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이 좀 많았다우. 저녁먹고 자리에 앉은 게 여섯 시 반, 아무 생각없이 마우스 부여잡고 네시간 반을 버팅기니 손목이 땡겨 오더군요. 이제 끝날 때가 되었나보다. 했죠. 초과근무 끝나는 시간인 열한시가 조금 못 되어 팀장님 퇴근하시고 맥주 한 병을 사러 아래에 내려갔어요. 하이트 한 병을 들고 오른손에 들고 올라오는데 손목이 시큰거리덥디다.  그러고 플라시보님이 생각났어요. 내 카메라 파인더 안에, 그 전에 내 눈속에 머릿속에 담긴 표정, 전부터 생각해 왔던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플라시보님이 짓는 표정. 시선이 살짝 위로 올라가면서 톤이 조금 높아지는. 그 표정을 담아 드린 게 다음날 페이퍼에 올라온 걸 보고 괜히 즐거워하기도 했고. 여튼. 내가 떠올린 얘긴 이거에요. 왜 전에 컴퓨터 새로 장만한다면서 마우스와 키보드에는 돈을 좀 들이고 싶다고 한 이야기 있잖우.

"내 생각에 마우스는 사람이 쓸 물건이 아닌 것 같아요."

오른손에 든 맥주병을 왼손으로 바꿔쥔 다음에야 "오늘"이 생각나더군요. 이미 이벤트 마감되어 늦었지만(그러기에 별 부담없으니 더 좋긴 하죠. 헤헷), 그리고 좀 더 게으름피면 이십여분 남은 플라시보님 생일이 지나갈지 모르지만, 일단은 시작하렵니다. 생일축하를 가장한 내가 하고픈 넋두리를.

 


플라시보님과의 인연. 을 생각하니 이녀석이 먼저 떠오릅디다. 벌써 햇수로 2년 전이네요. 지리멸렬했던 기말고사기간, 심심풀이로 별 생각없이 님 서재의 소 뷰티펄에서 목격한 책 읽는 사람 모양 스탠드(참조: http://www.aladin.co.kr/blog/mypaper/4272)를 보고 혼자 열광하고선 이거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고 했던 거. 아이디어가 정말 상큼했고 만드는 과정도 꽤나 즐거웠어요. 세탁소 옷걸이와 칠성 사이다 1.5l 패트병, 그리고 허접한 도기 재질의 소켓이 내 손에서 변해가는 과정이. 그리고 또 즐거웠던 게 하나 더 있죠. 이녀석의 원형을 마주하고 님의 글 읽어나가면서 "정말 만만찮은 사람 하나 있구만" 이던 감상이 "이 사람 만만찮아도 괜찮은 사람 같은데?" 로 바꿔가던거. 이사람이랑 친해지면 꽤 즐겁겠구나 싶던 거. 그때 일상으로의 초대. 는 지금보다 간결했지만 임팩트는 지금보다 더 강렬했거든요. 여튼 그랬습디다. 크리스마스때 즈음해서 저녀석의 동생이 D시로 떠나간 건 아이디어와 즐거운 공작 과정에 대한 고마움 절반, 저런 흑심이라면 흑심(?)이 적당히 섞여 있었죠. 뭐 또다른 의미를 찾자면, 오고가는 선물이 유난히도 많은 알라딘에서 아마도 저 녀석과 님께 받은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가 알라딘 서재에서 오고 간 최초의 선물이 저녀석이 아닐까. 그런 뻘생각도 했죠. 여튼, 저 녀석에겐 여러모로 감회가 큼니다.

