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부인 김승옥 소설전집 4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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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전집4

 

독서라는 것은 나름대로 내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책은 어느 시기에 어느 정도를 읽었냐에 따라서 내 삶이 빠르게 돌아가는가 느리게 돌아가느가를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는데, 요즘은 그럭저럭 바쁘게 산 것 같다. 내 삶에 있어서 여유는 곧 독서로 환원되기 때문이리라.

보통여자, 강변부인 두 중(장?)편 소설 두 개가 묶여 있는데, 전의 것은 여성지에 연재, 뒤의 것은 일간지에 연재를 했단다. 그런 탓인지 두 소설은 굉장히 대중적이다. 단편들보다 읽기 편하며, 소재 자체도 남녀간의 정이나, 부부사이의 불륜 따위였다. 하지만 그 남녀 사이의 묘한 긴장을 아주 냉소적/혹은 현실적 으로 표현했다.

김승옥의 소설이 나에게 아주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타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읽으면서도 머릿 속으로 이야기나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겨 보며 어느 정도의 (무의식적이지만)도표 비슷한 것을 짜며 읽는다. 전부 읽고 난 뒤에는 그 도표가 일종의 거미줄 같은 느낌으로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그 책을 읽은 감상이나 그 책에 대한 추상적인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김승옥의 소설은 그냥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이 끝나 있다. 그래서 그 감상이란 것은, 타 소설과 달리 그런 직물의 얽힌 실들이나 거미줄 같지 않고, 깎아내지 않은 원석같은 두리뭉실함으로 기억된다. 설명을 잘 못하겠지만 감상이나 여운따위라기보다는 읽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게 된다고 할까. 내러티브보다 문장에 더 집중을 한다고나 할까.

두 작품 모두 남녀관계를 다루었는데,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전혀 없다는 생각조차 든다. 나는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남성을 경멸하곤 하며, 또한 그런 남성들이 주도하는 공격/방어로 나타내어지는 남/녀 관계가 시대가 아무리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가까운 감정을 갖곤 한다. 그리고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성을 지녔기에 어차피 마찬가지라는 체념 또한 갖는다.-이렇게 은유로 글을 쓰는 것은 불특정 다수(라는 표현이지만 실제로 이걸 읽는 사람은 소수)를 향해 소리치기엔 어려움이 많은 소재이기 때문이고, 정 궁금하다면(대개 그렇지 않겠지만) 자세한 것은 개인적으로 질문을 해 주시길- 그런 것들을 정말 사실적으로 써대는 김승옥의 글엔 역시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남자를 정말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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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작은 풍경 김승옥 소설전집 5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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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소설 전집5

 

뒤쪽의 작가 약력을 보면, '김승옥 소설 전집'이라는 표현은 잘못. 작가 약력에는 표기되어 있지만 실리지 않은 소설이 몇 있는 것을 보면 전집이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또, 수필집도 있다고 쓰여 있는데 정말 읽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을 찾아보았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책이라 그런지 찾을 수 없었다.

꽁트 모음집. 꽁트는 프랑스어로 단편 소설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확실하지 않다-_-), 보통 우리 나라에서 쓰이기로는 꽁트는 두, 세장 정도 되는 아주 짧은 단편을 가리킨다. 물론 이건 단순히 소설쪽에서만 쓰이는 표현이겠고, 연극 따위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아주 짧은 극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아- 얉은 지식-_-)

확실히 한장 소설(나만의 표현)은 소설쓰는 실력을 늘리기에 아주 좋은 것 같은데, 일단 부담이 적고, 상대적으로 가볍고 독특한 아이디어만으로도 쓸 수 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이 책에서도 화자가 일간지나 비누, 소 따위로 아주 독특하고, 장르로 치면 sf까지 당황스러울 정도다. 김승옥이라는 아주 순문학의 대표적인 작가가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된다는 것에서 한장 소설의 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길게 읽은 만큼 읽던 중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던지 손에 쥔 것을 놓지도 않고 다른 것을 쥐려고 했고, 결국은 두 개를 모두 놓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중간한 건 내 인생에 가장 악덕이었는데, 분명히 하나를 포기해야 나머지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가도 어느샌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 그럼에도 이미 어쩔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며 스스로를 포기해버린다.

자신의 모든 행동에 후회없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기에 나는 너무도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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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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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진짜 안 읽는다 요즘. 그나마도 도서관 대출 기한이 오늘까지라는 메일이 와서 급히 읽었다.

 

이제 그럭저럭 출판된 은희경의 소설집을 전부 읽은 것 같다. 나름대로의 만족감과 함께, 이제부터는 신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작품은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치자-'새의 선물'의 주인공 강진희의 성인 시절을 다룬, 이를테면 후속작. 이해하기 힘든 연애관을 지닌 강진희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쉽게 작중 화자에게 몰두되지 않지만, 신랄하고 상당히 강해 보이는 주인공의 족적을 따라가는 것은 자체로도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네러티브보다는 순간순간의 문장에 몰두되는 소설.

