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X같을때가 있나. 방금 리뷰를 겁나게 길게 썼는데 또 날려먹었다. 영화리뷰 연달아 두번 이러고 나니 힘이 쫙 빠진다. 최대한 처음 필을 살려서 써 보겠지만 너무 길게 썼고 난 머리가 너무 나쁘다. 에이XX)

인생은 질문을 '왜'라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애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어도, 회사에서 짤려도 우린 왜 라는 질문을 할 수있지만 내 인생이 왜 이 꼬락서니가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왜 라는 질문은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질문을 하게되면 우리는 우리가 가장 보고싶지 않아 했던 내 안의 괴물과 얼굴을 마주할수도 있을 것이고, 또 인생이란게 순도높은 '나' 라는 이유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 복잡 다난한 것이므로 도대체 어디서부터 누구에게 질문을 들어가주셔야 하는지 감이 안 와서 일수도 있다.

주인공 선우는 이 '왜' 라는 질문 하나 때문에 그야말로 달콤했던 인생이 하루아침에 엿되어 버리는 인물이다. 차라리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으면. 영화사에서 광고 홍보문구로 쓴 의리없는 전쟁 (참 촌스럽기도 하다.) 따위는 시작되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양아치나 깡패라고 하기에는 좀 급이 높은 조직원 선우. (굳이 비교를 하자면 넘버3의 한석규쯤 된다.) 주먹도 쓸만하고 머리도 좋고 일 처리도 깔끔한 그는 보스(김영철)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다. 그러던 어느날 보스는 보스로써 하기에 좀 면팔리는 부탁을 한다. 3일동안 샹하이 출장을 가는데 그 사이에 자신이 사귀고 있는 젊은 애인인 희수(신민아)를 감시 해 달라는 것. 희수에게 다른 남자가 있는것 같은 감이 오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면 알아서 처리하거나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고 한다. 보스는 떠나고 선우는 희수를 만난다. 그런데 선우는 희수를 처음 본 순간부터 흔들린다. 그녀는 흔히 암흑세계의 보스들이 하나씩 두는 요부스타일의 정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맑고 깨끗한데다 첼리스트라는 번듯하고도 아트스런 직업까지 가지고 있다. 미행 3일째 선우는 희수와 그녀의 애인이 있는 현장을 덮친다. 보스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전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는 희수의 눈물에 맘이 약해지고 이 일은 없었던 일로 덮어두자고 한다. 자신과 그들만 입다물면 모든게 괜찮아지리라 믿었던 선우. 하지만 이미 보스는 그 사실을 알고 선우를 제거하고자 한다. 그야말로 구사일생 끝에 살아남은 선우는 이제 전쟁을 시작한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라는 질문 하나를 깃발처럼 세우고 살찢기고 피튀기는 전쟁을 말이다.

스토리만으로 볼때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는 영화이다. 선우가 생각하기에는 보스의 애인과 침대에서 뒹군것도 아니고 단지 그녀의 부정을 (다시는 안한다는 약속하에) 눈 감아준것 뿐인데 그걸로 7년동안 개같이 충성을 바친 보스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건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는다. 살아남긴 살아남았지만 그동안 겪은 과정이 너무 억울해서 도저히 넘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너죽고 나죽자는 심정으로 보스에게 복수를 한다. 다소 과한 처벌을 내렸던 보스는 뭐 '질투는 나의 힘'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안그래도 젊은 애인이 불안해 죽겠는데 거기다 바람피우는 놈도 모자라서 지 조직원놈까지 뻑이 가서 봐주려고 하다니 눈알이 뒤집힌 것이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이 영화에 더 이상은 없다.

