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나는 이 영화를 혼자서 봤다. 몇 번이고 보려고 했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를 않아서 계속 미루고 있다가 오늘 출근하면서 바로 표를 끊었고 사무실에 출근 체크기에 카드를 밀어넣고 부리나케 내려와서 아침 9시 30분 첫 프로를 봤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메가박스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며 (KTF멤버스 카드는 매월 1회 금요일날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또 오늘은 별로 바쁘지 않을것 같고, 또 지금 아니면 언제 보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회사에서 알면 정말 날벼락 맞을 일이다. 사우나가서 몇시간 개기고 오는 부장이나 출근해서 영화보는 나나 오십보 백보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완전하게 봤다고는 말 못하겠다. 중간에 한번 사무실에 들어가야 할 일이 있어서 20분 정도 자리를 비웠으며 마지막에 예수가 죽는 장면 이후로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아예 끝까지 못봤다. 그래도 뭐라고 쓰고 싶어서 그냥 내가 본 것에 대해서만 쓰기로 했다. 비록 완전하게 본건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의 내용은 다들 알리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일대기 중에서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얘기는 워낙에 유명하므로 종교인이건 비 종교인이건 거의 다 아는 얘기이다. 영화는 유다가 (예수의 12명의 제자중 한명) 예수를 은 30냥에 예수를 파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를 넘기는 댓가로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는 그 길로 모진 고문을 당해가며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내가 본 영화의 끝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는 장면까지 였다. 그 이후에는 이 영화가 어떤 결말을 맺었는지 모른다. 알다시피 그때 나는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 회의에 참석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릴때 누구나 한번쯤은 교회라는 곳을 혹은 성당이라는 곳을 가보게 된다. 집안이 불교를 믿는다면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나 뭐 그럴때는 친구들을 따라 가 볼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동네 어귀에서 놀다가 전도를 당해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였고 마침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던 중이었던 교회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얌전하게 떠들지 않고 잘 앉아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성냥팔이 소녀에서 주인공인 성냥팔이 소녀를 시켜 주었다. 내가 교회하면 아직도 떠 오르는 것은 누더기를 입고 '성냥사세요'하고 외치던 내 모습과 성냥을 키는 법을 몰라서 몇날 며칠을 성냥을 가지고 씨름을 했던 기억이다.
그 이후 교회는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고등학교때 다시 내 인생에 끼여들었다. 당시 교회에 한참 열중하던 고모가 거의 반 강제로 교회로 나올것을 종용했었고 집안 사정에 의해 고모 집에서도 신세를 져야만 했던 나로써는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고모의 강압으로 교회를 나갔던 나는 단 몇주만에 그 곳을 파악했다. 어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속한 중고등부는 남녀 학생들의 사교장쯤으로 생각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고 성가활동이나 그 외 특별활동은 모두 좋아하는 여학생이 그걸 한다던지 찍어논 남학생이 거기 있다던지 하는 이유였었다. 나는 이내 실증을 느끼고 고만 다니고 싶어졌다. 당시 나는 놀랍게도 남학생에게 관심이 없는 여학생이었고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일요일 아침마저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안식일날에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도 어긋나는 아주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잠깐이나마 교회에 정을 붙였다면 당시 액면나이 대학생이었던 나를 정말 액면 그대로 봐버린 목사님이 초등부 선생님을 하라고 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왜 고등학생인 나에게 시키지? 하고 의문을 가졌지만 뭐 주님 뜻이려니 하면서 그냥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예배가 끝나면 아이들 한 열댓명을 인솔한 다음 성경 공부를 시키는 것이었다. 나참. 성경이라면 나도 한개도 모르는데 그걸 가르치다니. 다행스럽게도 교재가 따로 나왔고 나는 그 교재에 맞는 그림을 여동생에게 강제로 그리게 한 다음 아이들 앞에서 떠듬떠듬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다니 바르새파인이니 골고다 언덕이니 하는 단어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나마 그때의 공과공부 시간 덕택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저 단어들 조차도 모르는 그야말로 나일론 신자였을 것이다. 훗날 내가 고등학생임을 알게 된 목사님이 기겁을 하며 아이들을 다른 선생님 반으로 분산시키기 전 까지 약 석달 정도를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냈고 어린 나이에 누군가가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게 너무너무 좋아서 나는 사탕이나 초컬렛같은걸 일일이 포장해서 나누어주는 어울리지 않는 짓까지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였다.
