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의 아내
아니타 슈레브 지음, 최필원 옮김 / 대현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번역하신 최필원님이 내게 보내주신 것이다. 그분과의 인연은 알라딘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분이 번역하신 척 팔라닉의 소설에 대해 내가 서평을 쓴 것을 보고 이메일을 주신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갈등을 했다. 그분은 번역본이 나올때 마다 잊지 않고 내게 책을 보내 주시는 고마운 분이시기에 이 책에 대해 내가 과연 순수한 독자의 입장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작품이 아주 좋은 경우에는 나도 망설임 없이 좋은 서평을 쓰지만 솔직하게 말 하자면 이 작품의 경우는 읽기는 읽었으나 굳이 다른 사람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예 리뷰 자체를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래도 나는 알라딘에서 다른 님들이 쓰신 리뷰를 통해 책 읽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싶기 때문에 솔직하게 리뷰를 쓰기로 했다.

사설이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얘기를 해야겠다. 이 책의 내용은 한 여자가 남편을 사고로 잃은 후 숨겨져 있던 남편의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그녀에게는 사춘기인 딸이 있으며 남편은 항공사의 비행기 조종사이다.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갑자기 남편이 몰던 비행기가 추락을 하고 졸지에 그녀는 미망인이 된다. 추락원인이 석연치 않은지라 그녀는 언론이나 단체로 부터 시달림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과의 함께 하던 삶이 아닌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고보니 남편은 영국에서 또 다른 아내를 두고 두 아이까지 둔 것이었으며 자살이다 사고다 말이 많았던 비행기 추락은 남편이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조직이 남편을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을 누구보다 믿었던 그녀는 큰 충격을 받지만 사랑하는 딸과 함께 일상을 찾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사실 내용만 나열해 놓고 보면 이 소설은 충분히 재밌을 수 있었다. 일단 남편의 직업이 항공기 조종사라는 흔치 않은 직업에다 어느날 갑자기 밝혀지기 시작하는 그의 이중생활. 그 중 하나는 다른 가족이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장이 아닌 또 하나의 직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내내 지루하게 이야기를 끌고간다. 거의 70% 가량은 남편을 잃은 여 주인공 캐트린의 힘든 상황이랄지 과거를 추억하는 것으로 할애를 하고 나머지 30%에서 남편의 이중생활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남편의 이중 생활에 좀 더 촛점을 맞추고 캐트린이 남편의 이중생활에 대해 알아내어 가는 과정을 좀 더 흥미롭게 다루었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말 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지 사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캐트린은 남편과 오랜 결혼생활을 했고 딸아이도 있으며 아무런 불만 없는 행복한 가정의 주부이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죽고나자 그의 감춰졌던 부분이 수면위로 올라온다. 다 안다고 여겼던, 뭐든 공유하고 있다고 느낀 남편. 같은 침대에서 잠이들어 같이 눈을 뜨는 생활을 수년간 한 사이인데도 그녀는 남편에 대해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함께 하는 남편.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아내인 뮈어 볼랜드와 함께한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떤 남편의 모습이 진짜일지 궁금해 하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물어 볼 길이 없다.

그녀에게는 약간의 로맨스가 있을수도 있었다. 사건 직후부터 등장해서 계속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인데 나중에는 그 역시도 남편이 했었던 위험한 일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 그녀에게 따라붙은 조사원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 남편의 이중 생활을 알아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녀가 어떻게 그걸 밝혀내는지를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 소설은 충분하게 재밌을 수 있을 만한 요소를 골고루 갖추었다. 그러나 작가는 불필요한 감정적인 부분에 너무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고 정작 흥미로울 만한 스토리는 번개불에 콩을 구워 먹듯 후다닥 해치워 버린다. 분명 남편이 죽었고 그 남편의 이중생활이 있다는 정도의 암시는 책을 사자 마자 알고있는 독자들로서는 나중에 기다리다가 짜증스러워 질 요소가 충분하게 있다.  좀 더 흥미롭게 스토리를 잘 분배해서 나갔더라면 더 나았을 책이었는데 덮는 그 순간까지 아쉬웠다. 마치 좋은 원작을 가지고 원작에 미치지 못하는 영화를 찍어낸 감독을 볼때처럼 말이다.

책은 비교적 수월하게 읽히지만 좀 더 전문적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과 함께 발로 뛴 노력까지 더해졌더라면 좋았겠지만 이 책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한없이 미진하다. 결국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가지고 너무 감상적인 눈을 가지고 들여다봐서 심심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솔직히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그렇게까지 열광적이지는 못할 것 같다. 좀 더 힘있는 소설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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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06-0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신문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을 해 놨더라구요. 작가가 심리 묘사를 꽤 잘해 놨다고 하고, 특히 번역이 너무(?) 좋아 오히려 저자가 번역자에게 빚을지고 있다고. 근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 책 좀 신중히 고려해 봐야할 것 같군요.

진/우맘 2004-06-0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론가들은, 스토리텔링이 좋은 책 보다는 심리묘사에 치중한 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문 평론가들이 <재미있다!>는 말을, 저는 별로 안 믿어요.-,.-

플라시보 2004-06-0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 번역은 무리없이 매끄럽게 잘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최필원님이 번역하신 책들. 예를 들자면 미스틱 리버랄지 파이트 클럽 같은 경우는 정말 좋은 작품과 좋은 번역이 만난경우입니다.
진/우맘님. 이 책에서 심리묘사 부분도 저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섬세함 보다는 자잘함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며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기 보다는 계속 우회적으로 돌리기만 합니다. 물론 진짜로 큰 일을 갑자기 겪으면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기대하는 남편을 잃고 남편의 이중생활을 알게된 여자의 심리묘사는 없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