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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
줄리언 반즈 지음, 권은정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늘 질투를 하면서 산다. 그렇지만 질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질투는 대게 유치하고도 적날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잘생겨서, 나보다 좋은 직장에 다녀서, 나보다 인기가 많아서, 나보다 돈이 많아서 등등 그 이유들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인간의 치부와 유치함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저런 나열 속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허접한 질투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 많은 질투들 중에서 사랑이라는 문제가 개입이 되면 질투는 한층 더 원색적으로 변한다. 몇초정도 더 처다본 여배우 때문에 자기보다 저 여배우가 좋으냐고 묻는 여자. 지나가는 젊은 남자에게 눈길을 주는 여자 앞에서 은근히 주눅이 드는 남자. 그러나 이건 현재 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질투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은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의 과거를 질투하면서 부터 시작이 된다. 정신과 의사인 그레이엄은 아내 바바라를 두고 전직 여배우인 앤과 바람을 피운다. 그레이엄은 바바라와 이혼하고 다시 앤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주 행복하다. 적어도 그레이엄이 앤의 과거에 대해 질투를 하지 않을때 까지는 말이다.
그레이엄은 분명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를 질투하는 것은 답이 없다. 처음에는 그 과거를 단지 알고 싶어 한다. 앤이 누구와 잠자리를 했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또 어디에 갔었는지. 하지만 단지 사실을 알아내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미 과거로 지나가 버렸고 자신을 알기도 전의 순간이지만 질투는 사라지질 않는다. 과거를 질투해서 어쩌겠냐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집착을 하게 된다. 혹시나 빠트렸을 그녀의 과거에 대해. 그러다가 점점 그의 질투는 과거에서 현재로 내려오게 된다. 계속해서 이미 지나간 과거만 질투 할 수는 없으므로 현재의 증거물들을 찾게 된다. 그레이엄은 마침내 자신의 친구 잭과 앤이 부정한 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에 관한 질투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그 속에 어떤 결정적 단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믿는다. 그레이엄이 친구 잭과 앤이 부정한 사이라고 믿는 단 한가지 물증은 잭이 쓴 책이다.(잭은 소설가이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정사장면은 다 잭과 앤의 정사장면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봤을때는 비약이 심하다 못해 정신상태마저 의심스럽지만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과거를 질투해버리기 시작했으면 현재도 가만둘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와 그레이엄이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상대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한다. 그건 처음에는 일종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새 상대방의 과거에 대해 알고싶어 하는 정도가 전부는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혹시나 상대가 과거의 사람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거나 혹은 그리워 하거나 최악의 경우 나를 대체품으로 만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게 이 단계로 넘어가기도 전에 실증이 나서 관두지만 심각할때는 마지막 단계까지 갔었고 결국은 내가 괴로워서 관계를 그만 둔 적이 있다.
다른 기쁨이 없고 오직 옆에 사랑하는 사람만 눈에 보이고 그를 향한 사랑이 너무 클 경우 과거를 질투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현재 그가 처다보는 여배우를 질투하는 것 보다는 훨씬 복잡한 일이다. 이 모든건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다. 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을 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