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도둑 2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말했던 대로 1권을 읽는 일이 꽤 힘들었다. 문체 때문이었는데,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에 있는 듯한 작가들이 쓰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안에 이야기는 충분하지만 그것을 책으로 바꿀 글 솜씨가 부족한 작가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현상인데, 그런 작가들의 문체는 유려하지가 못하다. 다소 난잡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같은 표현과 문장, 단락의 구조가 반복되면서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1권을 어느 정도 읽었을 때 문체에는 적응되었지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2권을 다 볼 때까지 남아있었다. 죽음의 신(?)이 서술하는 구조 자체야 나쁠 것은 없지만, 작가가 부여한 죽음의 신의 말투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런 구조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득보다 실이 많았다. 이야기 괜찮은 편이었음에도, 그러한 문체 때문에 이야기의 진행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아예 작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던가, 죽음의 신의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야기도 좋은 편이긴 했지만 짜임새가 튼튼하지는 못했다. 너무 많은 소재를 잔뜩 늘어놓아서(주요 플롯만 해도 3~4개는 된다.) 독자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벅차다. 좋은 소재가 많을수록 작가에겐 독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빛나는 소재여도 작품의 통일성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체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게 된다. 절정인 줄 알고 충분히 감정을 끌어올렸는데, 바로 뒤에 또 다른 절정이 다가오고 그것을 만난 독자는 당황한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은 무척 즐겁게 읽었다. 이야기 자체가 무척 재미있었고, 예고된 비극이 보이는 이야기는 작품 내내 흐르는 슬픈 분위기에 쉽게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동시에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렸다. 우리의 역사 또한 유대인들 못지않게 비극적이었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권의 많은 약소국가들이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유대인들보다 더 심하게 당했었다-혹은 당하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사건들이 잘 알려진 것에 비하면 우리네의 역사는 그렇지 못하다. 이 같은 사실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선, 그런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책과 같은 예술작품들이 나오는 것인데 그게 그리 간단치 못하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들이 그 사건에 너무도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위안부 같은 소재로 소설이나 영화가 나온다고 상상한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도무지 그런 작품을 맨 정신으로 끝까지 볼 자신이 없다. 그런 끔찍한 일들이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하나의 사건을 담담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일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가해자의 어떠한 사과도 이뤄지지 않은 지금, 그런 사건들은 여전히 현재일 수밖에 없다. 김영하가 <검은 꽃>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어쨌든 그 일 자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인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다.(어쨌건 형태상으론 계약 노동의 관계였고, 계약이 끝나곤 그들은 자유-라고 당당히 말하긴 힘들겠지만-가 되었다.) 반대로 어느 정도의 분명한 사과와 인정이 이뤄진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추악함에 대한 많은 좋은 작품들이 나오지만, 지구상의 전쟁이란 존재는 여전히 건재하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화자는 오늘도 바쁘게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너무나 슬프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