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MBC에서 꽤 늦은 시간에 이 영화를 방영해 줬다. 처음에는 촌스러운 등장 인물들의 모습들을 보고 그저 그런 옛날 영화겠거니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태 왜 이런 영화를 모르고 그냥 지나쳤나 싶을 정도로 괜찮은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말 그대로 ordinary 했던 한 4인 가족이 어느날 큰 아들 버크가 동생 콘래드와 함께 보트놀이를 갔다가 그만 사고를 당해서 죽는다. 살아남은 둘째 아들 콘래드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고 그 일로 정신병원에 4개월 동안 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한다.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아버지 칼빈. 하지만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다시 보통 사람들의 생활로 돌아가기는 역부족이다. 콘래드와 아내 베스의 사이는 이상하게 어긋나기만 한다. 콘래드는 다시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상담을 받고. 처음에는 의사가 별로 하는일도 없는것 같아서 화만 내던 콘래드는 조금씩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얘기한다.

이들의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큰 아들인 버크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둘째 아들인 콘래드가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지만 문제는 다른곳에 있다. 그 문제는 바로 어머니이자 아내인 베스에게 있다. 그녀는 아들 버크의 장례식장에 가면서도 남편의 옷에 신경을 쓸 정도로 남의 눈을 의식하고. 아들 콘래드에게는 자상한 어머니인척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경질적으로 행동을 한다. 그녀는 남들이 하는 얘기 중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말 하고 싶지 않거나 자신이 듣고싶지 않은 말을 하면 다른 얘기를 꺼내거나 무시를 하고 넘어간다. 그녀는 아들 콘래드와도 남편과도 진심이 없다. 그저 밖으로 보기에는 최선을 다하는 다정한 주부이자 어머니 같지만 가족들간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아들 콘래드만 느꼈던 것을. 점차적으로 남편인 칼빈도 느끼게 되면서 칼빈은 그녀에게 얘기를 한다. 그 얘기를 들은 베스는 새벽에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리고 남아있는 아버지 칼빈과 콘래드는 서로를 껴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고 한다.

아버지인 버크와 콘래드의 경우에는 죄책감을 심하게 느낀다. 함께 보트놀이를 하다가 형은 죽었는데 자신만 살아남은 콘래드는 그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아버지 버크는 콘래드가 자살 시도를 한 것에 역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베스만이 지금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으며 자신은 이대로가 좋다고 말한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자는 남편의 말에 그녀는 화를 내고, 둘만의 휴가 여행에서 아들 걱정을 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도 아이에게 조정을 당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요리도 하고 주변 친구들도 챙기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사는등 실제 생활하는데 있어서는 조금도 게으르지 않은 아내와 어머니의 역활을 하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대화를 하거나 해결을 하려고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몇십년을 살았지만 이들은 서로 단절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폭을 좁히려고 조금씩 노력을 해서 베스가 집을 나갔을때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만 베스는 그러지 않는다. 그녀는 남이 어떻게 볼까가 중요하며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척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베스가 집을 나가기 전. 버크는 이런 얘기를 한다. 당신은 단정하고 결단력도 있고 좋은 아내이지만 강한 사람은 아니라고. 그래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누구보다 잘 지낼 수 있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면 견디지를 못한다고 말이다. 그냥 보기에는 이 가정에서 가장 잘 견뎌내고 있는 사람은 베스 같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남의 감정을 헤아리려고 생각하지 못하는 베스야 말로 가장 못견디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둘째 아들마저 자살시도를 했지만. 그것을 드러내어 슬퍼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슬픔은 빨리 덮어버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절의 생활 습관들을 되풀이하면 모든게 괜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생각했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고, 한번쯤은 서로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어야 할 가족들이, 그러지 않음으로 인해 서로 얼마나 불행한지를 말이다. 내 경우는 물론이고 내 주변만 봐도 그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모두들 상처를 받았고 상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입다물고 넘어가기만 하면 세월이 알아서 다 잊게 해 주고 덮은채로 굳게 해 줄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다 상대방이 그 일에 대해 얘기를 하자고 하면 그런 사람들은 말한다. 나중에 하자 혹은 지금 꼭 그런 얘기를 해야겠냐.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 나중이나 그 얘기를 할 만한 적당한 시기 같은건 따로 찾아오는게 아니다. 문제를 느낀 바로 그 순간이 그 얘기를 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예전에 엄마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남자를 따라 떠날 수 있냐고. 그것도 그 남자의 가정마저 송두리째 부수어 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그것에 대해서는 말 하지 않았다. 다만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는지 또 자기가 얼마나 나와 내 동생을 사랑해서 그것 때문에 날마다 울었는지를 말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 그게 아니었다. 그냥 엄마가 한번쯤은 잘못했다고 나와 여동생과 아버지를 한꺼번에 버려서 미안하다고 말 하는 것을 듣고 싶었었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모를 것이다. 그게 얼마나 나에게 큰 골로 남았는지를 그래서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당신이 나를 낳은때 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일에 대해 완전하게 용서하고 있지를 못하는지 말이다. 그날 이후로 엄마와 나와의 대화는 늘 어긋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하려고 하는 말 중에서 듣고싶지 않으면 귀를 막고 소리를 질렀으며 자기를 내버려 두라고만 했다. 가족이란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를 할 수 있다. 다만 그 용서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었을때만 가능한 것이다. 아이인 니가 뭘 아냐고 혹은 어른들이 하는 일에 끼여들지 말라고 하면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똑같은 가족이고 가족이라면 나이와 위치를 불문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걸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계속 모를 것이다.

가족과도 마음을 여는것이,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불가능하기도 하며 그 일로 인해 끝내 가족이 해체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어려울때 서로 돕고 위로하며 잘 살아보세 하는건 현실에서 늘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이제는 나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다. 서로 같은나라 말을 하고 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 그 배에서 내가 잉태되기까지 했던 엄마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슬픈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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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5-07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자신도 모르는 자기를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죠. 그걸 깨달았어요.

키노 2005-05-07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 이 영화보고 무척 감동^^ 하지만 요즘은 볼거리 풍성한 영화에 익숙하다보니 이런류의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네요..

플라시보 2005-05-0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네 자길 통제하기도 무척 힘이 드는 일이죠. 그리고 마음을 여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구요.

키노님. 저도 이걸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이 헐리우드가 그래도 옛날에는 꽤 쓸만한 영화를 만들었구나 하는거였습니다. 요즘 영화들은 돈도 많이 들이고 스타들도 등장하지만 어쩐지 보고 나면 늘 허전한 영화들 뿐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