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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나는 마이 페이퍼에서 미니 홈페이지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셀카족, 얼짱각도, 도토리 (사이트 내의 지불 수단)를 유행시킨 이 사이트는 크기가 매우 작아서 글을 올리기에는 좀 부적합하고 사진을 올리면 딱 맞는 정도의 사이즈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 홈페이지에서와 달리 자신들의 일상적인 사진을 열성적으로 올렸다. 연예인 내지는 특수직 종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하루하루가 빤한 민간인들은 전혀 흥미롭지도 새롭지도 않은 자신들의 반복적인 일상을 죽어라고 올렸다. 이 미니 홈페이지는 디지털 카메라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과거 모 여자 연예인의 매우 개인적인 비디오 파일이 인터넷과 컴퓨터 보급에 앞장섰듯이 말이다.
내가 비판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얼굴 사진과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리는 그 쓰잘데기 없음과 나르시즘의 묘한 결합이었다. 대체 그 짓을 왜 할까 싶은 생각부터. 세상에서 얼굴 팔리는 것을 가장 죄악시하는 나로서는 그 오픈 된 공간에 자신의 얼굴을 여보란 듯 올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미니 홈페이지의 기능은 단지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것에서만 그치는 건 아니었다. 그 컨텐츠가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람 찾기 기능 때문이었던 것이다. 동창 찾기 사이트가 한참 유행을 하고 그 유행이 시들해질 무렵. 사람들은 그래도 여전히 찾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미니 홈페이지를 만든 회사는 이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태어난 연도와 이름만 알면, 혹은 이메일 주소만 알면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기능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꼭 동창뿐 아니라 옛 친구, 동네친구, 옛 애인 할 것 없이 자신이 찾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을 찾고 그들의 일상과 현재를 사진으로나마 훔쳐볼 수 있게 되었다. (흔한 이름일 경우 똑같은 이름으로 몇 페이지가 뜨지만 사람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을 클릭 하여 일일이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세월은 흘러 그렇게도 미니홈페이지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던 나마저도 그것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시작은 거금 140만원을 들여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 자료를 보관할 마땅한 곳이 없을까 에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를 찾고 (내 이름은 내 생년월일로 찾으면 대한민국에서 딱 한사람 내가 나온다.) 그들의 댓글에 댓글을 달고 1촌 신청을 하고 어쩌고 하다가 보니 내가 비판했던 사람들과 나와의 구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검은 꽃]의 저자 김영하. 그가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쓴 글들을 엮어서 책을 만들었다. 오직 사진만 올리는 게 미니 홈페이지 기능의 전부라 믿었던 나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의 내용은,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의 전작 포스트잇과 비슷한 성격의 가벼운 산문집쯤 되겠다. 미니 홈페이지의 글을 옮긴 만큼 책 표지나 내부 편집 모두 미니 홈페이지 (이하 미니홈피)를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냈다.
카테고리는 크게 Free Talk. 사진첩. 방명록으로 나뉘어져 있고. Free Talk 안에는 또 다시 방울이와 깐돌이, 길 위에서, 문학 앞에서의 세 가지로 나뉜다. 방울이와 깐돌이는 김영하가 키우게 된 길냥이 (길에서 주운 도둑고양이) 에 관한 내용이며 길 위에서는 이런 저런 잡다한 얘기들이. 그리고 문학 앞에서는 말 그대로 작가 김영하가 생각하는 문학 그리고 몸소 체험한 문학에 대한 얘기들이 있다. 그 외에 멕시코 에니켄 농장으로 건너간 한국인을 다룬 소설 [검은 꽃]의 취재차 여행을 갔던 곳들의 사진이 사진첩 카테고리에 담겨져 있으며, 방명록에는 김영하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의 글들이 실려 있다.
책의 내용은 대체로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다. 특히 방울이와 깐돌이, 길 위에서 에는 중간 중간 큰 소리로 실소를 터트릴 만큼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많다. 김영하의 유머 실력은 이미 [포스트 잇]과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에서 증명된바 있으나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꽤 심각한 소설을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산문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소설과는 철저히 다르게 가볍고 재밌을 것. 하긴 심각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 또 심각한 산문집이나 수필집을 낸다면 그것만큼 따분한 것도 없으리라.
이 책은 저자도 밝혔듯이 뭔가 유익하고 교육적인 책은 전혀 아니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졸업 앨범도 들춰보고 일기장도 슬쩍 훔쳐보는 그런 기분으로 볼 만한 책이다. 요즘 들어 좀 무거워져 버린 독서라는 행위에 대해 원초적인 기쁨을 깨우쳐 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독서를 꽤나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인터넷과 영화의 홍수 속에서 책은 홀로 고전적인 텍스트를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쩌면 저자 김영하는 이런 사태에 대해 책도 인터넷과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취미거리임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이 책을 냈는지도 모른다. 미니 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을 굳이 책으로 엮은 이유를 찾자면 그 정도가 아닌가 싶다.
출 퇴근의 지하철 안에서 혹은 잠시 잠깐 일상의 작은 짬 속에서 읽을만한 책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책이다. 거기다 각 챕터들이 짧기 때문에 읽다가 중단을 하더라도 전의 내용을 몰라서 난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간만에 소리 내어 웃으면서 볼 책이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