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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요시다 슈이치의 단편 모음집인 이 책은 그가 지난 10여 년 동안 쓴 단편소설들을 한 데 묶은 것이라 한다. 아무래도 장편을 많이 쓰는 작가이다 보니 단편은 상당한 텀을 두고 발표된 듯 했고, 그것들이 모여 한 권의 분량을 이뤄 책을 펴낸 듯하다.
책을 펴자마자 나오는 두 단편‘나날의 봄’과 ‘영하 5도’는 각가 15~20페이지 정도가 되는 초 단편들인데, 그 두 작품이 너무도 좋아 책을 읽는 순간 무척 감동했다. 특히나 ‘영하 5도’는 이 책에서 가장 짧은 단편인데(15페이지 가량) 그 소설을 읽는 순간, 지난 번 ‘요시다 슈이치 최고의 작품은 <퍼레이드>이고 어지간하면 그것을 뛰어 넘는 작품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번복하고 싶어졌을 정도로 감동했다. 마치 단편 영화나 짧은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싸일 정도로 인상이 깊은 작품이었는데, 이 감상문을 읽은 사람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므로 되도록 그 단편을 찾아 보셨음 좋겠다. 역시 요시다 슈이치는 엄청나게 좋은 작품을 쓸 잠재성을 늘 가진 작가라는 생각에 다시금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나오는 여러 단편들은 특별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작품들이 상당히 ‘한국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적’의 뜻은 그의 소설이 최근 한국 단편들과 상당히 닮아있었다는 의미의 ‘한국적’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상당한 수의 한국 소설들을 찾아 읽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내가 말하는 ‘한국적’ 단편 소설이란, 소설이 이야기나 줄거리에 집중하기 보다는 순간순간의 ‘이미지’와 ‘장면’에 집중하는 소설을 뜻한다. 일본 단편 소설들이 대체로 이야기와 인물들의 관계나 감정에 집중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한국의 단편 소설들은 인상파의 그림처럼 하나의 이미지에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단편 소설들은 상대적으로 기승전결이 뚜렷한 반면, 한국의 것은 그렇지 않다. 그 대신 한국의 단편들은 작가가 설정한 어떠한 ‘장면’을 향해 이야기가 모이기 때문에 집중력과 인상은 더욱 강하다.
요시다 슈이치의 이번 작품집 중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캔슬된 거리의 안내’(한국판은 <도시여행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간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이 책 자체의 제목이 이 단편의 제목이라고 한다.)에선 유난히 한국 단편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특히나 이 작품집의 소설들이 발표된 순서대로 실렸다고 생각한다면 무척 흥미롭다. 요시다 슈이치는 최근의 소설에 올수록 한국적인 소재들을 작품 속에 상당히 많이 넣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소재들을 싣는 것은 1차원적인 영향이지만, 문체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에서 타국 소설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깊은-화학적인 영향인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이 요시다 슈이치 같은 일본 작가들이 한국의 ‘위대한’소설들을 ‘따라’한다는 국수주의적인 시각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여러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모습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요시다 슈이치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변화가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러 문화가 섞여 제 3의 문화가 생성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한 일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자신이 가진 원래의 작품 세계에 한국이라는 새로운 재료가 너무도 훌륭하게 섞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