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3.13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ㅣ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얼마 전 읽은 하루키의 ‘잡문집’을 보고 읽고 싶어져서 빌렸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터운 책이어서 처음엔 좀 망설였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었다. 이 책은 하루키의 글 이력에서도 무척이나 이채롭다. 그는 대부분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작가인데, 이 책은 논픽션이다.  

지난 1995년 3월 20일, 일본에서 끔찍한 일이 있었다. 일본의 한 사이비 종교 중 하나인 옴진리교의 신자 5명이 각각 지하철에서 사린이라는 화학 액체가 담긴 비닐 팩 11개를 터뜨린 것이다. 사린은 피부에 닿지 않아도, 공기 중에 노출되어 사람들의 호흡기로 들어가기만 해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아주 독성이 강한 물질이었다. 그것도 평일 오전 8시경, 즉 사람들이 아주 많은 출근시간에 사람들이 아주 많은 지하철에서 터뜨렸다. 그 다섯 명은 사린이 들은 봉지를 날카롭게 간 우산 끝으로 찔러 구멍을 뚫은 뒤,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5명의 운전수들과 함께 도주했다. 그리고 노출된 사린으로 인해 12명이 사망하고 5500여명이 중, 경상을 입었다. 

나는 이 사건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 사건 두 달 전엔 1995년 1월에 있던 고베 대지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그것 또한 하루키의 책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이 사건을 지난 ‘잡문집’을 읽으며 알게 되었고, 나는 그 사건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사린 테러 사건으로 현장에 있었으며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은 사람들, 그리고 피해를 받은 주변 사람들(주로 가족)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인터뷰)를 글로써 정리한 것이다. 하루키는 그 사건이 지난 다음 해 1년 동안 60여명의 사고 관계자를 만나 꾸준히 인터뷰했다고 한다. 아마 그 사건은 하루키 자신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하루키는 책을 통해 언론 보도만으로는 그 사건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으며, 그 안(지하=underground철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실체를 전달하고 싶어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들 예상하겠지만 그 피해자들은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한다. 아마 그 사건을 겪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건은 그저 잊고 싶은 일들이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이 증언록은 더욱 생생하다. 60여명의 사람들의 말을 700페이지동안 읽는 것은 무척 고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술술 읽혔다. 성별, 나이, 처한 상황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 무척이나 극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일까. 그들 각자의 말들은 너무나 생생했다.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인 상황묘사를 읽고 있는 일도 아주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말을 했지만 전부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이들에겐 어떠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사린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사람은 물론 가볍게 노출되었던 사람들도 상당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이거야 육체적인 거니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그것 말고도 정신적인 상처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 뒤론 지하철을 절대 못 타게 된 사람들도 있었고, 다소 무디고 강인한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는 일이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그 둘의 행동은 같아보였다. 지하철을 타는 게 아무렇지 않다고 한 사람들도 역시나 ‘지하철을 타는 일’ 자체를 무척 의식하고 있단 느낌이었다. 아마 그것은 지하철을 탈 때마다 그들에게 각인된 그 사건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 말고도 유사한 것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개 옴진리교에 대해 큰 증오를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건을 자연재해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그 테러를 저지른 사람과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증오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 사건을 일종의 병이나, 그래 말 그대로 돌발적인 ‘사건’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하길 아마 그것이 직접적인 폭력의 형태-칼로 찌르거나 주먹으로 때리거나 총을 쏘거나 폭탄을 터뜨리거나-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두 명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들 대부분이 사린테러를 한 옴진리교 집단에 대해 맹목적인 적의와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보다 사건 당시의 정부 기관과 사회의 체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분노했다. 사건 초기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하지 않은 것, 자위대나 소방, 경찰관, 위생성에서 빠른 대처를 하지 않은 것들이 그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그런 동시에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몇 년 전 대구에서 실제로 지하철 화재 사건이 있었다. 그 속에서 많은 우리 국민들도 피해를 받았다. 대구 토박이들은 적어도 한 다리 건너 한명쯤은 그 사건의 피해자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종교 집단의 계획적 범행이냐 한 개인의 우발적 범행이냐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건 그리 큰 차이는 아니다. 특히 요즘 게임을 하고 있으면 과도한 감정의 표출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얼굴을 맞대지 않는 것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게임 속 사람들은 유난히 흥분을 잘하고 분노를 잘한다. 때론 그것이 너무도 이상하고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아마 나의 그런 두렴움은 옴진리교 사건으로 형상화 된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책 속에 나오는 6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삶의 배경이 아주 구체적인 동시에 우리와 닮아 있었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건 곧 그런 사건은 언제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쓰긴 했지만 하루키의 목소리는 거의 들어있지 않다. 왠지 이 책이 내가 읽은 하루키의 많은 책들 중 가장 인상적인 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도 생생해서, 그런 만큼 무서웠다.  

오늘 이 책을 읽던 중 점심을 먹는데 멀리서 크게 폭발음이 들려왔다. 식당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순간 숨을 죽이고 경직되었던 것을 보면 그건 작은 폭발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더욱 떠들썩해하면서 밥을 먹었다. 사린 테러사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속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의 눈이 안보이고 기침과 콧물이 나기 시작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밥 먹는 사람들과 책 속의 사람들의 모습이 순간 겹쳐보였다. 왠지 진정한 공포의 정체를 조금 보게 된 것 같아 가슴이 떨렸다. 글이 아주 두서없지만 내가 생각한 것을 최대한 담고 싶어 아무 말이나 생각 나는대로 다 썼으니 양해를 부탁드린다.

