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이미 올리버의 편안한 요리
제이미 올리버 지음, 오정미 옮김 / 삼성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나는 제이미 올리버가 누구인지도 몰랐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유학한걸 티내지 못해 안달인 남자를 사귀게 되었고 그 남자 덕분에 제이미 올리버를 알게 되었다. 아직 케이블 티비에서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쑈를 방영하기 전이여서 그는 제이미 올리버의 네이키드 쉐프를 어디가서 CD로 다운받은 다음 자막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자막까지 달고, 심지어는 제이미의 원서를 사서 번역까지 해 주었다. 누가 보면 제이미 올리버 본인이 아닐까 싶게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나는 제이미 올리버를 알게 되었고 요리 프로를 그저 재미로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제이미 올리버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영국에서 아주 유명한 스타급 요리사이다. 요리사라고는 하선정이나 한복려 선생처럼 조용조용한 말투에 설탕 두 큰술, 간장 한 큰술, 파 1,4cm어쩌고 하면서 조신한 요리프로를 진행하던 아주머니들 밖에는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만큼 그의 요리쑈는 파격적이다. 제이미 올리버는 요리를 하다가 재료가 땅에 떨어지면 그대로 주워서 후후 분 다음 다시 쓰고, 레몬즙이 필요하면 직접 손으로 꾹 눌러서 짠다. (실제로 그는 레몬즙짜는 기구를 선물로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시간만 나면 하얗게 표백한 행주로 도마를 훔치고 손을 씻고 닦고 하는 요리사들과 달리 제이미는 요리를 하면서 치운다거나 손을 닦는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의 요리는 스튜디오가 아닌 제이미의 집 부엌에서 진행되었고 스튜디오 부엌에서 이미 재료를 다 꺼내놓고 시작하는 여느 요리사들과 달리 제이미는 수시로 자기 집 냉장고와 찬장등을 열어서 재료들을 꺼내가면서 요리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요리사 옆에 서 있던 진행자가 완성된 요리를 한입 먹어보고 뻔한 표정으로 '정말 맛있네요' 를 외치며 끝나는 요리 프로들과 달리 제이미의 요리 프로는 진짜 제이미의 친구나 가족들이 등장해서 요리를 푸지게 먹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런점 때문인지 제이미 올리버는 순식간에 그야말로 스타급의 요리사가 되어버렸다. 영국에 있는 그의 레스토랑은 눈튀어나오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일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는 이제 비단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었다. 내 생각에는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가 기똥차게 맛있다기 보다는 바로 저런 쇼맨쉽 덕분에 유명해진게 아닌가 싶다. 요리를 요리에서 놀이로 만들어버린 제이미 올리버는 현재 세게에서 가장 잘 나가고 가장 유명한 요리사이다.
이렇게 유명한 제이미 올리버는 TV요리쑈 뿐 아니라 책도 여러권 냈다. 그리고 그의 책 중에 일부를 번역해서 낸 것이 바로 제이미 올리버의 편안한 요리라는 본 책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그다지 큰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제목은 제이미 올리버의 편안한 요리 이건만 이건 절대 편할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재료가 너무 구하기 어려운것 투성이다. 제이미 올리버에게는 슈퍼에만 가면 (참 제이미가 요리쑈에서 늘 장보러 다니던 슈퍼는 명소가 되어버렸다.) 혹은 냉장고만 열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요리에 나오는 재료의 8할은 동양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름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재료들이 대부분이다. 설사 물건너온 식재료들을 파는 상점을 뒤지고 뒤져서 찾아내어 어찌어찌 만든다고 하더라도 오븐이며 여러가지 요리를 위한 조리기구들이 또 만만치 않게 필요하다. 밥솥에 전자랜지, 가스랜지에 믹서기 하나쯤이 전부인 평범한 가정에서는 요리를 위해 한살림을 장만해야 할 지경이다. 그래서 제이미의 주장과는 달리 결코 간편하게 할 수 있지가 않다. 시간과 돈이 모자람없이 풍족한 사람들에게는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제이미는 구하기 힘들만한 재료 대신에 넣을만한 간편한 재료따위는 설명해 놓지 않고 있다. 서양권 혹은 제이미가 살고 있는 영국땅에서는 제이미의 요리가 쉽게 따라할 만한 요리인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나로써는 감히 엄두도 내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책은 쑈 보다는 훨씬 재미가 없었다. 그가 그의 집 부엌에서 재료를 턱턱 꺼내어 요리쑈를 할때는 '우와 멋지다' 라고 했건만 막상 활자로된 그 이름도 어려운 재료들을 보자 그만 의욕상실에다 '저 재료가 대체 뭐람?' 하는 신경질까지 동반한다.
제이미 올리버의 광팬이라면 그의 요리책에 실린 글과 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게 행복한지 모르겠지만 정말 만들어 먹기 위해서 요리책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다른 책을 알아보라고 말 하고 싶다.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가 요구하는 각종 허브들과 소스들과 동식물 재료를 다 구하러 다니다가 보면 앵겔지수가 100이 나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제이미 올리버를 꽤나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악평을 쓰는게 마음에 조금 걸리긴 하지만 요리책은 뭐니뭐니 해도 [요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책] 이라는 기본을 생각해 볼때 내 악평은 조금도 틀린말이 아님을, 이 책을 보면 너무도 분명하게 깨닳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들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은 작살나게 찐다. 뭣보다 제이미 올리버 그 자신과 그의 요리를 끊임없이 소비했을 그의 아내 줄스의 통통함은 이미 넘어선 몸매가 그 증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