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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이상하게도 무슨 문학상 수상 작품집들은 하나같이 수상작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은 매우 열심히 사서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냥 수상작가의 작품집을 사게 되었었다. 이 책은 뭔가를 읽기는 읽어야겠고 마땅한것은 없길래 그냥 아무생각 없이 구입한 것이었다.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이니 영 아닌건 아니겠지, 거기다가 김훈, 성석제, 윤대녕, 은희경, 박민규, 구효서, 임철우 정도의 라인업이라면 적어도 읽다가 도중하차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단편집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완성도가 뛰어나고 재밌었다. 우선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니 작품으로서 검증을 받은 셈이고 또 신인들이 아닌 기성작가이기에 또 한번의 검증을 받은거나 진배없다. 거기다 한 작가의 단편 작품이 아닌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분위기가 하나로 흐르지 않는다.
우선 황순원 문학상 본선 수상작인 김훈의 언니의 폐경은 솔직히 말해서 작품성 보다는 남자가 여자의 심리를 이토록이나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마 작가는 꽤 여러 여자들을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괴롭혔거나 아니면 끝내주게 자료 수집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남편이 죽고 폐경기에 들어선 언니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시선으로 쓴 작품인데 심리 묘사가 무척 치밀한게 인상적이었다.
구효서의 소금가마니는 어머니에 관한 내용이다. 어머니에 관한 소설은 대부분 그 분들의 크나큰 희생이랄지 아니면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식이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그런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는 식인데 그 과거는 어머니의 로맨스이다. 미화시키지도 그렇다고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은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는데 작품이 짧은게 좀 아쉬웠다.
김연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소재 면에서는 굉장히 신선했는데 어쩐지 읽는 내내 영화 남극일기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소재가 겹쳐서이기도 하지만 도무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빨리 읽어치우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었던 작품이다.
박민규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이미 그의 작품집에서 읽은것이라 건너 뛰었고, 박성원의 안타라망은 영화 미져리를 떠올리게 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그다지 대단한 작품은 아닌것 같다. 성석제의 잃어버린 시간은 여기 실린 작품중에 제일 무거운 소재였고. 윤대녕의 탱자는 가볍지 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은희경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은 그저 그런 평이한 단편이었고 임철우의 나비길도 마찬가지였다. 제일 마지막에 실린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너무 질질 늘여서 맥이 빠졌다.
요즘 책들은 내 기준에서 볼때는 좀 비싼 가격들을 달고 나온다. 페이지 수는 엄청 작은데 양장본 내지는 하드커버라는 이름으로 보통 8천원은 쉽게 넘어선다. 이 책을 받고나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두께에 비해 값이 무척 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읽고 나니 또 내용에 비해 참 싼 가격이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한번 들었다. 책의 가격은 사실 정해진게 없다. 페이지 수에 따르는 것도 아니고 책을 유명 작가가 썼다고 더 비싼것도 아니다. 오로지 출판사의 결정에 따르는데 내가 보기에는 요즘 책의 가격은 양심없는 경우가 너무 많은것 같다. 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긴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한달에 책을 달랑 한권만 읽지 않는 한. 돈은 무시하지 못할 문제이다. 간만에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좀 싸다싶은 가격이 아닌가 생각을 했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척 권할만하다. 물론 싸서가 아니라 내용이 충실하고 재미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