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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s 서울놀이 - 배두나의 일상, 그리고 서울여행
배두나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인구 밀도가 너무 높아서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가지는 기본적인 애정을 말살하는 도시이다. 그곳에서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이 반가움이나 유쾌함이 아닌. 단지 길을 복잡하게 하고 차가 막히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도시와 어떤 조화도 이루지 못하는 건물들하며 (건물 지들끼리도 아무런 조화를 이루지 못함은 물론이다.) 조금씩 줄어가는 자연 환경이 숨막히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분명 매력적인 도시이다. 사람이 많은 만큼 그만큼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문화적 컨덴츠도 풍부하다.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모든것은 서울에 다 있다. 그건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는 오래전 얘기가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는 드문 예이기도 하다.
서울은 나에게 있어 특별한 도시이다. 이십대의 한 부분을 그곳에서 보냈으며. 지금의 나와 어떻게든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참 희안하게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닌 서울로 자주 여행을 간다. 사람들은 휴가가 되면 도심에서 바깥으로 빠지지만 나는 오히려 밖에서 도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은 나고 자란 도시라는 느낌이 아닌. 늘 여행지같은 느낌이다.
두나S 서울놀이는 배우 배두나가 부지런하게도 일년에 한번씩 냈던 놀이의 결정판이다. (런던놀이가 2006년. 도쿄놀이가 2007년이니 이 책 그 후로 딱 일년 후인 지금 나왔다.) 아마 별 이변이 없는 한 두나의 놀이 시리즈는 서울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서울에서 터닝포인트를 찍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뉴욕놀이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책이 놀이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결정판이라고 본다.
런던놀이와 도쿄놀이가 여행지에서 일상처럼 보내기였다면. 서울놀이는 오히려 그 반대선상에 있다. 일상지인 도시에서 여행하듯 관찰하며 돌아다니기. 그러면서도 곳곳에서 배우 배두나가 아닌 인간 배두나의 일상 내보이기. 물론 연예인들이 말하는 자신의 일상이란 미화된것일 확률이 높다. 솔직히 말해 보통 인간인 우리만 하더라도 싸이월드 같은 곳에서 진짜 자신의 일상이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없으니까. 무릇 인간들은 비밀 일기를 쓰면서도 언젠가는 이 일기를 나 아닌 누군가 (혹은 쓰던때의 기억이 거의 희미해진 미래의 나) 를 독자로 염두해두며 쓴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 책에 나오는 배우 배두나의 일상이 진짜이냐 아니면 어느정도 포장된 것이냐라는 논쟁은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배두나가 보여주는 일상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녀가 운동 대신 집안 청소를 한다는 것이다. 갑갑한 휘트니스 센터에서 운동 기구로 운동을 하느니 설겆이를 하고 청소기를 밀면서 운동을 하는 것. 정말이지 집안일, 가사노동의 진정한 승화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의 어느 배우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을 열고 신나게 집안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한 다음 비로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 할 것인가. 우리가 상상하는 여배우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세수를 하고 미용실에 달려가서 헤어케어와 스킨케어. 동시에 네일케어를 받는 귀족스런 삶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누군가의 책을 보고 '어 나와 닮았잖아' 하는 공감이 살짝은 쑥쓰럽고 유치하지만 고백하건데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독스럽게 운동을 싫어해서 내 평생 단 한번도 운동기구로 운동을 해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조금 마른편인 몸을 유지하는 이유는 오로지 집안일을 열심히 재미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집이 인테리어샵처럼 근사하거나 반질 혹은 반짝대며 윤이 흐른단 소리는 아니다.) 내 지인중 한명은 니가 살이 찌지 않는 이유는 집구석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이것저것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두나도 그런것 같다. 집에서 뭔가를 하며 노는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일상은 참 바지런해보이면서도 친근하다.