나에게 누가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신을 믿느냐라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즉 신이 있는것 같기는 한데 그 형태가 하나님인지 부처인지 알라인지 정도령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소리다. 사실 나는 인간은 인간의 영역이. 신은 신의 영역이 있어서 그 두가지가 섞일 일도 마주쳐야 할 이유도 없으므로 각자 잘 살아 가는것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내게있어 신의 존재 유무는 '왠지 있을것만 같아' 이지만 신의 형태에 대해서는 '글쎄 뭘까?' 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이 하나인지 여럿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이다. 아무튼 그냥 막연히 있을것 같다는것 이외에 내가 아는건 또 믿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주님의 종이 아닌 그냥 한 사람이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는 심정으로 봤다. 성경이라는 책에 쓰여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논픽션이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2004년이라는 숫자가 그 남자의 나이라는 것 정도만 생각하며 봤다. 이 영화는 내게 종교라기 보다는 한 인간의 희생정신 내지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평 중에서 너무 잔인하다는 평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 영화는 사실 생각해 보면 홀로코스트나 마루타, 그런걸 멀쩡하게 다 봤던 우리들에게 그다지 충격적인 영화가 아니다. 다만 여태까지 영화에서 예수는 오직 빛으로 표현이 되거나 배우가 등장을 해도 후광이 하도 빛이나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언제나 흰색 옷을 입고 있으며 머리 뒷쪽에 둥근 빛무리를 달고 다니는 것 정도로만 표현이 되었었다. 그래서 나는 막연하게 나마 너무 위대한 존재라서 영화에서 조차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꺼리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예수는 얼굴도 또렷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의 벗은 몸 까지도 볼 수 있다. 아마도 영화사상 이토록 예수가 자세하게 또 오래 나온적은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뒤에는 후광도 없고 둥근 빛도 없는 그냥 한 남자로 나왔다. 다만 눈빛이 금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는 것이 예수의 유일한 특징이었다.
예수는 그냥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 양팔과 다리에 못이 박힌채 죽은것이 아니다. 그는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고 계속해서 채찍질을 당해서 십자가에 못이 박히기 전에 이미 절반 정도는 죽은 상태였다. 영화는 그 부분을 너무나도 리얼하게 보여준다. 마치 온몸이 얼룩무늬 의상이라도 걸친듯 심한 채찍자국과 그를 때리는 사람들. 예수는 가시로 만든 관을 쓰며 피를 흘리고 때리는 사람들에게는 맞아 쓰러지고 무거운 십자가 때문에 거의 다 죽어갈 정도로 힘들어 한다. 나는 어디서도 그렇게 생생하고도 자세한 예수의 마지막을 묘사한 영화를 보지 못했었다. 여태까지는 이미지만 주던 예수를 리얼하게 그린 이 영화는 그래서 잔인하다는 평을 얻은것 같다. 만약 이게 예수가 아닌 그냥 한 남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성서에 등장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간이 믿는 종교의 신이(유일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간이긴 하지만)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잔인하다고 평가하지 않고 리얼하다고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대부분은 예수의 수난을 보여준다. 물론 잠깐씩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예수 주변사람인 제자들과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장 주된 내용은 예수가 광장에서 죽을만큼 맞고 채찍질 당하고 가시관을 쓰고 무거운 십자가를 이고 역시 째찍을 맞아가며 돌언덕을 오르고 결국에는 양 손과 발에 못이 박혀서 십자가에 매달린다음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다. 맞는 장면도 끔찍했지만 특히 손에 못을 치는 장면. 한손에 못을 치고 다른 한손에다 못을 치려고 하는데 십자가에 미리 뚫어놓은 못구멍에 예수의 손이 닿지를 않자 이미 못박힌 손을 확 잡아당기는 장면. 그리고 발에다 못을 박을때 튀기는 피들은 너무나 사실적이여서 눈을 감게 만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그리고 여러번 들었던 이야기여서 그런지 그 충격은 훨씬 더 컸다. 이건 모르는게 아니라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얘기였고 그 얘기의 실제 모습은 그러했던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딱 두번 울었다.