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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평점 :
참 무식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실제로도 어느정도 그런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나는 책에 대해 딱 하나만 기대를 한다. 그것은 '재미' 이다.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고 해도 또 엄청나게 유익하다고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도무지 읽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은희경이라는 작가를 좋아한 이유는 오로지 재밌는 책을 써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새의선물 이래로 아주 뚜렷하게 재미난 작품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여덟작품 모두 그럭저럭 별 셋에서 넷 정도는 흔쾌히 줄 정도의 재미가 있었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 책 비밀과 거짓말은 좀 미안한 얘기지만 도무지 아무런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책은 여태 은희경이 글을 쓰던 스타일과 많이 다르다. 아예 작가가 의도를 하고 이제는 좀 달라져 보리라 작정을 한것 같은데 결과는 그저 그렇다.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내내 궁금했었다. 기승전결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적없이 나열해대는 주인공의 얘기들. 그것도 모자라서 간혹 끼여드는 주변인들의 삶은 어떤 조화로움도 보여주지 못한다.
크게 보자면 이 책은 K읍이라는 곳에 살다가 이제는 도시로 떠나와 어른이 된 영준과 영우 형제의 이야기이다. 허나 여기에 갖가지 다른 얘기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마치 큰 비밀처럼 다루어지는 아버지에 관한 것은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맹숭맹숭하게 끝이 나 버린다. 원래 사는게 다 그렇지만 그래도 소설에서는 좀 더 재밌었도 되지 않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2년 반)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그랬다. 읽는 나도 이렇게 재미가 없는데 쓰는 사람은 오죽했을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내가 은희경이라는 작가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이전 스타일과 너무도 달라져버린 글은 재미를 붙이기가 힘들었다. 할말이 없는데 길게 길게 말을 하는 사람옆에 있는것 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고 힘들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산 책은 무조건 읽어치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없었다면 애진작에 포기했을 것이고. 은희경 작가가 뭘 남겨주진 못해도 적어도 재밌게 읽을 책만은 잘 쓴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덜 읽힌채로 그냥 뒹굴었을 것이다.
언젠가 나는 은희경이 일기장식 소설을 써댄다고 지겨워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점에서 보자면 적어도 일기장식 소설은 아니다. 일단 주인공이 여자도 아니고 남자 두명이니 본인의 일기일래야 일기 일 수가 없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어떤 작가들은 자기 얘기나 약간 변형하고 뒤틀어서 쓰는것에 만족해야지 완전한 창작을 하려고 하면 안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은희경은 이 책에서 완전한 창작을 시도했고 그 점에서는 높이 사 줄만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창작물이 너무나 재미없는 것을 말이다.
새의 선물이나 혹은 그 일련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재미를 원한다면 이 책을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달라진 은희경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만큼 적당한 책은 없을 것이다. 재미 문제만 별도로 한다면 이 책을 정말 은희경이 쓴건가 싶게 너무도 그녀와 다르다는 점 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