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Mr.vertigo 1993년작. 

모 게시판에서 폴 오스터에 대해 악평을 보게 되어 읽었다. 달의 궁전과 이 책중 고민하다 이 책을 집었다.(조금 더 얇아보이는 달의 궁전을 읽으려다 얌생이 같다는 기분이 들어 그냥 처음에 보려고 한 이것을 선택했다.) 

정말 재밌었다. 시작부터 재기넘치는 문장이어서 기대를 했는데, 기대를 만족시켜 준 좋은 소설이었다. 소설. 그렇다. 소설로써의 재미가 아주 가득한 소설이다. 체계적이고도 완급있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독자가 소설속으로 몰입하게 해준다. 400페이지가 약간 넘는 좀 많은 분량이었지만(행간 간격도 좁아서 읽는데 더 힘들어 보인다.) 단 한부분도 지루하거나 집중력이 풀리지 않게 넘어갔다.  

말 그대로 공중을 걸으며 곡예를 하는 한 소년이 노인이 된 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식으로 구성됐는데, 마치 자서전같은 느낌을 받는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2장은 소년(월트)이 한 남자(예후디 사부)의 눈에 띄어 하늘을 걷는 법을 알게 되고 그것으로 공연을 해 크게 성공하고, 또 쇠락하는 과정을 그렸고, 3,4장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대적 배경은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는데, 미국 혹은 세계의 역사와 맞물려 월트의 인생은 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대공황 때문에 월트가 큰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세계대전과 이야기가 크게 관련이 있지도 않다. 절대적으로 이건 한 소년과 주위의 몇몇 인물사이의 일들로 구성된 이야기다.  

제일 마지막 부분에 의미심장한 말을 제외하곤 특별히 전달하려는 말을 잘 느끼지 못했다. 물론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긴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소설적 재미(플롯과 내러티브) 이상의 것은 잘 모르겠다. 말 그래도 이야기가 너무도 재미있고, 흡입력이 있다. 문체도 제법 속도감 있고, 유려해서 잘 읽혔다. 단, 대화하는 부분과 수사하는 부분의 차이가 크다. 수사하는 부분은 인물의 내면으로 끝없이 자맥질을 하는 듯한 기분을 받는 반면, 대화하는 부분은 인물들끼리 장난을 치는 것 같다.  

하여튼 쉬운 듯 어려운 작품이었음. 폴 오스터의 비판에 대한 옹호든 반박이든은 폴 오스터의 작품을 조금 더 읽고 결론내려야겠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볍고 즐겁게 읽힐 줄 알고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세권이나 빌렸는데 내 어중간한 생각에 크게 혼이 났다. 앞으로는 이 작가의 책을 에세이 말고는 읽을지 모르겠다. 무서운 책이었다. 

이야기는 8년동안 동거하던 연인이, 다른 여자에게 반하게 되어, 반한지 사흘만에 주인공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별 다를 것 없는 이야기고 그렇게 진행된다. 헤어졌지만 실감을 하지 못해 아직도 마음속으로 끙끙대는 주인공을 연인 다케오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걸고, 가끔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주인공 리카의 집에 다케오가 반한 여자, 하나코가 온다. 그리고 하나코는 리카에게 같이 살자고 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고, 이정도는 발단 정도의 부분이다. 그리고 난 이부분에서 무서워졌다. 나라면, 평범하게도 그 하나코라는 여자의 뺨이라도 한 대 때려줬겠지만 리카는 그냥 같이 산다. 이유는 다케오와 하나코는 연결되어있다는 생각과 다케오를 한 번이라도 더 볼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단다. 맙소사다. 맙소사.

 그리고 그렇게 무려 15개월간이나 산다. 하나코는 조금 독특한 사람으로 자유분방하며-자신은 도망친다고 표현-, 남을 신경안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뭐 이렇게 저렇게 하나코를 묘사하긴 하지만 내 눈엔 억지스러운 캐릭터로밖에 안보인다. 현실성과는 멀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현실과는 먼 캐릭터가 잔뜩 등장한다.

