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싱글을 위한 이지쿠킹 - 웅진요리무크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집을 나와 산지도 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때부터 싱글이던 것이 아직도 싱글이며 앞으로도 별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싱글로 남아있을 나. 감히 독립생활 10년을 통해 가장 힘들었던 점을 말한다면 식. 바로 먹는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요리라는걸. 아니 거창하게 요리 할것 없이 한번이라도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밥상을 차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기 혼자 꾸역꾸역 먹자고 지지고 볶고 하는 것 만큼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없다. 엄마들이 몇십년이나 밥상을 차리면서도 한결같이 맛있는 음식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누군가가 먹어줄 사람. 맛에 대해 한마디라도 품평을 해 주며 맛나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만큼 칭찬해줄 사람도 없이 오직 내가 만들고 역시 내가 먹는 요리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싱크대 한쪽 구석은 각종 라면 (처음에는 한가지 라면만 먹다가 물리면 라면으로 갖가지 다양성을 추구한다. 허나 이것도 조금만 지나면 안다. 라면은 무슨 이름을 붙이고 어떤 맛을 낸다고 주장을 하건간에 다 라면이라는 것을 말이다.) 과 인스턴트 식품들이 가득 차 있고 이마저 귀찮으면 전화기를 돌려 '모모 반점이죠?' 하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끼니때가 되면 싱글들은 생각한다. '오늘은 뭘 먹지?' 가 아닌 '오늘은 어떻게 한끼 떼우지?' 하고 말이다.

이 책은 사실 오래전에 읽었었다. 그러나 리뷰를 적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적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비로서 나는 식사를 그저 어떻게건 한끼 잘 떼워볼까가 아닌 뭘 해 먹을까에 이르렀고 지금은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몇몇가지 자신있는 음식 레시피를 가지고 있으며 내가 먹어도 고개를 끄덕이는 음식 몇가지는 해 낼 줄 안다. 내가 이 책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넘쳐나는 요리책들 중에서 싱글들을 타겟으로 삼았고 그 중에서도 꽤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음식들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혼자 먹는 요리임에도 품위와 멋을 유지하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흔히 싱글들을 위한 요리는 품위고 멋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저 후다닥 빨리 만들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물론 그게 중요하긴 하다. 싱글들은 자길 위해 주방에서 장시간 지지고 볶고 튀기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그럴싸한 밥상을 차려보고 싶기도 하다. 대강대강 먹는 버릇을 하면 어떻게건 설겆이를 줄이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느라 라면을 끓여도 그릇에 담아내는게 아니라 남비째로 먹고 (라면 국물을 먹을때 남비로 바로 먹으면 입이 무진장 뜨겁다. 그뿐인가 국물을 흘리기 다반사다.) 김치 볶음밥을 해도 프라이팬에 숟가락 하나만 걸쳐서 먹게 된다. 이게 편하기는 한데 자꾸 이러다 보면 먹는다는게 참 비참하다 싶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게 아닌 살기 위해서 먹는 음식. 싱글이라고 늘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가수 이현우 (MC로, 탈렌트로 영화배우로 활동중이긴 하지만) 는 미국에서 살다가 혈혈단신 한국에 홀로 건너와 십년 넘게 싱글 생활을 했다. 처음 1~2년은 라면이나 중국집 전화번호로 버틸 수 있었겠지만 그도 어느순간 요리다운 요리를 해서 멋지고 폼나게 그리고 뭣보다 맛있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혼자 사는 남자이니 거한 요리는 힘들 것이고 우선 쉽고 간단한 요리부터 섭렵한다. 거기다 보통 아침. 점심. 저녁에 한정되어 있는 요리책들과 달리 싱글의 라이프 스타일을 적극 반영한 밤참이랄지 갑자기 지인들이 술을 사들고 들이닥쳤을때 같은 상황들에 따른 요리도 여러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얼마전에 이현우가 인터뷰를 한 잡지를 본적이 있는데 여기에 있는 요리를 정말 혼자서 다 했냐고 묻자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자기가 아는 요리만 가지고 책을 만들면 폼이 안날것 같아서 그랬단다) 그래도 어쨎건 간에 그가 전혀 요리에 관심도 없으며 손수 요리를 하지 않는데도 단지 인기를 이용해서 책을 팔기 위해 요리책을 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푸드 코디네이터랄지 요리전문가가 옆에서 어드바이스를 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싱글로 오랫동안 살아온 이현우의 음식 노하우가 이 책 곳곳에 가득하다.

