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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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이 글을 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이라는 것은 결국 생각과 대화의 연장일 것인데, 굳이 그것을 대화와 생각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현실의 물질로 남기게 되는 것일까.

 

이번 소설은 그냥 그랬다. 점점 온다 리쿠의 재미있는 작품들은 다 읽게 된 것 같아서 다음번에 도서관에 갔을 때 그녀의 책을 빌리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 작품 또한 이야기 자체는 무척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마무리 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실컷 벌여놓은 사건들은 마무리 하지 못해 작품 말미에 허둥지둥하는 그녀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물들의 감정선도 섬세하지 못하고 투박하기만 했다. 상대적으로 초기작에 속하는 작품이라 그랬던 것일까. 금방 읽긴 했지만 금방 잊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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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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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터넷에서 본 흥미로운 리뷰에 이끌려 이 책을 빌렸지만, 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읽기엔 역부족인 책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소설의 구조를 가진 소설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소설이라고 부르기 애매할 정도로 내러티브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화자가 영국 도보 여행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책의 내용은 그 여행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것이 아니다. 여행 속에서 만나는 것들이나 사물, 혹은 화자의 생각들이 무규칙하게 떠오르며 각 장을 구성하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외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기묘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되는 ‘대상’들은 해부학과 램브란트부터 청어 떼와 누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건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고 느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책을 에세이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학계에서 유명한 학설을 소개하듯이 운을 떼지만, 작가가 말하는 것들은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 그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알고 보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순서 없이 떠오르는대로 쓴 에세이같은 이야기들은 실은 치밀한 구성 속에서 짜여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소설인거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너무 어렵고, 내가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 힘든 것들이었다. 결국 이 책을 읽기는 했지만 그건 단순한 물리적 독서에 불과했고, 화학적 독서의 단계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단편적인 소개 이상의, 여러 감상들을 말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글을 마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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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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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지난번에 읽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속해있는 4부 ‘회전목마’를 확장시킨 소설이다. 무척 실험적인 ‘회전목마’에서 화자로 등장했던 작가는 이 작품(회전목마)은 한 장편에 대한 프롤로그격인 작품이라고 밝혔는데, 그것이 성장해 이 책이 되었다. 물론 프롤로그라고 해도 ‘회전목마’를 읽지 않아도 이 책을 읽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왜냐면 겹치는 내용이 있어도 두 작품에 각각 모두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낀다. 분명히 ‘회전목마’에서 나오던 장면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읽다보면 이 장면 어디서 봤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이 작품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보면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온다 리쿠의 여러 작품을 읽다 보니 무척 재미있게 본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나누게 되는데, 이 작품은 아무래도 아래쪽이다. 우선은 작품 전체적으로 흐르는 미스테리의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그 이야기들이 너무도 불규칙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는 작품의 호흡을 따라가기 벅차다. 하나의 굵은 미스테리 혹은 사건이 있어야 독자는 흥미를 느끼고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사건들은 독자를 쉽게 지치게 한다. 그리고 380페이지 동안 꼬이기만 했던 사건이 단 30페이지 만에 해결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 즐겁지 않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실마리가 풀려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속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데, 모든 사건들이 한 방에 해결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멍할 뿐이다.

 

무엇보다 온다 리쿠 특유의 등장인물들의 미세한 감정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본 만화나 드라마, 영화, 책 등에서 언젠가 한 번은 본 것 같은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런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청춘의 심리를 너무도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었는데, 이 책은 그런 모습은 하나도 없다. 잘 짜인 플롯을 연구해 어느 정도의 재미를 느낄 수는 있지만, 몰개성한 일본 만화 특유의 경직성이 겹쳐 보이는 답답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이 작가는 다른 작품을 또 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밤의 피크닉>이후로 만난 작품들이 죄다 재미가 없었다면 온다 리쿠의 작품을 읽지 않았었겠지만, 그럭저럭 1/2에서 1/3 정도로는 재밌는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쨌건 그녀의 다작,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도 충분히 높은 수준의 글을 써내는 모습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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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어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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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달에 열권의 책을 읽는다고 가정한다면, 그 중에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책은 몇 권쯤 될까. 세상엔 좋은 책은 정말 많지만, 좋아하는 책은 생각보다 드물다. 사람들의 취향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좋은 책을 알아채긴 쉬워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내 취향의 책’은 별로 없다. 그랬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그 모든 순간들이 너무나 즐거웠다.