생각해보니 플라시보님을 알게 된 지난 일년 반, 거의 매일 서재질을 하면서 내 행동반경의 상당량, 즐거움의 상당 부분은 소 뷰티펄에 열광을, 소 굿에 범접하지 못할 세계를, 그리고 일상으로의 초대를 때로는 퍼지게 웃어재끼며, 때로는 환장하며, 때로는 무지 심각하게 읽어나가며 얻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듯 하네요. 무엇보다 큰 수확은, 님의 글을 통해 나와 전혀 다른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법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게 제일 클 겁니다. 님의 주변에 명멸하는 만만찮은, 혹은 하찮은 사람들의 일상과 행동을 그냥 풀어놓는듯하면서도 꽤나 세심하게,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의 원인까지를 풀어내셨으니까. 그거 기억하시는지요. 님 즐찾 200이벤트때 풀어놓았던 글(http://www.aladin.co.kr/blog/mypaper/451930)을. 그런 이야기를 했었죠. 내가. 실제로 얼굴 먼저 마주하는 게 아니라 글을 통해,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게 된 게 다행이라고. 기본적으로 매우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나라는 인간은 아무리 타당한 이유가 있어도 만약 직접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면: 같은 직장 사람 면상에 커피를 붓고 4가지없는 중삐리들에게 응징. 을 가하며 버르장머리없는 애들 엄마에게(둘 다 수식) '니 새끼 골통은 멀쩡할 줄 아냐'라는 말을 퍼붓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또 실제로 거리를 두었을 거라고. 근데 플라시보님의 글을 통해 그 행동의 기반을 따지고, 이걸 이해하다보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쉽사리 이해못할 주변사람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되덥디다. 가까운 예로 말이죠, 내가 울산에 와서 처음으로 쓴 심각한 글 '아저씨'(http://www.aladin.co.kr/blog/mypaper/632885). 내가 플라시보님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그냥 읽고 흘려버렸더라면 '아저씨'같은 글은, 글에 등장한 '아저씨'들을 불쌍하게 생각하지는 못했을 거에요. 그냥 대놓고 혐오만 했겠지. 저 간극을 메운 원동력의 일부, 아니 상당수는 님 덕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냥, 늘상 듣던 말, 인간에 대한 시선은 언제나 따뜻해야 한다는 말, 이걸 가장 설득력있게 전해 준 건 플라시보님의 글이었거든요. 이제야, 아주 늦게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에이... 열두 시 넘어 이제 정말 뒷북. 이 되어버렸지만 이왕 말 길어지는거, 그냥 쭉 이어쓸렵니다)

변화. 라는 거.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것. 좋은 변화를 즐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그런 변화의 여지. 가 플라시보님께 감지되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플라시보님 사진이, 꼭 메이크업을 하고 멋을 낸 사진이 아닌 그냥 플라시보님 자체를 담은 사진이 올라오는 거. 그만큼 자기애가 더 강해졌다는, 조금 더 나를 열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선 게 아닐까 해서 말에요. 누구나 말해요. 난 정말 사진빨 안받는다. 고 말에요. 근데 그건 아니덥디다. 모자라나마 사람들 파인더 속에 몇 년 담다가 든 생각인데, 누구나 실제 모습보다 잘 나오는 구도와 각도는 어느 얼굴에나 있어요. 그걸 찾아내서 담으려는 노력은 긍정적인 자기애로, 그 각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내 모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인지력 상승과 성숙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요. 그게 플라시보님의 신변상 변화가 요동친 올 초봄부터 크게 감지되덥디다. 일신상의 변화를 그렇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끌어올렸으니 뒷일 그다지 걱정 안해도 된다고 주제넘게 해석한다면, 그런 모습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 말한다면 어린놈이 별 소리 다한다고 피식 웃을지도 모르겠수. 근데 난 그런 생각이 드는 걸. 헤헷...

 

그래서 불쑥. 생일 축하해요.

 

솔직히 생일 맞은 플라시보님이 너무 부럽다우. 계란 한판(난 플라시보님이 작년부터 가끔 하시던 이 말이 이렇게 좋은지 몰라. 헤헷..)채운 지금도 자라는 플라시보님의 '자기애', 이녀석에서 뿜어져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아직은 자라고 있으니말야. 오늘 오고가는 사람들의 축하 인사말과 술잔 속에 그저 웃으며, 그저 즐기며 서른의 문턱을 만끽하시라구요.

뭐 또.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서식하는 매너니, 가끔 또 스윗매직님과 작당을 해서 술을, 밥을 먹으러가는것도 좋고 또 여행을 가는것도 즐겁겠죠. 그 중간중간에 파인더에 그런 기록을 남기는 건 더욱 더 즐거운 일일 테구요. 앞으로 더 많은 환락과 쾌락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미 이십분이나 지나버렸지만 생일 축하하우. 즐겁게, 그리고 내년까지 건강하라구요. 몸도 마음도.

 

그리고 닫는말은 언제나. 잊지말자 무사안일 쾌락만땅 ^_^o-

 

P.S. 태양문구 납품업자 매너가 될 날을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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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5-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의 인연은 끈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