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
폴 조아니데스 지음, 대릭 그뢰스 시니어 삽화, 이명희 옮김 / 다리미디어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과거 모 사이트에 섹스 칼럼을 쓰기 위해서 구입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책이었다. 그 후 누군가가 내게 책을 선물했고 나는 앞의 몇장만을 읽은 후 곧 책꽂이에 다시 꽂아 두었다. 첫번째 이유는 책이 너무나 두껍기 때문이었고 두번째 이유는 책이 너무나 커서였다. A4용지에 육박하는 크기에다 631쪽에 달하는 책은 평소 내가 책보는 습관인 드러누워서 보기에는 무척이나 부적합한 책이었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하게 이유를 대자면 비교적 SEX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생각도 많이 하고 나름대로의 가치관도 확실하다고 믿었던 나 이지만. 막상 그것이 문자화되어 무어라 주절거리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적어도 책을 다 읽기 전 까지는 그랬다.

SEX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뻔한 말들을 늘어놓는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만족스러운 성 생활을 영위할수 있는지에 온갖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남자들에 대해서는 페니스의 크기와 만족도는 전혀 상관없다는 소리를 해대고 여자들에 대해서는 좀 더 SEX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 혹은 마음가짐을 가져서 궁극의 오르가즘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들 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분명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SEX를 할때 생각해야할 다른 부분들. 이를테면 임신이나 출산. 성병. 아이의 성교육 등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면 바로 그런 부분들 때문이다.

알다시피 섹스는 성인 남녀가 사랑 혹은 그와 무관한 다른 어떠한 이유로 즐기는 몹시 개인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게 되는 대부분의 지식은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 그 자체에만 집중이 되어있다. 섹스를 할때 혹시라도 감염이 될지 모르는 성병이랄지 임신과 같은 것은 마치 없는 일인것 처럼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입받아왔다. 하긴 막 섹스를 하려고 하는데 성병이 생기면 어쩌나 혹은 원치않은 임신을 하면 어쩌나를 생각하는 것은 로멘틱한 분위기를 상당히 방해한다. 그러나 그 로멘틱한 분위기라는 것을 위해 무시하기에 섹스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동반할수도 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우리가 배우지 못했고 또 생각하거나 수면위로 끄집어내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이 왜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를 붙이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의 대부분은 법에서 인정하는 성인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알아두어야 할 일들에 대해 잔뜩 적어두었다. 19세의 나이라면, 섹스란 그저 남녀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행하는 개인적 행위일 뿐이라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이미 섹스를 했을수도 있는 나이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는 19세 이전에 섹스를 경험했다.) 어떻게 보면 나처럼 나이가 든 성인보다 오히려 이제 막 섹스를 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아. 물론 나이가 들어도 섹스에 대해 그저 몸이 하는 행동일뿐 머리나 마음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도움이 되며. 나 역시 그 중 하나임을 고백하는 바이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 식욕과 버금갈 정도로 (그렇게까지 자주는 아니겠지만)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섹스라는 것임을 감안할때. 오히려 그 문제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까지 무지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종 좋은 음식이며 올바르게 음식을 섭취하는 법에서 요즘은 웰빙 어쩌고 하면서 유기농식에 대해서까지 떠들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데도 욕구라는 것에 있어 별반 뒤지지 않는 섹스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성과 한번 혹은 그 이상 잠자리를 함께 하면 저절로 모든것을 알게 되며 그것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무언가라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질 뿐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이성과 한번 혹은 그 이상 잠자리를 해서 섹스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가?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답은 NO다. 단지 섹스가 성기로 이루어지는 성교라고만 생각한다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비교적 성에 대해 개방적인 부모를 두웠지만 내가 부모로 부터 받은 성교육은 실질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관념에 관한 것이었다. 내 아버지의 경우 섹스를 목적으로 사용하되 수단으로는 사용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 주었고 어머니의 경우는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섹스를 할때는 반드시 피임을 하라고만 말했다. 아버지의 충고는 내 성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어떤 생각을 마련하게 해주었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때 나는 어머니가 입으로는 말하지 않은 다음 부분을 직감으로 느꼈다. '내 딸이 섹스를 한다는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고 요즘 애들은 다들 그러니까 일단 한다고 인정은 하마. 그렇지만 어리석게 임신따위는 하지 말아라. 그럼 너는 수술대위에 오를수도 혹은 미혼모가 될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피임은 꼭 해야해. 하지만 피임법은 니가 알아서 찾아보아라' 우리 어머니의 경우 내 첫 생리가 시작되었을때 케잌까지 사가지고 와서 축하를 해 주었지만, 그래서 일면 성에 대해 상당히 올바른 교육을 한것처럼 보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케잌과 떠들석한 축하 대신 내가 임신을 할수도 있고, 더불어 임신이 되는 섹스를 할수있는 육체적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섹스에 대한 모든걸 혼자 생각하고 혼자 터득했다. 그게 너무 당연한거라고? 그럼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 혼자 생각하고 터득한것 중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빠트렸는가에 대해 잘 알게 될 것이다.

비록 19세미만 구독불가를 붙이고 나왔지만 (아마도 그것은 상당히 노골적인 삽화때문이 아닌가 하고 짐작한다만은 책의 제목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는 섹스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남녀라면 나이를 막론하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섹스가 단지 남녀 혹은 동성간에 즐길 수 있는 육체적 기쁨에 관한 행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토록이나 두터운 책을 쓰면서도 중간중간 계속 말한다. 다 설명하지 못했으므로 다른책들을 참고하거나 혹은 다른 기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라고 말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는 섹스에 대해 이토록이나 길게 주절거리다니 놀랍군 하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니 631쪽의 설명으로는 택도없이 부족한 것이 섹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끝으로 이 책이 비록 SEX라는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만 단순히 더 즐겁고 더 강하게 즐기기 위한 SEX가이드북만은 아님을 말해두고 싶다. 비록 좀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이 책은 장애우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상당 부분을 질병과 임신(혹은 낙태) 출산(그 후의 입양 혹은 육아) 등. 섹스에서 파생될 수있는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미 성생활을 10년을 즐겼건 20년을 해왔건 상관없이 나는 이 책이 섹스를 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고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631페이지로는 택도없이 짧은게 인간의 섹스, 혹은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문제이다.

덧붙임 : 책을 반으로 잘라서라도 정복해야 할 책을 딱 두권을 만났었는데 하나는 아시모프의 바이블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 책이다. 앞으로 반으로 잘라서라도 정복해야 할 책의 리스트가 더 늘어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 리스트에 포함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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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06-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자극이 되는군요 ㅡ..ㅡ;

플라시보 2005-06-15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섹스를 하고있건 하고있지 않건간에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모든 자기개발이라던가 그런 책들은 많이 읽으면서 정작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저절로 알게되길 기다리는게 좀 이상한것 같아요. 이것도 분명 생각 내지는 공부가 필요한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