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라고는 정말 안해봤었다. 내가 좀 무식하게 먹어도 살이 안찌는 재수없는 타입인지라(왕년에 별명 쓰레기통이었다.) 그런걸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내 몸무게는 언제나 44kg. 밤 좀 새서 술을 푸면 43kg까지 내려갔으니 다이어트를 하면 그게 미친거지.  

한 3일 정도 다이어트는 해 봤다.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 있을때나 방송 출연 있을때. 그때는 얼굴이 좀 작아보이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해 본거였다. 벗뜨 그러나. 작아지라는 얼굴은 그대로고 몸에 살만 줄어서는 안그래도 좁은 어깨. 더 좁아 보였다.  

그런데 작년 10월부터 슬슬 살이 붙기 시작했다. 이야 얼굴 좋아졌구나 하는 인사는 11월 말까지만 유효했다. 그 이후로는 너무한거 아니냐, 인생 포기한거냐, 세상에 살 안찌는 체질 같은건 없구나 등등. 허나 이런 말들 보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이건 뭐. 맞는 옷이 있어야 말이지. 내가 미쳤다고 44 사이즈만 샀던가 겁나게 후회했다. 집구석에 있는 추리닝까지 XS (스몰보다 한 단계 더 아래) 뿐이니 정말 입을 옷이라고는 한여름 월남 치마밖에 없었다. 심지어 속옷들까지 다 작아졌다. 몸이 불고나니 딱 맞았던 캐미솔의 경우. 배가 훌렁 드러나 버렸고. 팬티는...에이 말을 말자. 

12월 말에는 급기야 눈물을 머금고 옷을 다시 사기 시작했다. 늘 외출할 일이 있는건 아니지만 어쨌건 일주일에 한번 있는 라디오는 하러 가야되었으므로 (한동안 모자쓰고 괴상한 옷 입고 갔더니 PD가 집에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근데 옷을 사러 가니까 예전 라인이 전혀 나오지 않는거였다. 무조건 그 집에서 제일 작은걸 입으면 됐었는데, 불고 나니 내 사이즈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입어보니 55였다. (단 44가 존재하는 집에서의 55. 요새 55만 있는 곳은 거의 44라고 보면 된다.) 망가진 라인을 어떻게건 감추려니 옷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비싼 옷을 걸친다고 해서 죽은 라인이 살아나는건 아니지만 내 심리가 그랬다. 이제 더 이상 후줄근한 옷을 이 몸에 플러스 시키면 마흔처럼 보이고 말거라는.  

그러다가 12월 31일. 아주 독하게 마음먹었다. 곧 새해도 밝아오는데 이 몸이 웬말이냐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살이 찌니까 매사가 짜증스러웠다. 밥을 먹어도 짜증나고, 굶어도 짜증나고. 그래서 좀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해 보기로 했다. 이래가지고선 내가 못살겠구나 싶어서.  

우선 늘어진 체육복 대신. 미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거의 엉덩이 골이 다 보일듯한 트레이닝 바지를 다시 꺼내 입었다. 정말이지 이건 스키니진보다 더 붙어주셨다. 입고나니 무심코 앉았다가는 재봉선들이 터질것 같았다. 더 골때리는건 바지 라인 위로 축 쳐진 배였다. 배가... 참 뭐라 할 말도 없이 튀어나와 있는데. 아. 난 이제 다 된건가 싶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그 옷만 입었다. (덕분에 지금은 살짝 떨어졌다. 빨고는 바로 말려서 또 입고 또 입었다.)  

그리고 외출할때는 작년에 산 프리미엄진을 입었다. 그게 약간 날씬해 보이는 효과도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날씬할 당시에도 흐읍 하고 호흡을 해야 할 정도로 딱 붙는 바지였다. 스키니진이 아닌 부츠컷이긴 했지만 윗부분이 장난 아니었다. 거기다 그 바지의 골반 사이즈는 26이었다. 난 허리도 26은 더 나갈것 같은데 말이지. 그야말로 골반이 뽀개지는것 같았다. 골반이 뽀개지던지 살을 빼던지 사생결단을 내지 않으면 조만간 휠체어를 타야할것 같았다.  

살을 빼느라 밥을 굶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피부와 머릿결이 상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세안 후에 쌀뜨물과 우유(라고 하니 몹시 그런데. 어디까지나 유통기한 지난 우유로 아주 조금만 쓴다.) 로 다시 한번 헹궈주고 머리도 감을때마다 헤어팩을 열심히 해 줬다. 그 결과. 피부도 살이 쪘을 때 보다 훨씬 좋아졌고 (솔직히 그때는 만사가 귀찮아 세수 자체를 잘 안했더랬다.) 머리에도 윤이 나기 시작했다.  

