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론 책은 취미삼아 읽는 것이지만, 읽고 나서 이렇게 기록하다보면 아무래도 읽는 ‘권 수’가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 책을 오래 잡고 있으면 그것에 대한 변명을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다. 대체로는 내가 게을러서 많이 읽지 못하는 것이지만, 더러 책이 무척 두꺼워 오래 읽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지나서 보게 되는 것은 결국 독서의 목록 이니 가끔은 이렇게 얇은 책을 읽어 숫자를 늘리는 꼼수를 부리게 된다. 

 

이 책은 과거 나왔던 <무라카미 라디오>의 2번째 권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이름으로 ‘앙앙’이라는 일본 잡지에 연재된 것을 묶어서 책으로 낸 것인데, 한국에서 출간할 때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는 제목에 <두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부제를 붙여서 출간되었다. 결국 무라카미 라디오의 연장선상에서 읽으면 된다는 뜻이다. 

 

하루키의 산문집은 뭐 특별히 말할 것 이 없다. 이 책 본문에 작가도 밝혔듯, 작가 자신이 쓰는 에세이는 ‘쓸데없는 이야기’들의 나열에 불과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이렇게 가볍게 감상문을 쓰면 그걸로 되는 것이다. 두꺼운 책을 열심히 읽어 마음에 새기는 독서만큼, 가볍고 얇은 책을 즐겁게 읽고 적당히 흘리는 독서도 그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일전쟁 -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 우리역사 진실 찾기 2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한국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국사 공부를 하고 있다. 원래 역사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이따금씩 역사관련 책을 읽곤 하는데, 그 중 태반은 세계사였다. 한국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사를 유난히 좋아해서 아무래도 손이 그쪽으로 갔었다. 그런데 한국사를 공부하다보니 단순히 암기하고 넘어가는 것 이상으로 관심이 가는 부분이 몇몇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임진왜란이었다. 아무래도 시험을 위한 공부에서는 전체적인 진행 상황보다는 대략적인 개관이나 의의 등을 살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보니 보다 자세한 전쟁의 진행 상황이 궁금하여 임진왜란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마음이 가서 조금 두껍지만(약 500페이지)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그런데 빌려서 읽다보니 이 책을 빌린 일 자체에 무척 후회가 되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역사라는 말이 아까운 불쏘시개에 가깝다. 어떤 면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나씩 차근히 까보도록 하자. 

 

우선 이 책의 문장은 투박하고 버릇이 없다. 책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게 우선, 작가 자신이 스스로의 학식에 대해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데다가, 그런 사람답게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문장도 거칠고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시종일관 ‘일본 애들, 일본 애들’거리는 거 부터하며 ‘등신 같은 선조’같은 술자리에서나 말할 것 같은 문장으로 책이 쓰여져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읽는 독자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데, 저자는 책이란 매체에 대해 무언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의 책에 대한 이념의 골자는 책이란 무릇 자신과 같은 ‘학식 높은’ 저자가 ‘몽매한’ 민중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듯하다. 다음 그러한 생각들의 발현인 것 같은 문장‘들’중 하나다.

    

  

하여간 어디서고 목소리 큰 인간들을 조심해야 한다. 꼭 쥐뿔도 모르는 무식한 것들이 목소리가 큰 법이다. 필자가 <왕을 참하라>를 출간한 후 인터넷에서 새로 보고 배운 진리다.

    

  

독서 기간이 오래된 것도, 많은 책을 읽은 것도 아니지만 내가 읽어왔던 책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선적으로 시종일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작가에게 오만 정이 떨어졌다. 재밌는 것은 그런 저자가 몇 번이나 ‘망설인’을 ‘망서린’으로 쓰기도 하며(출판사의 실수일수도 있지만) ‘<왕을 참하라>을’이라는 식으로 조사를 틀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력을 존중해 오기에 너그러운 편인데, 저런 식으로 독자를 대하는 저자가 상대적으로 사소한 철자를 틀리는 것을 보니 참 우스워 여기에 적어본다.  

