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라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영화에 다들 왜 그렇게 난리지?

자동차 극장에서 아바타를 봤다는 내 말에 지인은 펄쩍 뛰면서

'세상에 자동차 극장에서 본 아바타는 아바타가 아니야, 진정한 아바타는 아이멕스에 3D로 봐야해'

그래서 나는 그 지인을 비롯 3명이서 함께 아바타를 봤다.

그러나 여전히 감흥이 없었다.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아바타의 신세계는 볼만했다.

지구상에서 볼 수 없는 생명체들을 그렇게 하나 하나 화면에 다 심어놓았다는 것도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본 아바타는 잘 만든 컴퓨터 게임. 딱 거기까지였다.

극중 주인공과 네이터리의 사랑은

이건 뭐 거의 엄마잖아? 싶을 정도로 여주인공이 무한대의 사랑 뿐 아니라

마치 평강공주처럼 그를 성장시키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몸주고 마음주고 사랑주고 정주고 돈까지 주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랑은 그렇다 치고.

현실에서는 다리를 다쳐 하반신 불구에

더 중요한건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캡슐에 누워서 잠이나 자던 그가

아바타를 조정하고 부터는 완전히 몰입을 해서는

마침내 그 세계로 건너가 버린다는 것이다.

아바타는 그가 아니다.

단지 그의 정신만 건너갔을 뿐이다.

인간에게 있어 육체는 단지 정신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나는 정신과 육체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짝이라고 생각한다.

부실한 육체에 멀쩡한 정신

혹은 불온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에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프면 그것들은 마치 쌍둥이들이 그러하듯

다 같이 아프다.

그런데 아바타에서 중요한건 오직 정신이다.

현실 세계 같은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현실이건 어디건 상관없다는 식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매트릭스를 떠올렸다.

만약 아바타의 남자 주인공이 네오였다면

그는 빨간 알약을 결코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가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판타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원 하나가 모피어스를 잡아놓고 이런 말을 한다.

처음에 만든 매트릭스는 너무 완벽했다고

그런데 인간이 그만 죽어버리더라고

너희 인간들은 완전한 것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맞다. 인간은 그렇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꿈꾸는게 모두 이루어지는 세상

그래서 누군나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 회장이 되고 유명 작가가 되고 인기 초절정 연예인이 되는 세상이라면 과연 그 세상에서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아바타에 끝내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가 아바타 자체가 되어버리는 부분이었다.

그 병사가 아바타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그들과 우리들의 공존 방법을 찾아내고

그런 다음 실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서

다리도 수술하고 무언가 자신의 삶에 의미있는 것을 찾아내고

네이터리와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뭐 이랬어야 나는 아바타를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로 평가했을 것이다.

 

나의 지인은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별 불만은 없지만 이 세상에서 아바타의 완벽한 세상으로 건너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보다 현실이 더 지랄맞을지라도

그냥 이 세상에 남고 싶다.

나에게는 하이퍼리얼리즘이고 뭐고 간에 진짜가 중요하다.

리얼한 무언가가 아닌

리얼 그 자체.

 

그래서 나는 종교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종교는 지금 현생 보다는 후생을 이야기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천당을 갈 수 있다고 하고

불교는 부처님을 열심히 믿으면 열반에 도달해서는 역시 다음 생에는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지금 생이 아닌 그 다음.

솔직히 알게 뭔가?

그런게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완벽한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지금의 기억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연 나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게 나이기는 한 것일까?

내가 설사 지금의 모습이 전생에 복을 쌓은 덕에 개미에서 인간이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미 개미가 아니다.

그냥 나는 지금 나라는 인간일 뿐이다.

그 기억에도 나지 않는 전생 혹은 후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실제의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 세상을 닮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오직 크나큰 기쁨만이 존재하며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지 리셋 버튼을 눌러버리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것과 닮지 않아도 너무 안 닮았다.

우리는 하나의 아이템을 획득했다고 해서 승승장구 할 수 있지도

또 지금 내 모습이 맘에 안든다고 리셋 버튼을 눌러서 새로 시작할 수도 없다.

 

진짜로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마치 진짜인것 처럼 해 주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진짜로 돌아갔을때 그만큼의 허탈감만 안겨 줄 뿐이다.

 

지인이 물었다.

'아바타로 건너가면 니가 유명 작가가 된다면 그래도 안갈거야?'

난 물론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의 무명작가보다 물론 유명 작가로서의 삶이 훨씬 더 좋겠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대로 다 이루어져있는 가짜 세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냥 이 진짜의 세상에 산다.

진짜 세상에서는 가끔 견디기 힘든 일들도 일어나고

내 마음대로 되는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진짜가 중요하다.

영원히 깨지않는 달콤한 꿈 보다는

그냥 달콤한건 고사하고 써서 토할것만 같은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냥 이 현실에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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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0-03-1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례를 먼저 사과드려야겠군요. 처음 읽기 시작할 때 플라시보님을 생각했는데, 다 읽을 때 쯤 왜 stella09님으로 생각했을까요?

플라시보 2010-03-1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스텔라09님과 제가 글 스타일이 비슷했나봐요^^

2010-03-22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10-03-23 18:49   좋아요 0 | URL
현실에 불만이 많으면 아바타가 좋아 보일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런데 현실에 불만이 좀 있어도 그냥 여기서 인간으로 사는 내가 괜찮아 라고 느끼면 아바타에 별로 공감을 별로 못 하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