그리고 그런 스타일의 은희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 전에 읽은 김승옥도 그렇지만 2-30년 전만 해도 소설은 정말 누구나 쓰는 게 아니었다. 소설따위는 분명 나와는 다른, 뭔가 다른 그런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면에서 은희경은 정말 섹스 피스톨즈 같은 작가다. 영국의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게 음악이라는 생각을, 음악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꿔주었다. 은희경 등장 직전까지만해도 문단은 아주아주 순문학적인 소설이나, 운동권 후일담 소설이 아니라면 소설 취급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은희경 류의 그냥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가 주축이 되는 소설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은 더 심해졌지만 당시의 젊은이들도 운동권 후일담 소설을 읽기엔 공감을 느끼지 못했고, 전쟁도, 기아도 겪지 않았었기에 딱히 여러 경험을 하지 않은 세대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은희경 같은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깊게 파고 든 작가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로 대표되는 일본 문학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시장을 넓혀나갔던 것이리라.

하지만 또 은희경은 누구나 쓸 수 있을 가능성을 줬지만, 아무나는 못 쓴다는 것도 알려줬다. 깊은 사유의 필요성은 몇 백년 전이든 몇 백년 후든 소설가에겐 필수일 것이다. 작가의 말에 동의하기는 쉬우나 그 동의하기 쉬운 말을 말하긴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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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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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기억도 안 나지만 고등학교때 책 볼 시간은 학교 일찍 와서 남는 시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정도였던 것 같다. 거기에 추가해보자면 간혹 수업시간이었었다. 이 버릇은 중학교부터였는데, 나 스스로 재미없거나 유익하지 못하다고 판단한(누구맘대로-_-) 수업시간엔 책을 읽었다. 이것도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 교사의 수업 패턴따위가 널널한 사람만이 먹힌다. 수업도 받고 책도 읽자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선천적으로 좌우뇌가 덜 나뉘었는지 나는 한 번에 한 가지가 넘는 일은 하지 못했다. 하여튼 그렇게 책 보는 건 좋았는데, 시험기간만 되면 낭패였다. 수업을 안 받았으니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했던 게 바로 그것.

주말에 마이너리그를 보다가 약 60페이지 정도 남았었는데, 1교시 수업이 어쩐지 지루해서 책이나 읽어버렸다. 일년 반 만에 수업시간에 책을 읽는 즐거움. 정좌해 읽는 책은 어쩐지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한 번 읽은 책이긴 한데, 마땅히 빌려놓은 책도 없고 해서 그냥 봤다. 전에 읽었던 책이 은희경이었던 게 영향이 컸으리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녀의 책은 등단작과 최근작, 가장 좋아하는 책 세 권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 책은 어느 것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즐겁고 즐겁고 즐겁고, 또 급소만 쑤셔대고, 잘썼고, 좋다. 재밌다.

어차피 더 써야 찬양론만 될테니 이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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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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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지영을 참 않좋아한다. 고등어를 보고 지루했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으며 독서 자체를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라는 책이 우리 집 책장에 읽히지도 않은 채로 어색하게 꽃혀 있는 것이다.

라는 주제에 왜 건방지게 공지영의 책을 빌렸는가? 나는 내 주제를 알지 못하고 깝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이번도 약간 비슷했다. 강동원 이나영이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여기 저기 매체에서 말들을 했는데, 거기에 나온 대충의 줄거리가 조금 마음에 들었었나영. 제목은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하긴, 무소의 뿔-도 제목은 멋졌었다.

공지영의 글은(적어도 내가 봤었던 소설은) 우리 세대에게(적어도 나에게-이러면 글이 진행이 안되지!)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공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무소의 뿔-이나 고등어의 경우엔 장정일식 표현으로 운동권 후일담 소설이기 때문에 같은 세대가 아닌 이상 정말 이해하기 힘들고, 대사들도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아무도 쓰지 않는 소설에나 나올법한 낯간지러운 말들뿐이며, 네러티브도 작가가 주물럭거린 티가 확 나게 인위적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결국

 지루하기 쉽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이 책도 운동권 후일담만 빼면 대충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맞추어져서 굴러갔는데, 그러나 나는 보고 나서 울어버렸다. 맙소사.

훌륭한 점은 역시 구성이었던 것 같다.(학교에서 가정식의 표현은 삼가라 했는데, 쓰게 되는구나) 주인공 '유정'과 함께 사형부터 시작되어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고뇌를 함께 하다보면 이거 뭐 감동해버린다. 나와 코드가 다를 뿐, 이 작가도 깊은 사유를 하는 것이다. 좋은 작가는 자신의 깊은 사유를 독자에게 주입시키는 작가가 아니라,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단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삼류로 무시해 버리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말할 때 아마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아 그거 좀 별론데, 근데 보고 울었어.

나는 아주 엉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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