  

책의 내용도 가볍기만 하다. 그동안 임진왜란에 감춰져있던 진실들을 파헤친다는 식의 논조로 책은 진행되는데, 실상 그런 부분들은 무척이나 적다. 이순신에 대한 거품을 사정없이 파헤친다고 큰소리치기에 대체 뭘 어쩌나 기대했건만 실상 내용은 보잘 것 없다. 이순신 vs 원균의 대립 구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이제 너무나 많은 책에서 읽었기 때문에 더는 신선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이런 책이 역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부터 든다. 무릇 역사서는 역사적 기록이 반, 그에 대한 역사가의 평가가 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온통 작가의 평가만 가득하다. 이러저러한 논조를 펼치고 있기는 한데, 그것의 기록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또 그러한 근거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냥 ‘선조는 등신 선조는 등신’이라고 앵무새처럼 재잘거리면 독자가 ‘선조는 등신!!’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모양이다. 출처에 대한 의심도 든다. 책의 한 부분에 <KBS역사스페셜>에 나온 주장이 잘못 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또 다음 부분에서는 ‘이 내용은 <KBS역사스페셜> ***편을 참조하였다.’라고 쓴다.  

 

후반부의 내용은 심지어 일본 역사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찬양, 박정희에 대한 찬양 등으로 갈 길을 잃기까지 하는데(심지어 미야모토 무사시의 간단한 일대기도 나온다.) 읽을수록 한숨만 나오는 책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평한 것을 작가가 보기라도 한다면 작가에게 나는 ‘쥐뿔도 모르는 무식한 것’이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책이 이런 식으로 엉망이다 보니 아무래도 요즘 도서관에서 시간 날 때마다 읽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만화라는 매체 자체를 떠나서 역사를 대하는 자세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박시백은 철저히 조선왕조실록에 의거하여 사실을 명확히 기록한 뒤, 그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아무래도 역사라는 것이 기록한 사람의 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역사 자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역사가의 자유라고 생각을 한다. 다만 이 책이 그런 ‘역사’의 범주에 못 들고 한낱 작가의 ‘이야기’에 머무는 것은 역사적 신빙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시백처럼 ‘실록’에 있는 사실을 제시한 후, 그것에 대한 타당성 있는 해석을 말한다면 그것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 타당하다/못하다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인데, 저자는 온통 ‘내 얘기가 사실이니까 무식한 니네는 그냥 닥치고 있어’라고 우기고만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간만에 문학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을 읽었는데, 이렇게 온통 욕만 하게 되었다. 감명 깊은 책에 대한 감상은 보잘 것 없는데, 이렇게 짜증나는 책에 대해서는 쓸 말이 넘쳐흐르기만 하니 정말 부끄러운 노릇이다. 결국 내가 처음 이 책을 찾아 읽었을 때 원했던 것-임진왜란의 흐름-은 알지도 못했으니 기구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달 전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일반회원은 도서관의 예약기능이 없어 번번이 빌려 보질 못하다가 운 좋게 대출이 되어 있지 않아서 빌려왔다.   

 

김애란은 단연 지금 가장 잘 나가는 작가들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이것은 얼마 전 2013년 이상문학상 수상으로 증명된 것 같다. 이렇게 그녀가 잘 나가는 이유 중 첫째는 단연, 그녀의 작품이 한국 문단 특유의 잘 나가왔던 작가들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일 것이고, 둘째로는 그녀의 글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래서 매번 그녀의 책이 나올 때마다 챙겨 읽곤 하는데, 그녀의 두 단편집 <달려라 아비>와 <침이 고인다>에 대한 좋은 감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냥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단편집도 무척이나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사실 이번 작품은 앞의 두 권의 책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앞의 두 권이 대부분의 ‘재기발랄함’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번 작품은 ‘짜증나리만치 사실적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리얼리티의 대부분은 ‘우리세대의 가난’을 모티프로 한다. 안 그랬던 사람 없겠지만, 나 또한 제법 고난이 많은 대학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학창시절 추억의 첫째는 아르바이트였다. 도통 나아지지 않는 가정형편에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며 보냈던 수많은 날의 기억들이, 바로 이 책에 가득 채워져 있다. 또한 그 가난에 대한 초상은 무척이나 다채롭다. 청소년의 가난(물 속 골리앗), 대학생의 가난(서른), 대학생이 여행 갔을 때의 가난(호텔 니약 따), 회사원의 가난(큐티클), 실직자의 가난(너의 여름은 어떠니), 신혼부부의 가난(벌레들), 장년의 가난(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중년의 가난(하루의 축) 등등. 

