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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의 영혼을 위한 꽃다발
대니얼 키즈 / 대산출판사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을 영영 모를 뻔 했었다. 어떤 곳에서도 이 책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독자서평이나 짤막한 책 소개도 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인이 나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그러나 오래되어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내가 얼마전에 기억하기 전 까지는 그랬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나는 일년도 지난 그 말을 갑자기 떠올리고는 이 책을 주문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지은이 대니얼 키즈는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나...라는 말이 들어왔다. 1972년? 이거 해도해도 너무하는구나 싶었다. 거기다 이 글은 1959년에 발표가 되었다. 59년이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책이며 거기다 S.F라니. 나는 고전 S.F들을 읽다가 실망한 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책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구나 싶었다. 몇 십 년도 더 된 S.F들은 더이상 S.F이지도 않았다. 왜냐면 그들이 과연 오긴 올것인가? 하는 기분으로 상상한 2000년대는 이미 도래했고, 우리는 거기서 딱 5년을 더 산 2005년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상상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정말 인류가 이룩할 수 없을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2000년의 인류들은 누리고 살 것이라고 보거나 아니면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케케묵기 그지없는 상상을 최첨단이랍시고 나열해놓거나. 어느 쪽이건 S.F는 쓰여진 그 당시에 읽어야 맛이구나 라는 감상을 가지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지간하면 오래된 S.F는 되도록이면 읽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내 편견을 완전히 깨부수었다.
지인으로부터 앨저넌의 영혼을 위한 꽃다발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나라면 절대로 저런 제목의 책은 사지 않겠다고. 늬들의 영혼에 꽃불을 밝혀서 인생을 활활 태워주마 같은 책들을 가장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야말로 그런류의 책들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을 달고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지인이 앨저넌은 실험용쥐라고 얘기를 하고 원제는 flowers for Algernon이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조금은 안심했다. 영혼이라는 단어가 빠진 게 어디냐 싶었고 앨저넌이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라고 느꼈다.
앨저넌의 영혼을 위한 꽃다발은 실험용 쥐와 한 지능장애자의 이야기이다. IQ 70이 채 못 되는 주인공 찰리 고든은 어느 날 한 대학의 교수로부터 머리가 좋아지는 수술을 받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듣는다.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17년째 빵집에서 청소같은 허드렛일을 하는 서른둘의 찰리 고든은 머리가 좋아지면 사람들이 자길 더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찰리는 앨저넌이라는 이름의 흰쥐와 테스트 경쟁을 하게 된다. 앨저넌은 찰리 고든이 받을 뇌수술을 미리 받은 실험용 쥐였다. 수술을 받은 찰리 고든은 서서히 똑똑해지기 시작한다. 결코 이기지 못했던 앨저넌을 단박에 이기고 어느 시점부터는 비약적으로 두뇌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IQ가 180이 넘는 천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천재가 되고난 찰리는 여태까지 생각지 못했던 각종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IQ70일 때는 생각지도 못했고 또 할 필요도 없었던 사랑이나 우정.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자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찰리는 앨저넌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왜냐면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미리 걸어간. 어떻게 보면 찰리 자신의 동물버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연도를 지우고 본다면 어제 막 써낸 책이라 해도 믿을 만큼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는 어색함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저자 대니얼 키즈는 뇌수술로 사람의 머리를 좋게 한다는 다소 황당한 발상을 (당시로써는 최첨단) 바탕으로 글을 쓰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더 이상 엄한 과학적 상상을 해대어서 책이 시대를 넘지 못하고 사장되는 오류를 결코 범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은 뇌수술로 한 인간의 머리가 좋아진 것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찰리라는 인간의 내면을 얘기하고 있다.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게 진정으로 행복한 것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육체적 장애우들은 그나마 측은하게 생각하면서 정신지체자들은 함부로 대하는 사회에 대해 말한다.
찰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무언가를 하나 알게 되면 그만큼 또 다른 부산물이 따라 붙는다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셋이 될 수 있으며, 인생에 있어서 그 셋은 꼭 수학적 더함이 아니라는 것을 책은 말한다. 셋을 알게 되면 딱 셋만큼 행복해지는 것은 수학이나 과학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살아서 움직이며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인간에게는 들어맞는 얘기가 아니다. 찰리는 똑똑해지고 나서 바보였던 시절과는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단지 자기가 지금보다 조금더 잘 읽고 잘 쓰고 기억을 잘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란 바램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찰리는 자기 자신조차도 만족시키지 못해서 괴로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그가 잘 보여야 할, 수술을 해서라도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다. 책의 서술 형식은 찰리 고든이 학회에 제출하는 보고서 형태로 되어있다. 처음 수술을 받기 전 테스트를 하는 찰리가 쓴 보고서에서 출발해서 찰리는 수술을 받고 똑똑해지고 앨저넌에게 더 이상 지지 않을 때도 여전히 보고서를 쓴다. 보고서는 내용뿐 아니라 문체, 문법을 통해서 찰리가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를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나는 일부러 적지 않았다. 그것은 읽다가 보면 차차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분 때문에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조금 울기까지 했다. 단순하게 머리가 좋아진 찰리가 새롭게 발견한 세상이 아닌. 이 책은 찰리가 바보로 지냈던 세월들을 다시 되짚고 그것이 현재까지 미친 영향이랄지 혹은 찰리 개인의 인성 같은 것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래서 줄거리만 봤을때는 꽤 신나는 S.F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읽으면서 조금은 서글퍼지는 책이라고 말 할수 있겠다. 하지만 단 하나. 재미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집어들자 마자 그 자리에서 잠도 자지 않고 다 읽어치웠고, 다음날 써도 되는 서평을 이렇게 꼭두새벽에 (흥분씩이나 해 가며) 써대고 있는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아직까지 2005년은 며칠 더 남았다. 그렇지만 감히 장담하건데 이 책은 내가 올해 만난 책들 중에서 단연 최고의 책이다. 바램이 있다면 1판인 이 책의 재고가 다 팔리고 출판사에서 또 다시 책을 찍어내는 것이다. (저 유명한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시리즈처럼 말이다.) 왜냐면 이 책은 그럴만한 가치를 충분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가격이 요즘 책에 비해 엄청나게 싸다는 점을 들어서 나는 속아도 4천원 상당의 손해만 볼 터이니 믿고 한번 사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돈까지 들먹여가며 권한 책은 여태 한권도 없었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정말 사비를 털어서라도 사람들에게 사서 나눠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며 서평하나, 책 소개 한줄 없이 묻혀지내기에는 정말로 아까운 책이다. (가능하다면 저 별 다섯을 도금해서 다이아라도 확 박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알라딘에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해보긴 이 책이 처음인것 같다.
방금 어떤분의 제보에 의하면 이 책이 다시 나왔답니다.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이 제목이라는군요. 근데 전 앨저넌이란 제목이 더 정겹네요. (첨에는 욕을 욕을 했으나.) 혼자만 이 책을 아는양. 그게 큰 발견인양 오만 잘난척은 혼자 다 한게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게 없다면 빵가게 찰리가 1만원(알라딘가 8천원)인것에 비해 앨저넌이 더 싸니까 이걸 읽어도 상관없겠다 싶습니다. 똑 같은 책이라면 더 비싸다고 해서 좋을 이유는 없을테니까요. 부끄럽긴 한데 귀찮아서 리뷰를 다시 쓰거나 지우지는 않겠습니다. 혹 거슬리시더라도 이해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