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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콘래드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로저 젤라즈니 지음, 곽영미.최지원 옮김 / 시공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날짜를 쓰다가 벌써 이렇게 됐나 하고 놀란다. 항상 그랬지만.
작가의 얼굴과, 문체와, 이름과, 작품이 이토록 잘 매치되는 작가는 아마 로저 젤라즈니 밖에 없을 것이다. 지적이고, 재치있게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에 맞는 작품과 저렇게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을 수가! 내가 심슨때문에 지금 정신이 반쯤 나가있다.
내 이름은 콘래드, 프로스트와 베타 두 작품으로 이뤄졌다. 전자는 장편 후자는 단편이다. sf의 명작으로 꼽힌다. 네뷸러상인가 휴고 상인가를 수상했는데, 항상 저 두개가 헷깔린다. 아무튼 저 상들은 훌륭한 sf와 팬터지에게 주는 상이다.
내 이름은 콘래드는 그간 읽은 sf들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뜬금없고, 이해 안가고, 뭔소린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재밌는 그런 기분이었다. 두 세번쯤 읽으면 겨우 이해가 가지만 말이다. 이건 sf가 원래 그런 장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 젤라즈니 작품이 원래 저렇게 뜬금없이 시작해버린다는 게 두번째 이유. 내가 멍청하다는 게 세번째 이유다.(사실 이게 제일 맘에 안 들긴 하다.) 하여튼 재밌긴 했지만 젤라즈니의 다른 작품보다 재밌다거나, 감명깊지는 않았는데, 뒤의 단편 프로스트와 베타. 맙소사. 죽였다.
시작부터 심상찮았는데, 정말 좋았다. 지구가 끝장난 상황에서 인류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놓은 기계(솔컴)가 지구를 복원시킨다는 내용인데, 그 기계가 또 다른 기계(프로스트)를 만들고 그 기계는 지구를 복원하는 동안 인류의 유물들을 발굴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진다는 내용이다.
속도감있고, 문장들은 간결하고, 필요한 것들만 갖췄고, 기계들의 대화를 아주 잘 표현했고, 이야기도 매끈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아무튼 내가 본 젤라즈니 작품들중에 가장 이질적이고,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정말 최고최고최고였다. 내일 한번 더 봐야겠다. 48페이지 정도의 짧은 단편이다.
참, 사족 좀 붙여보겠는데, 저번에 투데이 게시판도 그렇고 해서 하는 이야기다. 이건 지극히 내 주관적인 감상이고 나는 내 생각을 남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논쟁이라는 것을 싫어하고 피하는 사람이다. 그건 내가 순발력이 떨어져 적당한 반박이 한참 뒤에 생각나서 한 방 먹일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임은 물론, 논쟁이라는 것이 서로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한다는 허울 좋은 말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투쟁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논쟁이라는 게 각자 굽히지 않을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면 한 방 먹일까만을 생각하는 것이기 떄문에 나는 그것이 싫다. 그래서 개방성이니 어쩌니 급조해서 떠드는 것일지 모른다. 아무튼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고, 맞는다는 보장이 없고(마찬가지로 틀리다는 보장도 없다.) 감상이라는 건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이 책에 대한 이해는 틀렸군요,따위의 답변이 제일 싫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도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말이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전환구가 아 랑 아 도 다르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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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추가.
프로스트와 베타를 한 번 더봤다. 역시 좋았다. 도저히 더는 줄일 수 없는 담백한 구조와 이야기에 맞는 적절한 문체도 좋았지만, 역시 마지막 부분이 좋더라. 마지막에서 2장 정도가 최고였다. 이 책 덕분에 로저 젤라즈니 책 충동적으로-_- 하나 더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