알다시피 이 책은 사진집에 가깝다. 배두나는 사진을 취미로 가진 배우이다. 배우들이나 연예인 중에서 사진을 예술로 찍는 이들이 몇몇 있지만 대부분 남자인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존재는 우리나라 영화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독보적이다. 거기다 그녀는 예쁘고 아름다운 사진. 많은 리터칭을 거쳐서 딱 여행지 엽서같은 느낌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사진은 투박하고 무심해보이지만 가만히 드려다보면 인간에 대한 그리고 장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배두나의 사진이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는 촌스럽게도 심한 리터칭 끝에 딱 그림엽서 같은 사진을 좋아한다. 연예인이면서 사진을 찍는 이 중에서 꼽으라면 김진표의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러나 배두나의 사진에 거부감은 없다. 너무 폼잡지도 힘을 주지도 않고 담담하게 찍어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사체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다. 사진을 찍기 위해 피사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피사체가 너무 좋아서 사진기를 들이댈 수 밖에 라는 느낌이 난다.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약간 특별하다. 앙앙을 통해 나와 인연을 맺었던 훈희씨가 이 책에서 기획을 맡았기 때문이다. 사진 찍히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훈희씨라 이 책에서 훈희씨의 사진은 정말 작은 컷 하나가 들어있지만 배두나의 홈피에 가면 종종 훈희씨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내가 배우 배두나를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늘 훈희씨에게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니 (런던놀이 도쿄놀이에다 서울놀이까지 훈희씨가 다 기획을 했으니 늘 그녀의 얘기가 흘러나오는건 당연하다.) 마치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뭐랄까 친구의 미니홈피에서 자주 그 사진이 등장해서 나중에 길에서 마주쳤을때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일단 마주치기만 하면 쉽게 '아...' 하며 서로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책의 곳곳에서 훈희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던것도 이 책이 주는 기쁨 중 하나였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자. 이 책은 흔히 우리가 배우 배두나에게서 연상되는 발랄함 상큼함 그리고 약간의 엉뚱함으로만 가득 찬 책은 아니다. 의외로 이 책에서 우리는 고민하는 배두나. 약간은 어두운 배두나. 그리고 생각이 참 많은 배두나를 만날 수 있다. 일하지 않는 순간을 견디기 위해서 꽃꽂이도 하고 베이킹도 하고 사진도 찍고 공부한다는 그녀는 참 모범생같다. 어쩐지 학교 다녔을때 공부는 잘 하고 말썽을 피우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반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학생이었을 것이라는 내 편견은 이 책을 통해 날아갔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배두나의 일상들은 우리같은 평범한 소시민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녀가 아무리 네추럴하게 혹은 거의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즐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이미 배우라는 또 또래의 평범한 직장인들에 비해서 제법 큰 돈을 버는 연예인이라는 타이틀을 안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녀의 일상을 보다가 보면 어느순간 우리의 일상이 약간은 구질하고 구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이미 배우이고 이미 탈렌트인 그녀에게 우리와 똑같은 일반인이기를 고집하는건 우리가 연예인인양 사는 것 만큼이나 웃긴 얘기이니까.
피부에 대한 솔직한 얘기가 참 재미있었다. 배두나의 엄마는 다들 알다시피 연극배우이다. 그런 엄마는 배우인 딸에게 늘 가꾸라고 얘기한다. (어찌나 우리 엄마와 반대인지. 우리 엄마는 내가 화장품과 피부과에 갖다 바치는 돈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평범한 엄마인들 안그렇겠냐만) 그래서 그녀는 열심히 가꾼다고 말한다. 타고 났어요 라던가 로션 하나 발랐을 뿐인데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얼굴 뿐 아니라 바디 케어도 무척 꼼꼼하게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솔직히 바디케어에는 요즘들어 무신경을 넘어선 방치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는 내게 맞아. 향기로운 입욕제도 촉촉한 바디 오일도 로션도 있었더랬지 하는 작은 깨우침을 주었다.
책에는 배두나가 예전에 살았던 동네에 대한 답사. 그리고 카페나 식당 같은 단골집들도 등장한다. 근데 참 재미있는 것이 배우 배두나가 갈 듯한. 그래서 당연해 보이는 근사한 카페와 레스토랑 단골집도 참 많지만. 인간 배두나가 갈 것 같은 평범. 혹은 약간 허름한 식당들도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반반씩 넣어야지 하고 작정을 한것은 아니겠지만 언뜻 내가 보기에는 비율이 딱 반반이었다.
자전거 여행을 좋아한다는 그녀를 사실은 가로수 길에서 스친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평범한 옷에 화장끼도 전혀 없어서 (다들 맨얼굴이라 박박 우기는 투명메이크업까지도 하지 않은. 그때 비비크림을 바르고 눈썹도 약간은 칠했던 나보다 훨씬 더 맨얼굴이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었다. 더구나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여배우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다닐꺼라는 상상은 쉽지 않겠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모던밥상) 잠깐 멈췄다가 다시 가벼렸으니까. 그때의 나는 훈희씨를 기다리고 있었고 약속했던 모던밥상은 문을 닫아서 그 앞에 차를 세워도 되는지 마는지 우왕좌왕 하고 있었더랬다. 만약 그때 내가 '저어기 배두나씨 싸인 한장만' 이라고 했더라면 그녀는 불편했을까? 아니면 배우니까 당연한 일이라며 자전거를 타다 말고 느닷없이 싸인을 해 주었을까?
비교적 빨리 읽혔던 런던놀이 도쿄놀이와 달리 서울놀이는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게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도시여서 그런지. 혹은 배우 배두나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바라다본 도시여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책은 좀 더 천천히 책장이 넘어간다. (지루하단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난감) 그리고 가끔씩은 책장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더 이상 새롭게 읽을 책이 없는. 책이 배달되거나 사러 나가는 그 짧은 공백동안 다시 한번 꺼내서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