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때 클래식을 들었었다. 어릴때부터 라고 말 하지 않고 들었었다 라고 말 하는 것은 자라고 난 이후 거의라고 할 만큼 클래식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이 들고부터 나는 무한궤도를 들었으며 공일오비를 들었고 유희열이나 김동률을 들었었다. 클래식은 고루했다. 뭔가 잰척 하는것 같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아무튼 나와는 맞지 않는 음악이라 생각했었다.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 다섯살때 부터 피아노를 배웠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가까지 배웠으니 꽤 오래 피아노를 친 셈이다. 엄마는 피아니스트로 키우겠다는 마음 같은건 없었던것 같지만 내가 피아노를 아주 잘 치기를 바랬던 것 만큼은 분명한것 같다. 그러나 내가 지금 피아노 뚜껑을 열고 칠 수 있는 곡은 엘리제를 위하여 정도. 사실 그것도 얼마나 칠지는 모르겠다. 피아노를 쳐 보지 않은지 십 몇년이 넘었으니까. 이후 장난 삼아라도 나는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며칠 전 친구의 연주회에 갔었다. 아...클래식. 이걸 어떻게 몇 시간동안 들어내지? 하는 고민이 앞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순간 너무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서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기억마저 떠올랐다. 그래, 우리 아빠가 그랬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발음을 어려워하는 내게 '차에서 코푼 새끼' 로 기억하라며. 맞다. 나도 그랬었다. 허비 행콕과 펫 메쓰니를 친구들과 함께 허병국, 팽만식 으로 불렀었다.
아빠는 오리지널 테이프를 갖고 계셨다. 당시만 해도 연주를 CD로 녹음하는 방식이 아니여서 오리지널 테이프라는게 있는데, 보통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만든 테이프에는 겉의 플라스틱을 조립하기 위해 나사가 박혀 있는데 이 오리지널 테이프에는 나사가 없다. 즉 녹음을 위해 아예 공테이프 하나를 나사 없이 만들어놓은 테이프인 것이다. 아빠는 이 테이프를 출장 갈때마다 끝도 없이 사왔다. 나사가 박힌 테이프들보다 훨씬 비싸고 귀했지만 아빠는 거기에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레코드를 들었다면 아빠가 좀 더 멋있었겠지만. 우리 아빤 테이프파였다.
생각해보면 부모님들을 좋아한 순간보다 미워한 순간들이 많았다. 왜 나에게 이렇게 하는 걸까? 왜 내게 이걸 해 주지 않는 걸까. 등등. 그런데 자꾸 나이가 드니까 알겠다. 그 분들이 나에게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지를 말이다. 십수년간 클래식이라곤 듣지 않았던 나에게, 그러나 문득 들었을때 그 음악을 즐기게 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맨 앞에 앉아서 귀에다 손을 마치 확성기처럼 대고 들을 정도로 열심히 들었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모든 소리들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느끼라고, 즐기라고. 넌 그랬었다고.
차이코프스키,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아빠가 좋아한 음악가들이다. 나는 바흐와 모짜르트를 좋아했지만 아빤 바흐는 너무 장식적이고 종교적이라 싫어하셨고, 모짜르트는 천재적이긴 하지만 뭔가 묵직한 맛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제 나도 차이코프스키와 베토벤, 라흐마니노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난 요즘 연애 칼럼을 쓰면서 클래식한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클래식. 고전적이고 약간은 보수적이면서도 풍부한 그것. 사람들이 쿨하게 혹은 엣지 있게 또는 요즘 대세인 캐주얼한 사랑이 아닌 클래식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편지를 주고 받고, 오래 오래 서로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그러다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그리고 서로의 마음이 가서 닿게 되는..
나도 언젠가는 클래식하게 늙어가고 싶다. 아빠처럼, 혹은 엄마처럼.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나이 든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