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피투성이인 예수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두 배우의 눈빛. 그리고 또 한번은 기억이 나질 않는 어느 부분에선가 울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게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것들이 사실이었다면 나는 이걸 신의 뜻이라 보지 않는다. 이건 잔인한 인간들. 그들의 군중심리가 한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였느냐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종교에 대해서 잘 모르므로 인간들이 신에 뜻에 의해 혹은 악마의 꾐에 빠져서 그랬는지 어쨎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 채찍을 내리치고 돌을 던지고 살아있는 사람 손에다가 말뚝만한 못을 박은것은 인간들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또 한번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나는 사람이 참 잔인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는게 확실시되거나 자기보다 월등하게 못해서 맘대로 해도 되는 존재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괴롭힌다. 그런다음 점점더 강도를 더해간다.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시작된 일이며. 어쩌면 잘못을 저지른 스스로를 벌하기 위해서 더욱 더 잔인해지는지도 모른다.(이상한 소리지만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을 바라봐야 하는 자신의 고통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이다.) 그리고 이제는 되돌릴수 없다는 체념이 그 잔인성을 더욱 부추긴다. 상황이 이쯤되면 인간은 인간을 잘근잘근 씹어 먹을수도 있고 아예 기계에다 넣고 윙 갈아버릴 수도 있다. 그만큼 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생존을 위해서뿐 아니라 생존과 무관하게도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종. 그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1:1로도 이렇게 잔인할수 있는데 그것이 1대 다수가 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 모두함께 돌을 던져서 내 돌이 이마를 맞췄는지 니 돌이 정강이를 맞췄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인간은 모두 돌을 들고 던질 수 있다. 그 속에는 1:1로도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1;1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그럴수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이런 경우에는 돌을 들고 힘차게 던진다. 한번 발동이 제대로 걸린 인간의 잔인함은 무얼로도 막을수가 없다. 단 하나 있긴 있다. '다 책임져야해. 댓가를 치뤄야해'라고 말하면 그들은 조용히 하던짓을 멈추고는 자신이 한 짓을 보며 울부짖을 것이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 이 영화는 신의 아들에 대한 얘기라기 보다 잔인한 인간들에게 희생당한 한 인간 남자의 얘기였다. 그는 자신이 왕이며 구름을 타고 승천할꺼다라는 소리 이외에는 모두 인간에게 이로운 얘기만 했었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의 손에 못을 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아무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신의 아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 보자면 그는 과연 신이라고 불리울 만큼이나 참을성이 강한 의인이다. 그러나 그는 참 힘들게 죽는다. 차라리 심장마비 같은걸로 미리 죽었으면 싶을 만큼이나 모질고 길게 고통을 겪으며 죽는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를 살릴수 없었다면, 목숨줄을 빨리 끊어서 고통이라도 줄여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고 병사들이 십자가를 함께 지라고 했을때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며 분개하고 결국 지게 되면서는 '저 사람(예수)이 죽어도 내 탓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중에는 병사들에게 저 사람을 더이상 때리지 말라고 말한다. 더 때리면 자기도 가지 않겠다고. 그리고 넘어지려는 예수를 몇번이나 일으켜 세우고 그를 안타깝게 지켜본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입장을 말 하라면 딱 그사람. 예수 옆에서 십자가를 함께 진. 믿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꺼림직해 했지만 인간들의 잔인함에 치를 떨며 제발 때리지 말라고 울던 그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이게 비 종교인인 내가 종교 영화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틀 보고 느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