특별히 뭔가를 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밥 공기를 바꿨을 뿐이다. 대게의 한국인은 탄수화물 때문에 살이 찐다. (미쿡 아해들은 고기 되시겠다.) 따라서 밥 반찬은 그냥 먹더라도 밥의 양을 줄이면 놀랍도록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기름진 음식은 한번 기름을 닦고 먹었다. (과거에는 접시에 흐르는 기름조차 핥았었다.) 야채도 많이, 과일도 많이, 물도 많이 먹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달달한 다방 커피 대신 여러가지 차를 구비해놓고 시시때때로 마셨다. (녹차, 루이보스티, 계피차, 귤피차, 모과차, 페파민트차를 번갈아 마심)  

마지막으로 거울을 자주 봤다. 그리고 주문을 걸었다. 나는 원래 날씬하다. 날씬하다. 날씬하다. 그리고 집에만 있으면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하루 4~5끼를 먹어대서는 자주 외출 할 일을 만들었다. 외출을 해야 그 망할 프리미엄진 (내가 진짜 이거 입고, 죽어도 그 안에서 죽는다 라는 각오로 입었더랬다.) 을 입으니까. 그랬더니 새해가 밝고 얼마 안되고부터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러 저울에 달아보지는 않았다. 중요한건 근수가 아니라 실제 보여지는 내 몸이니까. (그거 보면 화딱지 날 것 같았다. 이썅. 이렇게 굶었는데 숫자 그대론거지 지금? 우이쒸) 

그렇게 미친듯이 뺀 다음. 지난 설 연휴에 미친듯이 나가 놀았다. 선배도 보고 후배도 보고 친구도 보고 그들이 불러댄 모르는 사람도 또 보고. 그리고 드디어 쾌거를 이뤘다. 누군가가 나 보고 최소 26에. 최대 29살로 본 것이다. 움홧홧홧. 그러니까 제일 나이 많게 봐도 난 내 나이보다 무려 5살이나 어려 보인것이다. (물론 그들은 새해 덕담이라는 말을 해서 내 손에 죽을뻔했다만)  

살이 쪘을때는 말도 못하게 나이가 들어보이더니만 (거울만 보면 웬 중년 여성이 째려보더군) 살을 빼고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젊어보인 것이다. 뭐. 나이 들면 나이 든대로 자연스럽게들 살라고 하지만 개뿔! 이 사회는 젊고 어린것들을 원한다. 더구나 연애칼럼을 쓰는 여자가 중늙은이 라는건 아무도 용서 안해준다.  

아무튼지간에 살이 쫙쫙 빠져서 이제는 더 이상 그 바지를 입어도 골반이 뽀개질것 같지도 않고. 그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배가 솟아오르지 않는다. 이제 여기서 조금만 더 덜어내면 과거 전성기때 부럽잖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랬다. 살찐 이들이 살이 안빠져 고민할때. 속으로 그랬다. 아니 왜 살을 못 빼? 없는 키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심은하처럼 얼굴이 예뻐지는 것도 아닌 단지 살이잖아? 그거 좀 덜 먹고 움직이면 되는거 아니야? 아...지금은 실로 깊이 반성한다. 그게 꼭 그런게 아니더라고. 정말 살을 빼는건 담배를 끊는 것, 술을 끊는 것, 남자를 끊..이건 아니구나. 아무튼 그런것들 못지 않게 의지력을 그리고 꾸준함을 요하는 일이었다. 나는 단 한달을 했을 뿐이지만. 살이 좀 과하여 몇 개월을 그래야 한다면 과연 해 낼 수 있었을까?  

문득. 일평생 다이어트중인 우리 고모가 떠오른다. 고모는 볼때마다 '살 좀 빠진것 같지 않냐?' 라고 말했다. 적어도 내가 철 난 이후. 우리 고모의 첫 마디는 항상 저 말이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우리 고모. 굶으면 오히려 부어버린다는 우리 고모. 새해에는 고모에게 살빠지는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고모 나 이제 완전 고모 이해하잖아. 그동안 입으로 안다고 했던거 뻥이었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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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1-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55가 되셨다고 살을 빼시다니.. 이기적인 몸매의 소유자시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