 하여튼 어쩌구 저쩌구 해서 책이 끝나긴 하는데, 후반부는 동어반복적 이야기-라고 느낌-에 지루하고 지쳤을 뿐이고, 어쩐지 뻔한 결말은 역시 설득력이 없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뿐이다. 얼추 생각해 보면 사랑과 소유라는 것을 주제로 쓴 것 같긴 한데, 특별히 감명이 깊거나 하진 않는다.

김난주씨는 또 몇군데 어색한 해석을 했고, 이해가 안가는 문장도 또 몇개 있었다. 더 큰사고를 친건 주인공의 연인의 이름이 원래 겐고라고 읽어야 하는데-일본에는 한자를 읽는 방법이 여러가지란다-자기가 처음에 잘못 읽은 다케오라는 이름이 자신의 뇌리에 너무 깊게 남아 일부러 오역했다고 한다. 자신의 해석을 독자에게까지 강요하는 역자는 옳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역자는 원문에 가장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이다. 토씨하나가 틀려도 문제가 있는데, 주인공 이름을 맘대로 바꿔버리는 건, 글쎄.

 하여튼 앞으로는 되도록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읽지 않게 될것 같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이름은 콘래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로저 젤라즈니 지음, 곽영미.최지원 옮김 / 시공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날짜를 쓰다가 벌써 이렇게 됐나 하고 놀란다. 항상 그랬지만.

 

작가의 얼굴과, 문체와, 이름과, 작품이 이토록 잘 매치되는 작가는 아마 로저 젤라즈니 밖에 없을 것이다. 지적이고, 재치있게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에 맞는 작품과 저렇게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을 수가! 내가 심슨때문에 지금 정신이 반쯤 나가있다.

 

내 이름은 콘래드, 프로스트와 베타 두 작품으로 이뤄졌다. 전자는 장편 후자는 단편이다. sf의 명작으로 꼽힌다. 네뷸러상인가 휴고 상인가를 수상했는데, 항상 저 두개가 헷깔린다. 아무튼 저 상들은 훌륭한 sf와 팬터지에게 주는 상이다.

 

내 이름은 콘래드는 그간 읽은 sf들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뜬금없고, 이해 안가고, 뭔소린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재밌는 그런 기분이었다. 두 세번쯤 읽으면 겨우 이해가 가지만 말이다. 이건 sf가 원래 그런 장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 젤라즈니 작품이 원래 저렇게 뜬금없이 시작해버린다는 게 두번째 이유. 내가 멍청하다는 게 세번째 이유다.(사실 이게 제일 맘에 안 들긴 하다.) 하여튼 재밌긴 했지만 젤라즈니의 다른 작품보다 재밌다거나, 감명깊지는 않았는데, 뒤의 단편 프로스트와 베타. 맙소사. 죽였다.

 

시작부터 심상찮았는데, 정말 좋았다. 지구가 끝장난 상황에서 인류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놓은 기계(솔컴)가 지구를 복원시킨다는 내용인데, 그 기계가 또 다른 기계(프로스트)를 만들고 그 기계는 지구를 복원하는 동안 인류의 유물들을 발굴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진다는 내용이다.

 

속도감있고, 문장들은 간결하고, 필요한 것들만 갖췄고, 기계들의 대화를 아주 잘 표현했고, 이야기도 매끈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아무튼 내가 본 젤라즈니 작품들중에 가장 이질적이고,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정말 최고최고최고였다. 내일 한번 더 봐야겠다. 48페이지 정도의 짧은 단편이다.

