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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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책의 독후감에 일본 소설은 대체로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에 집중한다는 말을 썼는데, 온다 리쿠의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물론 온다 리쿠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이 가장 뛰어난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인물들 간 감정(특히 청소년~젊은이들)표현이야말로 백미가 아닐까.  

 

그녀의 초기작에 속하는 이 작품도 그녀 특유의 감정 표현에 푹 빠질 수 있는 작품이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네 청소년들의 비밀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책을 쉽게 접을 수 없는 중독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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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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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분명히 즐거운 마음이 들긴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문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떠한 크기를 지닐까. 이것이 내가 2~3년 전쯤에 고민하던 것들이었고, 그래서 작년과 재작년에 책을 많이 읽지 않았었다. 

 

지난달까지는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들을 서로 섞어가며 빌렸는데, 최근 들어 어째 독서하는 일이 힘들게 느껴져 한동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빌렸봤다. 그러나 읽기엔 좋았지만 다시금 과거에 하던 저런 고민들이 다시 머리를 든다.  

 

그런 생각들이 드는 책은 오로지 문학만을 위한 문학이라는 느낌이 드는 책일 경우가 많다. 오로지 문장과 문장을 위한, 이야기와 이야기를 위한 소설들은 완성도 높고 재미가 있고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은 온전히 소설 안에서만 그렇다고 느껴 질 때가 많다. 설명이 점점 이상해지는데, 소위 말하는 오롯한 순문학들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이 책이 그렇게 현실에 전혀 쓸모가 없는 책이란 얘기는 아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에서의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단지 과거만을 추억하는 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최근 일어난 정치권의 여러 일들만 생각해도 정치나 이념적 성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에서 ‘김정은 개새끼 외쳐봐’의 사상 검증은 유효성을 갖는다. 2-30년 전의 일이라곤 해도 근, 현대사를 올바르게 봐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이 소설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놈의 하지만이 문제인 거다. 

 

역사적 의미와 소재를 차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역사는 아니다. 소설은 결국 소설인 거다. 천운영의 많은 소설들을 분명히 좋아하지만, 이 소설에서의 작법은 그리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역사적 소재를 소재로서만 머물게 하고 다른 것들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이 소설의 말투는 보는 내내 물음표를 떠올리게 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그래서...?’ 였다. 책은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얘기하진 않았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재밌고 잘 쓴 글이라 즐겁게 읽긴 했지만, 과거에 가졌던 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다시 떠올린 게 아니었다 싶다. 결국 그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조금 더 읽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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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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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단편 모음집인 이 책은 그가 지난 10여 년 동안 쓴 단편소설들을 한 데 묶은 것이라 한다. 아무래도 장편을 많이 쓰는 작가이다 보니 단편은 상당한 텀을 두고 발표된 듯 했고, 그것들이 모여 한 권의 분량을 이뤄 책을 펴낸 듯하다.  

 

책을 펴자마자 나오는 두 단편‘나날의 봄’과 ‘영하 5도’는 각가 15~20페이지 정도가 되는 초 단편들인데, 그 두 작품이 너무도 좋아 책을 읽는 순간 무척 감동했다. 특히나 ‘영하 5도’는 이 책에서 가장 짧은 단편인데(15페이지 가량) 그 소설을 읽는 순간, 지난 번 ‘요시다 슈이치 최고의 작품은 <퍼레이드>이고 어지간하면 그것을 뛰어 넘는 작품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번복하고 싶어졌을 정도로 감동했다. 마치 단편 영화나 짧은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싸일 정도로 인상이 깊은 작품이었는데, 이 감상문을 읽은 사람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므로 되도록 그 단편을 찾아 보셨음 좋겠다. 역시 요시다 슈이치는 엄청나게 좋은 작품을 쓸 잠재성을 늘 가진 작가라는 생각에 다시금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나오는 여러 단편들은 특별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작품들이 상당히 ‘한국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적’의 뜻은 그의 소설이 최근 한국 단편들과 상당히 닮아있었다는 의미의 ‘한국적’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상당한 수의 한국 소설들을 찾아 읽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내가 말하는 ‘한국적’ 단편 소설이란, 소설이 이야기나 줄거리에 집중하기 보다는 순간순간의 ‘이미지’와 ‘장면’에 집중하는 소설을 뜻한다. 일본 단편 소설들이 대체로 이야기와 인물들의 관계나 감정에 집중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한국의 단편 소설들은 인상파의 그림처럼 하나의 이미지에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단편 소설들은 상대적으로 기승전결이 뚜렷한 반면, 한국의 것은 그렇지 않다. 그 대신 한국의 단편들은 작가가 설정한 어떠한 ‘장면’을 향해 이야기가 모이기 때문에 집중력과 인상은 더욱 강하다. 