 

그래서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 책을 한 번에 읽지 못했다.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서른’에서 나오는 이 한 문장이 아마 이 책 전부를,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의 삶 전부를 압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슬펐다.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고작해야 거기서 거기일 거라는 막연한 절망을, 김애란은 분명한 문장으로 치환시켜준다. 그녀의 적확한 언어 감각이 너무도 야속했다. 그래서 대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느냐고 그녀에게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단편들 전부는 그냥 그렇게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 한다!! 는 식의 메시지는 당연히 없다. 그럴 거였으면 이런 작품들을 쓰지도 않았을 것 같다. 다만 현재의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녀는 적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무척 슬펐던 것이고,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이 감상문도 대체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따져보면 지금 우리세대에겐 비상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니, 작가에게 따질 일도 못된다. 작가는 스스로 본만큼 쓴 것일 뿐일 거다. 현재는 나는 다만 가슴 아픈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이 정말 슬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의 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3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나는 남미 여성 소설가들의 작품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의 조카인 작가는, 처녀작 <영혼의 집>을 통해 자신과 가족들의 기구한, 역사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그려냈었다. 이번 작품은 그녀가 자전적인-가족이라는 것, 자기 자신이라는-것에서 조금 시선을 바꾸어 ‘이야기’ 그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초, 중반의 칠레는 사실 우리에게 낯설기만 하다.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도 아니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미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국주의 나라들의 식민지가 된 중국 같은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니다. 이주민들과 토착 인디언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태인 칠레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나라는 작가의 나라, 즉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그녀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첫 문장에서부터 관심을 끌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낯선 곳에 이끌린다. 

 

그리고 등장하는 주인공 엘리사. 사실 1권의 내용은(작가 자신의 분신일지 아니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인물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주인공 엘리사의 이야기보다는, 그녀 주변의 상황을 보다 자세히 비춰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삼가지만, 1권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프롤로그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점진적으로 엘리사가 그녀 자신의 운명을 맞서기 시작 할 때까지의 상황을 흥미롭게 말해준다.  

 

총 2권의 책이기 때문에 아직 1권만 읽고서는 가타부타 말하기엔 이르지만, 1권 자체만으로도 이 소설은 너무도 재미있다. 보다 자세한 감상은 2권을 읽은 뒤에 말하도록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의 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4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참 틀에 박힌 생활을 한다. 그 하루의 마무리는 대략 11시부터 1시까지의 2시간의 독서로 끝난다. 이틀 동안 사이좋게 150페이지씩 두 번 읽으니, 또 한 권의 책이 끝났다. 너무도 소중한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이 소설이 끝나 갈 때까지도 ‘어 설마 이렇게 끝나나...’싶은 기분이 들었는데, 끝나고 후기를 읽으니 역시, 후속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읽은 다음 날 바로 도서관에 가서 그 후속편 <세피아빛 초상>을 빌려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속편은 다시 <영혼의 집>으로 연결이 된다고 한다. 출간 순으로는 <영혼의 집>이 가장 우선이었던 만큼 이 작품은 요즘 유행하는 ‘프리퀄’인셈. 작가가 이 삼부작을 처음부터 예상하고 <영혼의 집>을 썼을지, 아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흥미롭다. 동시에, 이렇게 재밌는 소설의 후속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소설을 다 읽고 책 뒤의 연표를 읽으니 이런 소설이 나온 자연스러운 과정을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엘리사의 성장기 부분-즉, 칠레에서의 삶은 그녀 자신의 고향인 칠레의 이야기이니 너무도 자연스럽다. 또한 중반부 엘리사가 골드 러시가 한창인 캘리포니아로 떠난 것은, 같은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점에서 보면 미국과 칠레라는(혹은 미국과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이라는) 역사적으로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점을 생각하면 또 납득이 간다. 또한 현재 이사벨 아옌데가 거주하는 곳이 미국이라는 점까지 본다면, 이 작품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절반의 비중은 극히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들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읽게 된다면 더욱 탄탄해 질 것이다. 여러 의미로 한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작품 자체는 1권의 감상에도 말했듯이 너무나 재미있다. 19세기 중반 칠레라는 사회 속에서 한 여성(그것도 절반이 인디언인)이 역사적인 사건들과 더불어 부대끼고,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무척이나 신비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또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여류작가’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특히나 아름답다. 이제 페미니즘 문학은 더 이상 여성해방의 캐치프레이즈를 악쓰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연스러운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섬세한 서술’을 통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보는 내내 여성에 대한 부러움과 신비함, 궁금증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가장 원했을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1권의 감상에서 2권을 읽고 자세한 감상을 쓴다고 말했는데, 더 이상 이 감상문은 마무리가 아니다. 이유는 당연히 <세피아빛 초상>을 빌려왔기 때문이겠지. 그 뒤로 이어질 엘리사의 이야기가 너무나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