이렇게 스토리가 안되다 보니 이 영화 스타일로 밀고 나간다. 조명에 카메라에 배우들 연기까지 거의 뽀다구란 뽀다구는 다 잡는다. 거기다 감독 양반. 중간 중간 관객을 웃기기까지 하려고 한다. 지금은 한물간 홍콩 느와르지만 일단 멋지구리하니 관객들은 오~ 하고 감탄한다. 그런가하면 조용한 가족에서 송강호의 '저 학생 아닌데요' 필의 변주도 꽤 여러번 등장. 관객들 와~ 하고 웃는다. 마지막으로다 피 제대로 튀겨서 속이 좋지않은 관객들 악~ 하는 비명도 질러준다. 감독은 마치 '자 자 애들은 가라' 로 시작하는 입심좋은 약장수처럼 관객들을 들고 얼르고 굴린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대체 뭘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웃고 비명지르고 감탄사 내뱉는 동안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용은 개뿔 영화는 스타일이야 스타일'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내내 들려오는 것 같더니만 정말로 내용은 개뿔이고 스타일만 남아버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김지운 감독이 영화를 쉽게 가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는 관객이 영화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반응중에 눈물 짜는거 빼고는 다 이뤄낸다. 그래 어쩌면 그것 만으로도 영화는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생각이나 고뇌는 없어 보인다. 영화 보면서 감탄사 연발하고 중간중간 호러틱한데다 웃기까지 했는데 뭘 더 바라냐는듯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다 '이젠 그만' 하면서 막을 내린다.

모든 예술은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던 간에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재밌거나 단지 끔찍하거나 단지 멋지다는 것 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김지운 감독은 잔재주만 부렸지 정작 가장 중요한 메세지. 즉 하고자 하는 말이 없다. 물론 그게 니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마 따위의 시건방진 말이라면 듣는 관객. 짜증지수 만땅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토록이나 할 말도 전하고 싶은 메세지도 없는 영화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영화는 서커스도 마술도 아니다. 현란한 재주로 잠깐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게 전부는 아니라는거다. 러닝타임 내내 단 일초의 지루함도 용납할 수 없다는듯 꽉 짜여져 있지만 정작 그 짜임안에 가장 큰 무늬가 보이질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런 스토리에 이정도 화면을 뽑아내는 재주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글쎄다. 나는 자꾸 김지운이 관객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차라리 김지운이 아주 뭘 몰라서 그랬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처음 찍어서 그저 관객들이 자리 안뜨고 봐주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초짜도 아닌데, 이제 영화를 통해 뭔가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는것. 그건 두말할것 없는 시건방짐이다. 굳이 뭔가를 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관객이 들고 돈벌이가 되는데 그 쉬운길을 놔두고 뭣하러 어려운 길을 택하냐는 것이다. 예술가입네하고 관객을 향해 잘난척을 하는것도 꼴불견이지만 이렇게 할 말은 개뿔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저 화면만 근사하게 들이대는 감독도 재수없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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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1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04-1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으하하하 비판은 나의 힘이라오^^

픽팍 2005-04-1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지운 감독은 장화홍련 때문에 싫었어요. 제가 구독하는 프리미어 잡지 기자는
김지운 감독 이제는 시나리오 작가가 필요할 때도 되었다라고 하던걸요;;;;감독이 욕심이 많아서 시나리오를 오로지 혼자 쓴다는;;;낭패죠;;;

플라시보 2005-04-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아. 프리미어 구독하시는군요.^^ 제 생각에도 김지운이 이제는 시나리오 작가를 쓰거나 아니면 자기가 써도 하고싶은 말이 무언가를 생각하며 썼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스토리 어느정도 짜 놓고 스타일 멋지게 만드느라 고민하지만 말고 말입니다.

비로그인 2005-04-12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이거 같이 본 지인은 "뭐냐?? 그래서 뭐 어쩌란 영화냐??" 라고 말하면서 한숨 쉬더군요.. 저는.. 그냥 그저 그랬어요. 저 포스터에 보이는 카피처럼 "끝까지 폼나게"가는 영화더군요. 그래도. 이병헌은. 참. 좋더군요. 음하하

플라시보 2005-04-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마음처럼님. 음. 저도 이병헌의 연기는 괜찮았습니다. 감독이 잡고자 하는 폼을 아주 제대로 잡아준것 같더군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