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경의 가족관찰기
선현경 지음 / 뜨인돌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선현경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만화가 이우일씨의 아내라는 정도. 과거 페이퍼라는 잡지를 열심히 읽었지만 어쩐지 선현경의 가족일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 너무 많은 만화들을 읽어서 그랬으리라) 아무튼 그런 선현경이 가족관찰기라는 책을 냈다. 약간의 글과 만화와 함께. 나는 이우일의 만화를 좋아하므로 분명 그 와이프가 그린것도 재밌으리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 가며 이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행스럽게도 틀리지 않았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 나는 이우일의 글과 만화에서 선현경을 보며, 또 선현경의 만화와 글에서 이우일을 본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의 딸 은서도 보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선현경이 자신의 남편인 만화가 이우일과 딸인 이은서를 관찰한 것을 글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어쩌면 남편이 만화가가 아니라 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다지 흥미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람의 아내가 그를 관찰했다고 하니 귀가 솔깃했다. 과연 이우일은 만화가가 아닌 남편으로써 혹은 아빠로써는 어떤 남자일까? 선현경의 관찰에 따르면 그는 매우 젠틀할것이라는 내 생각과 달리 게으르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며 살짝 괴짜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눈으로 본다면야 뭔들 사랑스럽지 않겠나 싶지만. 선현경씨 조금은 마음 고생을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 부부는 남들과 좀 다르다. 신혼 여행을 무려 1년이나 갔다가 오고, 오고 나서는 집이 없어 각자의 집으로 가야하나 고민을 한다. 거기다 두 사람 다 직업이 만화가인지라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작업을 한다. 따라서 생활이 일이고 일이 생활인 아주 드문 삶을 살고 있다. 허나 이들 부부는 하는일이 갖고 취미도 비슷하기에 마치 노는것 처럼 살아간다. 일반인인 내 눈으로 보자면 무척 부러운 삶이다.

한 여자가 결혼을 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또 어떤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일이다. 그저 한 여자였다가 갑자기 맡게 되는 저런 역활들 속에서 우리는 무조건하고 아주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을 어릴때부터 알게 모르게 받고 살아간다. 하지만 선현경을 보며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배울수도 있고 실수를 하거나 고칠 수 없는 부분은 또 그런대로 서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이다.

일도 노는것처럼 생활도 노는것처럼 하는 이 만화같은 부부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그리고 이렇게나 재미난 사람들을 엄마 아빠로 둔 딸 은서도 부럽다. 가끔 우리 삶은 너무 심각하고 너무 진지하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하는 고민들 중에서 대부분은 현재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고민이라고. 어쩌면 삶은 고민하고 고뇌한다고 해서 꼭 좋은 길로 가지만은 않는것 같다. 조금은 빈듯하고 또 조금은 할랑한 그 속에 진짜 삶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선현경의 따뜻한 눈으로 관찰한 이우일과 딸 은서는 매우 사랑스런 존재들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단점이 있고 나쁜점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걸 어떤 사람이 어떤 눈으로 봐 주느냐는 것이다. 사랑하는 눈으로 본다면 뭐든 다 한없이 사랑스럽게 마련이므로. 그래서 독자인 나도 선현경의 눈을 빌어 그들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저런 남편 참 괜찮네... 저런 딸네미 정말 귀엽네 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가족이라는 단위에 대해 왜 존재하는지 혹은 상처만 준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한 고마운 책이다.

주의 : 읽는 내내 심하게 키득거리게 되므로 이 책 역시 다른 재밌는 여러 책들과 마찬가지로 공공장소에서 읽는것을 삼가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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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1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08-1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감사합니다. 고쳤어요.^^

biseol 2005-08-1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렛츠룩만 보고도 큭큭거렸는데 ..기대되요.

플라시보 2005-08-1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레님. 흐... 이우일 만화랑 느낌이 비슷합니다. 재밌고 키득거리게 만들고..^^ 단 이걸 읽고나면 선현경씨네 집에 가서 정말로 그 가족들을 관찰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