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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평점 :
6개월 전부터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일반 회원에게는 예약기능이 없어 보질 못하다가 운 좋게 빌릴 수 있게 되어서 읽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별로’. 사실 은희경은 나에게 있어 <비밀과 거짓말>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 전에 발표된 그녀의 작품들을 대체로 좋아하는 반면, 그 작품을 기점으로 그 후로(<비밀과 거짓말> 포함.) 발표된 작품들은 도통 좋아할 수가 없다. 그 이유들에 대해서는 다른 작품들의 감상에도 길게 써 놓았으니 흥미가 생긴다면 그쪽을 참조할 것.
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심하게 변하는 일은 쉽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에서는 장정일이 그랬다고 볼 수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 중에서는 공지영이 그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의 수준 자체가 변하는 일은 무척 드물 것이다. 장정일의 경우는 작품 세계가 상당히 변하긴 했지만 늘 즐겁게 읽었었고, 공지영은 예나 지금이나 글을 여전히 못쓰기 때문에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은희경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거의 작품들은 내 인생의 글들, 소설들로 꼽지만 <비밀과 거짓말>이후의 작품들은 좋은 문장 하나 건지기도 힘들 정도다. 무엇이 그녀의 소설을 그토록 바꾸어 놓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 나왔다고 해서, 또 힘들게 6개월여를 기다려 빌려 본 이 책이 너무나 별로여서 어디에라도 투정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문화는 취향이고, 취향은 논쟁의 거리가 되지 못한다. 내가 은희경의 새 소설에 대해 쉽게 ‘실망’했다는 말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녀의 소설에 대해 ‘실망’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실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타인에게 갖게 되는 극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누군가에게 ‘실망’을 말하는 것은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위다. 그녀의 소설이 별로라면 읽지 않으면 될 것이고, 어디에 가서 굳이 그녀의 소설에 ‘실망’운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투덜대는 것은 결국 그녀가 또 다른 소설을 출간한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사거나 빌리거나 해서 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이 감상문은 그저 푸념일 뿐인 거다.
다만 책의 내용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한 마디의 사족을 붙이도록 하자. <비밀과 거짓말>이후의 소설들을 즐겁게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