 

사실 이 책은 네러티브가 무척 약하다. 책 자체를 관통하는 굵은 줄거리가 없고, 주인공 ‘찰리’가 담담히 서술하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상당히 진솔(혹은 작가의 자전적인)한 미국의 10대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미국의 10대는 우리의 10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찰리의 서술방식인데, 제목 그대로 <월플라워>처럼 사건들에 적당히 거리를 둔 관조자의 모습으로 사건들을 말한다. 감수성이 보통사람보다 훨씬 풍부한 사람이 살아가는 조금은 힘겨운 세상을 작가는 너무도 잘 그려냈다. 내용이나 서술에서 그렇게 진행돼서인지 나는 자연스럽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렸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 작품은 <호밀밭의 파수꾼>에 아마 상당부분 빚을 지고 있을 것 같다. 물론 작가만이 알 수 있겠지만.

 

동시에 이 책이 발표되고 이 책이 갖는 성, 마약 그리고 10대들의 삶에 대해 상당히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무언가 안심이 되었다. 그런 억압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는 한국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사회에서도 그런 논란이 일었다고 하니 이유 없는 안도감이 든 것이다. 뭐 물론 그쪽 나라는 작가가 고소되거나 하는 일까지는 없었겠지만.

 

더 이상 내가 이 책에 대해 감상을 쓰는 일은 불필요 한 것 같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감동을 주는 좋은 문장들이 무척 많았던 책이다. 요즘같은 계절엔 특히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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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2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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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던 대로 1권을 읽는 일이 꽤 힘들었다. 문체 때문이었는데,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에 있는 듯한 작가들이 쓰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안에 이야기는 충분하지만 그것을 책으로 바꿀 글 솜씨가 부족한 작가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현상인데, 그런 작가들의 문체는 유려하지가 못하다. 다소 난잡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같은 표현과 문장, 단락의 구조가 반복되면서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1권을 어느 정도 읽었을 때 문체에는 적응되었지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2권을 다 볼 때까지 남아있었다. 죽음의 신(?)이 서술하는 구조 자체야 나쁠 것은 없지만, 작가가 부여한 죽음의 신의 말투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런 구조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득보다 실이 많았다. 이야기 괜찮은 편이었음에도, 그러한 문체 때문에 이야기의 진행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아예 작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던가, 죽음의 신의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야기도 좋은 편이긴 했지만 짜임새가 튼튼하지는 못했다. 너무 많은 소재를 잔뜩 늘어놓아서(주요 플롯만 해도 3~4개는 된다.) 독자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벅차다. 좋은 소재가 많을수록 작가에겐 독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빛나는 소재여도 작품의 통일성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체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게 된다. 절정인 줄 알고 충분히 감정을 끌어올렸는데, 바로 뒤에 또 다른 절정이 다가오고 그것을 만난 독자는 당황한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은 무척 즐겁게 읽었다. 이야기 자체가 무척 재미있었고, 예고된 비극이 보이는 이야기는 작품 내내 흐르는 슬픈 분위기에 쉽게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동시에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렸다. 우리의 역사 또한 유대인들 못지않게 비극적이었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권의 많은 약소국가들이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유대인들보다 더 심하게 당했었다-혹은 당하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사건들이 잘 알려진 것에 비하면 우리네의 역사는 그렇지 못하다. 이 같은 사실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선, 그런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책과 같은 예술작품들이 나오는 것인데 그게 그리 간단치 못하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들이 그 사건에 너무도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위안부 같은 소재로 소설이나 영화가 나온다고 상상한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도무지 그런 작품을 맨 정신으로 끝까지 볼 자신이 없다. 그런 끔찍한 일들이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하나의 사건을 담담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일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가해자의 어떠한 사과도 이뤄지지 않은 지금, 그런 사건들은 여전히 현재일 수밖에 없다. 김영하가 <검은 꽃>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어쨌든 그 일 자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인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다.(어쨌건 형태상으론 계약 노동의 관계였고, 계약이 끝나곤 그들은 자유-라고 당당히 말하긴 힘들겠지만-가 되었다.) 반대로 어느 정도의 분명한 사과와 인정이 이뤄진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추악함에 대한 많은 좋은 작품들이 나오지만, 지구상의 전쟁이란 존재는 여전히 건재하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화자는 오늘도 바쁘게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너무나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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