 

요시다 슈이치의 이번 작품집 중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캔슬된 거리의 안내’(한국판은 <도시여행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간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이 책 자체의 제목이 이 단편의 제목이라고 한다.)에선 유난히 한국 단편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특히나 이 작품집의 소설들이 발표된 순서대로 실렸다고 생각한다면 무척 흥미롭다. 요시다 슈이치는 최근의 소설에 올수록 한국적인 소재들을 작품 속에 상당히 많이 넣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소재들을 싣는 것은 1차원적인 영향이지만, 문체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에서 타국 소설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깊은-화학적인 영향인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이 요시다 슈이치 같은 일본 작가들이 한국의 ‘위대한’소설들을 ‘따라’한다는 국수주의적인 시각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여러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모습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요시다 슈이치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변화가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러 문화가 섞여 제 3의 문화가 생성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한 일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자신이 가진 원래의 작품 세계에 한국이라는 새로운 재료가 너무도 훌륭하게 섞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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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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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길래 <태연한 인생>만큼 치열한 예약 경쟁을 뚫고 겨우 빌려보았다.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 책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은데, 이것이 ‘실화’라고 주장하는 책의 판매 주장에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물론 전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이야기의 많은 부분에서의 리얼리티가 좀 떨어졌고 네러티브가 무척 작위적이었다. 삶이란 그렇게 복선이 많지 않은데. 이 책이 단순히 소설이라거나 작가의 인생에 플러스 알파를 한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냥 즐겁게 읽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작위적인 느낌이 나는 이 책을 두고 100%완전 실화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사실 작가가 실화라고 하면 그냥 믿으면 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작품 속 주인공이 호스티스라는 직업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일본의 실정은 잘 모르지만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봤을 때, 물장라는 직종은 얼마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물장사의 세계는 너무도 ‘긍정적’이기만 하다. 만약 그녀의 책을 읽은 여성 독자가 작가의 모습을 보고 그 세계에 뛰어든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조금 아득해진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가 생의 마지막 행위로 택하는 ‘도박’또한 위험하다.  

 

내가 이 책에 리얼리티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것에서였다. 어떤 경험에 대한 좋은 글들은 중립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행동은 장단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균형 있게 쓰는 것이 좋은 작가일 거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어려운 점 없이(작가가 말하는 유일한 어려운 점은 피곤함일 뿐이다.) 술술 풀리는 이 책은 그렇기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권선징악적 동화에 분노하는 대중들은 그것을 조금만 바꾼 어른들의 동화에는 쉽게 열광한다. 그것은 당장 우리의 삶이 팍팍해 대리 만족을 하고 싶은 열망의 표출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들에 너무나 쉽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책을 열고 단 열 페이지만 인생의 어려움에 대해 논의한 뒤 그 뒤로는 하는 일마다 잘 되었다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갖는 맹점은 너무 크다. 단순한 현대의 팬터지라고 생각해 읽고 넘기면 나쁠 것 없겠지만, 이것이 인생이라고 믿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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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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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부터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일반 회원에게는 예약기능이 없어 보질 못하다가 운 좋게 빌릴 수 있게 되어서 읽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별로’. 사실 은희경은 나에게 있어 <비밀과 거짓말>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 전에 발표된 그녀의 작품들을 대체로 좋아하는 반면, 그 작품을 기점으로 그 후로(<비밀과 거짓말> 포함.) 발표된 작품들은 도통 좋아할 수가 없다. 그 이유들에 대해서는 다른 작품들의 감상에도 길게 써 놓았으니 흥미가 생긴다면 그쪽을 참조할 것.  

 

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심하게 변하는 일은 쉽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에서는 장정일이 그랬다고 볼 수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 중에서는 공지영이 그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의 수준 자체가 변하는 일은 무척 드물 것이다. 장정일의 경우는 작품 세계가 상당히 변하긴 했지만 늘 즐겁게 읽었었고, 공지영은 예나 지금이나 글을 여전히 못쓰기 때문에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은희경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거의 작품들은 내 인생의 글들, 소설들로 꼽지만 <비밀과 거짓말>이후의 작품들은 좋은 문장 하나 건지기도 힘들 정도다. 무엇이 그녀의 소설을 그토록 바꾸어 놓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 나왔다고 해서, 또 힘들게 6개월여를 기다려 빌려 본 이 책이 너무나 별로여서 어디에라도 투정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문화는 취향이고, 취향은 논쟁의 거리가 되지 못한다. 내가 은희경의 새 소설에 대해 쉽게 ‘실망’했다는 말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녀의 소설에 대해 ‘실망’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실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타인에게 갖게 되는 극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누군가에게 ‘실망’을 말하는 것은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위다. 그녀의 소설이 별로라면 읽지 않으면 될 것이고, 어디에 가서 굳이 그녀의 소설에 ‘실망’운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투덜대는 것은 결국 그녀가 또 다른 소설을 출간한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사거나 빌리거나 해서 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이 감상문은 그저 푸념일 뿐인 거다. 

 

다만 책의 내용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한 마디의 사족을 붙이도록 하자. <비밀과 거짓말>이후의 소설들을 즐겁게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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