내줄수 있는 어떤 사내에게 순정을 바치고 나중에는 그 사실이 들켜 사랑하는 사람에게마저 버림받는다. (쓰는 와중에도 고루해 미치겠다.)

쳥연이 좋았던 이유는 화려한 CG때문이 아니다. 진주만팀이 찍었다는 멋들어진 비행장면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여자를 잘, 그리고 꽤나 제대로 그린 영화라서 좋았다. 여자의 욕망, 여자의 꿈도 남자들과 다를바 없다는 것.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남녀가 다를것이 없다는걸 담담하게 그려줘서 좋았다. 너무 쥐어짜거나 치열하지 않게 박경원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그리고 꿈을 이뤄나간다. 그녀는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차라리 노력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거기에 엄한 조국애라던가 사랑 같은걸 깔끔하게 배제시키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여자들은 어째서 늘 자신의 꿈보다는 다른 조건들에 더 휘둘려야만 하는 존재로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혹은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여자와 남자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다른 취급을 받으며 살기 때문이다. 차별한번 안 받아 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차별은 곳곳에 존재한다. 지방에서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살 다음으로 빨리 돌맞아 죽는 방법이다. 거기다 아직도 여자는 직함대신 미스김이나 김양으로 불린다. 거기다 미스김과 김양은 별다방이나 콩다방 종사자들 못지 않게 직장생활을 커피와 함께해야 한다. 아무튼 이런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면서 여자들이 여자의 문제에 대해 흥분하지 않는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자들은 언제나 보조적인 입장이다. 남자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역활. 간혹 투톱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여자들은 눈요기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여자가 주인공이라면 둘 중 하나이다. 팜므파탈이라서 남자의 가정이고 직장이고 다 깨부쉬는 무시무시한 여자. 아니면 사랑을 너무나 기다리고 갈망한 나머지 미치기 직전인데 마침 딱 하고 사랑이 나타나 으쌰 으쌰 잘 살게 되는 것. 그러나 청연의 박경원은 어떤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온전하게 여자의 열망을 그리고 꿈을 그린 영화.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러면서도 그 여자가 망가지거나 불행해지지 않는 영화 (어찌보면 결말이 불행으로 보여질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걸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단지 남자때문에 그런건 아니라고 말이다.) 는 더더군다나 더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꽤 긴 러닝타임에 살짝 지루한면이 있었지만 이 영화가 예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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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1-16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경원->박경원^^

2006-01-16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6-01-16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rcus님. 히히. 지적 감사합니다. 고쳤어요.

속삭이신분. 어머 오랜만이여요. 죽지않고 살아있으니 이렇게 만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