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된 첫날. 나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를 봤다. 하필 백수가 되자마자 아이들이 버려진채 굶는 우울한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 나는 이 영화가 몹시 보고싶었었다. 대체 칸영화제에서 최민식 아저씨의 무시무시한 연기력을 한방에 이긴 일본 소년의 연기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싶은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미들 알겠지만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싱글맘인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편지와 약간의 돈을 남기고 사라지고. 네 명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엄마없는 하늘아래서 살아가야 한다. 원래부터 가사일을 잘 해 왔던 아이들은 처음에는 엄마가 없어도 큰 표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아이들은 남루해진다. 거기다 돈이 떨어져서 수도와 전기가 모두 끊기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비록 막내 여자아이가 사고로 죽기는 하지만)
영화는 무척 건조하다. 마치 다큐멘타리 처럼 아이들을 담아낸다. 그 속에는 엄마가 없어도 이렇게나 씩씩하고 꿋꿋하게 자라는 우리들, 혹은 엄마가 없으니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아이들의 세상살이 같은 시선은 전혀 볼 수 없다. 그냥 아이들은 살아 갈 뿐이다. 엄마가 있어도 엄마가 없어도 말이다.
나는 영화가 아이들을 그린 시선도 새로웠지만 아이들을 버리는 싱글맘을 다룬 시선도 좋았다. 내용만으로는 세상없이 때려죽일 나쁜년으로 그려야하는게 옳겠지만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꼭 아이들을 버려야만 하는 절실한 상황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아이의 엄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이다. 하나 다른게 있다면 모성본능속에 자신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나도 그렇지만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자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인생이나 행복은 더이상 기워서 신기도 힘든 검정고무신보다도 더 가볍게 버렸었다. 그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고 모든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를 하기는 하되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되어져야 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되는 일 처럼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모성본능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아이를 가진 엄마들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조금도 없는 것일까? 물론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자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이들을 버려두는 극단의 방법을 택했지만 보통의 엄마들은 아주 작은것 마저도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살아간다. 아이들을 먹여살리고 키워낸다는 엄청난 일을 과연 모성본능에만 기대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마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당연하게 해 준다면야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만약 영화에서처럼 엄마가 엄마로써가 아닌 여자로써 혹은 인간으로써 자신의 행복에 조금 더 중점을 둔다면 아이들은 도대체 누가 키워야 할까?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되니 머리속이 한없이 복잡하긴 했지만 이 영화는 또 다른 생각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해 준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만큼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불분명한 영화도 없을 것이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이 영화는 엄마를 아주 나쁘게 묘사를 하고 아이들을 좀더 불쌍하고 처량하게 만들어서 아이를 버리면 안된다는 아주 당연하고도 확실한 메세지를 전달할수도 있었겠지만 감독은 그러질 않았다. 그저 담담한 현실을 보여주듯이 그렇게 어떤 주장과 색도 담지 않은 영화를 찍어냈다. 누가봐도 전하려는 메세지가 뻔한 영화를 가지고 그렇지 않게 만든것. 그것은 감독이 굉장히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불을끄고 스크린으로 거대한 영상을 보여주는 영화는 얼마든지 환상을 심어주거나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심어줄수 있는데 감독은 그러지 않으니 말이다. 현실에서 어떤 메세지도 환상도 읽어낼 수 없는 것 처럼 이 영화는 현실 그 자체를 그려낸다.
내가 똑바로 본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살아남는 것 그 자체를 말하는것 같다. 산다는것. 그렇게 살아서 숨쉬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하는. 아이들은 굶기는 하지만 내내 불쌍한 모습으로 살지 않는다. 그 속에서도 나름대로 삶은 모습을 갖추고 의미를 가지고 행복도 가진다. 젹어도 엄마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아이들의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영화는 아니었다.
아까 꽤 근사하게 리뷰를 썼는데 홀라당 날려먹었다. 그럴때마다 정말 컴퓨터를 씹어 먹고싶어진다. 언제쯤 컴퓨터는 적어도 정보를 다 날려보내는 헉겁스럽고 치명적인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새로 쓰니까 처음의 필은 온데간데 없고 내가 봐도 먼 소린지 모르겠는 괴상한 리뷰가 나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