물론 내 경험상 이 책처럼 해 먹으려면 집에 온갖 요리도구와 재료가 다 갖춰져야 한다. 시간과 여유가 넘치는 싱글이 아니면 따라하기 힘들겠다 싶은 부분도 간혹 눈에 띈다. 하지만 몇몇은 정말로 큰 도움이 된다. 한그릇 음식이랄지 국같은 경우는 따라해 보니 간편하면서도 맛있다. 어차피 혼자 먹을꺼 거하게 차리면 뭐하나 싶겠지만 이런 말이 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이라고. 또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무시하기 힘든것이 식욕이다. 그런데 단지 싱글이라는 이유 만으로 대강대강 먹고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바쁘고 귀찮으면 대충 한끼를 떼울수도 있겠지만 가끔 여유가 있을때는 나만을 위한 제대로 된 요리 하나쯤은 해서 먹어보는 것도 괜찮다.

언젠가 그런적이 있었다. 밥을 먹긴 먹어야겠고 뭘 만들긴 귀찮고 해서 커다란 양푼이에 밥과. 서로간에 어떤 조화도 이뤄내지 못할것 같은 반찬들을 때려넣고 막 비벼서 주걱 (숟가락들은 모두 설겆이통에 있었음)으로 퍼 먹은적이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그러고 먹으면서 TV를 봤는데 잠깐 방송사고로 송출이 중단되어 까만 브라운관에 내 모습이 비춰졌었다. 꾀죄죄한 차림새는 그렇다 치더라도 양푼이에 주걱을 들고 있던 내가 어찌나 보기 싫던지. 그날 이후 나는 밖에 나가서 당장 멀쩡한 식기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아무리 귀찮더라도 밥은 밥그릇에 국은 국그릇에, 반찬은 그 찬의 종류에따라 어울리는 접시에 덜어 먹었다. (예전에는 그냥 냉장고에 넣는 보관용기 째로 꺼내서 파먹고 또 넣어두고 파먹고 넣어두고 했었다.) 물론 설겆이가 좀 늘기는 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먹는다는게 그렇게 초라하거나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흔히 싱글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만의 공간을 어떻게 꾸밀까만 생각한다. 하지만 싱글을 꿈꾼다면 나는 꼭 요리책 하나 정도는 독파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이 책 하나 정도라도 가지고 있으면 나처럼 양푼에 비빈 밥을 주걱으로 퍼먹는 것은 면할수 있을 것이다. 싱글이라고 해서 멀쩡하게 식사를 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눌해 보이는 남자 이현우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분명히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미 리뷰가 너무 길어졌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에 별 다섯이나 준 이유는 흔히 요리책들이 요리사진과 레시피 만으로 이뤄진것에 비해 (그래서 주방에서만 보는 책인것에 비해) 이현우의 책은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루기도 하고 요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찍어두기도 해서 그냥 읽어도 재밌다. 꼭 요리를 하기 위해 두주먹 불끈 쥐고 보지 않아도 그냥 앉아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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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1-2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의 독서는 정말 다양하시군요. 전 사실 문학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본격 문학이 아닌 책들, 특히 요리 책같은 실용서는 쳐다도 안보는데, 님은 다양한 책들을 모두 소화하시면서 멋진 리뷰를 뽑아 내시네요. 이 리뷰에 바쳐진 추천들은 그런 점에 대한 경의의 뜻이 아닐까 싶네요. 이현우, 꿈 하나 부르고 사라져서 그저 그런 가수로 남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많은 일을....

플라시보 2004-11-23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제가 워낙 책 읽는 식성이 '이것저것 아무거나'여서 그런것 같습니다. 소설은 소설대로 좋고 실용서는 실용서대로 좋고^^. 이 책은 다른 요리책과 달리 레시피만 좔좔좔 적혀있는 책이 아니고 중간중간 이현우의 에세이랄지 사진이랄지 같은게 있어서 재밌습니다. 물론 요리도 따라해봄직 하구요^^ (그리고 이현우 꿈 하나 부르고 사라지리라 점쳤던건 저 하나가 아니었네요. 저도 오늘날 왕성한 그의 활동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