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노 히데야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알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였다.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개나소나 다 알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 정도나 들어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참을 일본 애니메이션에 미쳐있던 여동생이 에반게리온 비디오를 어디선가 구해 오면서 부터 나 역시 이 만화에 반쯤 미치게 되었다. 어느정도로 미쳤었냐면 보고 또 보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주제가까지 모조리 다 외웠을 지경이었다. 일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히라가나라도 다 쓸 줄 아나 몰라) 내가. 차마 쪽팔려서 한국말로 가사를 따라적는 짓은 하지 못했지만 주제가를 너무나 많이 들어서 단지 귀익음 만으로 따라부를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호출기에 이카리 신지군을 메달고 다녔고 여동생이 거의 장인의 정성으로 만든 에바 1호기(초호기) 를 잠시 내방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코딱지 만한 엔트리 플러그를 잃어버려서 집구석 장판을 들어낼듯 찾아헤매었었다.
에반게리온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여동생이 나름대로 구해온 자료를 보면서 부터였다. 에반게리온에 깔린 동양철학과 기독교 사상은 이 만화를 단순하게 애들이 보는 만화 그 이상의 무언가라고 느끼게 했다. 거기다 안노 히데야키의 그 고집스러움은 정말이지 홀딱 반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는 에바의 디자인을 할때 일부러 완구로 만들기 불가능하게 만들어서 완구회사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현재 애니메이션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흥행요소를 과도하게 이용하지만 결국에는 이 눈요기감으로 끌어들인 팬들을 진정한 팬으로 승화시켰다. 비록 극장판에서는 에반게리온에 반 미친 관객들을 이제 그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라고, 오늘날 에바가 있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했을 그 오타쿠들을 외면하는 엄청나게 용감한 짓을 하긴 했지만 팬들은 결코 나가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들은 이미 우리를 비웃을망정 멋져요 멋져를 연발할 만큼 거기에 미쳐 있었으니까 말이다. 반복되는 셀. 미사토 대위의 서비스 서비스 씬. 사도 출몰 에바가 나서서 해결 이라는 단순한 스토리 구조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모든것이 다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이 만화가 단지 로봇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로봇 즉 에바는 안노 히데야키가 하고 싶었던 인간관계에 관한것을 말 하기 위해 또는 팬을 양상해서 중간에 쫑내지 않고 계속 만화를 이어가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인간이었다. 나는 이 만화를 보면서 인간과 인간관계. 그리고 의사소통에 대해 해 왔었던 내 생각들과 일치함에 진심으로 감동을 먹었었다.
아까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보다가 불현듯 TV를 켰는데 애니원 채널에서 에반게리온을 해 주고 있었다. 아직은 아스카가 등장하기 전이니 (아스카는 오늘 등장한다.) 초기구나 생각했는데 역시 제 7화밖에 안되었다. 애니원에서 에반게리온은 매주 수, 목, 금 이렇게 3일간 11시 정각에 해 준다. 한 화만 해 주기 때문에 예전에 8개의 에피소드가 들어가있던 비디오를 보던 시절에 비해 말로 할 수 없이 감질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아직은 초창기라서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서비스컷이 난무하고 그저 그런 애들용 만화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참고 보다가 보면 에바는 진면목을 보여준다. 혹시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기회에 한번 보길 바란다. 감히 만화 그 이상의 만화라고 추천하고 싶다. 내일 11시. 나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에바의 주제가를 따라부르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소파위에서 들썩이며 이 만화를 볼 것이다. 아 물론 마지막에 엔딩송인 플라이 미 투더 문까지 따라부를꺼다.
에반게리온은 만화 전문 채널인 애니원에서 매주 수, 목, 금요일날 밤 11시에 방영합니다. 오늘은 제 8화 아스카의 등장 차례입니다. 더빙판이 아니고 자막판입니다. (성우들의 목소리가 압권입니다. 특히 리츠코의 목소리가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