2013.3.12 컨설턴트-임성순

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제 6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후배의 추천을 통해서 읽게 되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음에도 정말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종류의 네러티브 자체에 가장 큰 힘을 싣고 전개되는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만으로도 정말 황홀해진다. 물론 심사평에도 써 있듯이 후반부 주인공이 콩고로 가는 부분부터 시작해서는 이야기가 급격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콩고 행 자체의 복선도 많이 부족했고, 그 뒤로 벌어지는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들도 그간 벌여놓은 이야기에 비하면 무척 단조롭다. 그것은 아마 지나치게 재기발랄한 소설의 진행 탓인 것 같은데, 좋게 말 하면 너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 좋은 아이디어를 아이디어만으로 끝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작가는 충분히 좋은 소설을 내놓은 것 같다. 한 작가의 소설을 읽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겠다는 결심은 독서의 세계에 있어 하나의 기적이라고 느껴진다. 힘을 많이 들이지 않은 문체도 무척이나 좋았는데, 특히 작가의 말에서의 절절한 울림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이 작가는 분명 좋은 작가가 될 것이다.

2013.3.11 안철수의 생각-안철수, 제정임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작년 한창 안철수 교수(?원장?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가 한창 뜨겁게 떠오르던 시절에 나왔던 책. 안철수의 정치적 소신과 생각에 대하여 제정임 교수와 대담을 나눈 후, 제정임 교수가 엮어서 낸 책이다. 작년 대선 직전, 안철수 씨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거의 하늘 끝까지 다달았었는데, 그런 일에 대해 그는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이 책을 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대선 출마 후 물러섰다. 지금 와서 읽어보니 이 책은 결국 그런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는-대선 출마를 어느 정도 결심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드러낼 필요는 없었으니. 

책은 정말 무척 재미있다. 작년 한창 타오를 때 읽었으면 더 재밌었을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그만큼 실망은 더 컸을 것을 생각하면 안 읽은 것도 다행이다.) 안철수 씨는 정말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면이 많은 사람 같다. 하지만 그 보수를 어떤 분들하고 같은 보수라고 생각하면 무척 곤란하다. 안철수의 보수는 철저히 정의와 논리에 의거한 보수다. 정당하고 맑은 보수다. 진정한 의미의 보수다. 이상하게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들을 다른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들을 때는 입에 발린 소리처럼 들리는데, 이 사람이 말하면 그 말이 진실 되고 마음을 울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 이 사람이 그동안 걸어온 정직하고 진실 된 행보 덕분인 것 같다. 자신의 말을 진정으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오늘 마침 안철수 씨가 국내로 다시 귀국했다. 여러모로 국제 정세와 국내 정세가 혼란스러운 시점이라 언론들은 또 다시 안철수 씨를 향해 파리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럼에도 안철수 씨는 언제나 뚝심 있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쭉 걸어 나갈 것 같다. 이 책에서 준 인상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앞으로 나 또한 그의 행보를 무척 관심있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또 한명의 ‘안철수 빠’가 탄생했다.

2013.3.10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문학을 많이 읽어야겠다. 다른 책들도 적당히 섞어서 읽긴 해야겠지만, 당분간은 문학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동안 일부러 문학을 외면했다. 아마 대체로 이런 것들이 살아가는데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다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오랜만에 소설들을 몇 권 열심히 읽으면서 너무나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문학들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또 얼마나 쓸모 있는가보다 내 자신에게 읽어 소설을 읽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가 어쩌면 더 중요한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제 2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다. 1회의 바로 그 유명한 ‘완득이’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완득이에 비해서는 다소 완성도가 떨어지는 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소설은 다들 각자의 이야기와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완득이가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부분을, 이 소설은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다소 헐겁고 그 진행이 쫀쫀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분명 잘 읽힌다. 재미가 있다. 이야기도 한 방향으로 수렴되는 면도 좋았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타당성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지는 몇몇의 진실은, 그걸 예감하든, 예감하지 못하든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면이었다.

그럼에도 역시 진행을 비롯한 여러 가지 면에서 조금 더 이야기를 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분량을 늘려 설명을 추가했더라면 네러티브는 보다 훌륭해졌을 것이다. 그 점이 아쉽다.

2013.3.10 반 고흐, 우정의 대화-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우정의 대화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은영 옮김 / 예담 / 2001년 5월

이 책은 네덜란드에서 배출한 세계적인 작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과 나눈 편지를 모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의 제 2편 격이다. 이 책은 동시대의 화가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아놓았다. 시리즈 1편에서의 감동을 생각해내어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는데, 실제로 읽는 일은 무척이나 무덤덤했다. 절반 정도를 읽었을 때 나는 거의 아무런 감정과 감흥 없이 기계적으로 글자를 읽어나갈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덕분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문구도 없었다.  

책을 읽는다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가도 중요한 것 같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마음 깊이 남는다면, 열권의 책을 흘려 읽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래도 열권의 책을 읽으면,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보다 좋은 책을 만날 확률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겠지. 그 전에 나 자신의 허영심도 채울 수 있을 것이고. 

결국, 라파르트 라는 작가도 잘 모르겠고, 책도 대충 읽게 되어서 그다지 할 말이 없다. 테오와 나눈 편지를 모은 영혼의 편지는 무척 좋았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