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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신호 - 모든 범죄에서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법
가빈 드 베커 지음, 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전 나는 피아노 학원을 갔다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파트 복도를 오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안아서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상대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가 잠바 주머니에서 칼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내 쪽으로 하고 있는 것은 보였다. 그는 거의 울것같은 나에게 조용히 따라오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따라가지 않았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헤아린 다음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그를 밀치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내 귀청이 다 찢어질 지경이었고 그날저녁 아파트에서는 어디서 사람 하나 잡나보다 싶어 모두들 집밖으로 나와서 무슨 일인가 살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본 엄마와 아빠에게 울면서 사실을 말했고 아빠는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그 사람은 끝내 잡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만 해도 그냥 이 얘기를 한번쯤 겪을 수 있는 무용담으로나 여겼었다. 하지만 책을 보고 나니 내가 저때 얼마나 잘 대처를 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따라오면 살려주겠다는 말을 표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내가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굳이 살려주겠다고 말한 것은 나를 죽일 의도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칼 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내밀었지만 그게 칼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칼이라고 단정짓고는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가 나지 않을까봐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헤아리는 것과 같은 준비과정을 거친 다음에 크게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그를 밀쳤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소리가 안나오면. 혹은 밀쳤으나 밀쳐지지는 않고 그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나를 찌른다면 등의 생각을 했더라면 나는 분명 그날 그에게 끌려갔을 것이다.
뉴스를 보면 날마다 사건 사고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학대하거나 스토킹하거나 살해하는 일은 매일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일어난다. 이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또 일면식도 없던 (적어도 피해자 쪽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에 노출 되었을때 해야 할 일은 뭘까?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바로 직관에 귀를 귀울이라는 것이다. 두렵다고 해서 벌벌 떨거나 운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받을때 가장 강한 신호를 느낀다. 인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 신호에 따라서 행동을 하면 옛 말처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누굴 죽이면 살인자를 단순하게 미친놈으로 생각한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총을 들고 쏘는데 또는 칼을 들고 찌르는데 그 누구라서 피했겠는가 재수가 없었지 뭐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떤 신호건 있게 마련이다. 암살범이 먼 건물 옥상에서 총으로 저격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떻게건 접촉을 하게 되어 있고 그 접촉 속에서 우리는 신호를 읽어내서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 같은건 없다고 이 책은 말한다. 미리 그 신호에 귀를 귀울이고 직관을 믿는다면 반드시 사람에 의한 위험은 어느정도 피해갈수가 있다.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위험한 일들은 자동차 사고나 가스 폭발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키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었지만 읽고난 지금은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험학한 시대에 산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내게도 언제든 협박이나 스토킹 혹은 살해당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예전에 모르고 했던 행동 (직관에 의한것)을 좀 더 알게 되었고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내 생존본능이 내게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을 하니 처음 예상과 달리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순간에도 강간과 살인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피해자가 되는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일은 절대로 내게서 일어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일어날수도 있으나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나아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꼭 한번은 읽어보길 바란다. 다만 하드커버에 책도 두터워서 나처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읽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