 

참, 사족 좀 붙여보겠는데, 저번에 투데이 게시판도 그렇고 해서 하는 이야기다. 이건 지극히 내 주관적인 감상이고 나는 내 생각을 남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논쟁이라는 것을 싫어하고 피하는 사람이다. 그건 내가 순발력이 떨어져 적당한 반박이 한참 뒤에 생각나서 한 방 먹일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임은 물론, 논쟁이라는 것이 서로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한다는 허울 좋은 말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투쟁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논쟁이라는 게 각자 굽히지 않을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면 한 방 먹일까만을 생각하는 것이기 떄문에 나는 그것이 싫다. 그래서 개방성이니 어쩌니 급조해서 떠드는 것일지 모른다. 아무튼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고, 맞는다는 보장이 없고(마찬가지로 틀리다는 보장도 없다.) 감상이라는 건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이 책에 대한 이해는 틀렸군요,따위의 답변이 제일 싫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도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말이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전환구가 아 랑 아 도 다르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

9월 24일 추가.

프로스트와 베타를 한 번 더봤다. 역시 좋았다. 도저히 더는 줄일 수 없는 담백한 구조와 이야기에 맞는 적절한 문체도 좋았지만, 역시 마지막 부분이 좋더라. 마지막에서 2장 정도가 최고였다. 이 책 덕분에 로저 젤라즈니 책 충동적으로-_- 하나 더 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로맨서 환상문학전집 21
윌리엄 깁슨 지음, 김창규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정말 읽기 힘들었다. tv책을 말하다의 선정도서이기도 하고, 내 나름대로 한동안 팬터지/sf의 주간-_-을 갖기로 해서 빌렸다. 사실 가능하다면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을 보고 싶었는데 없어서 이것을 빌렸다.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sf의 하위 장르-장르라는 게 나누는 데로 거의 무한대로 나뉘어지는 거지만-중 하나인 사이버 펑크의 효시격인 작품으로-라고 해석에 쓰여 있음.-사이버 펑크라는 게 죄다 이런 식이면 사이버 펑크도 나와는 인연이 없음이다. 사이버 펑크의 효시인 만큼 좋은 팬터지/sf에 주는 권위 있는 상인 네뷸러 상, 휴고 상, 필립 딕 상을 모두 수상했단다.

요즘은 너무 자주 쓰이는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소설이고, 사이버 스페이스와 매트릭스라는 개념은 당시에 없던 인터넷과 비슷한 개념이다. sf라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 과학에 의존하며 그것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제대로 된 과학 지식이 있어야 하는가를 잘 알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 책을 말하다에서 말하기를 이 책이 sf들 중에서도 특히 읽기 힘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생소한 개념은 둘째치고 이야기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다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또 이해를 위해 또 읽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그래도 나름의 재미와 분위기를 명확히 갖춘 작품이라 sf에 조예가 깊어지게 되면 다시금 찾아 읽는다면 좋을 지도 모른다는-무책임한 생각을 했다.

 

볼 책이 세권이나 쌓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르 귄의 2대 연대기 중 하나인 헤인 시리즈의 작품.

르 귄은 장르 소설가지만 문체나 주제를 생각해보면 순문학에 오히려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팬터지나 sf에 문외한이 읽어도 무리없이 읽히는 작품이 르 귄의 작품이다. 장르문학가중에 노벨문학상(풋)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르 귄이라는 평을 오랜동안 받았단다.  

헤인 시리즈는(잘은 모르지만) 우주에 84개의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가 서로 에큐멘이라는 하나의 정부로 엮여 있다는 것을 전제로 풀어지는 이야기다.(역시 설명이 이상하다. 잘 모른다니까) 어둠의 왼손은 84번째로 발견된 행성인 행성 '겨울'에 에큐멘의 사절 '엔보이'가 와서 교류를 한다는 이야기가 주로 다뤄진다.

 작품을 읽다보니 이영도는 르 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릭터적인 면은 젤라즈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세계관이나 기타적인 면에서는 르 귄의 영향이 많이 느껴진다. 젤라즈니가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그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를 창조하는 듯한 느낌이라면, 르 귄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가 문명적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상상한 뒤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그 역사 안에서 끄집어 낸다는 느낌이다. 이영도의 작품도 후기쪽으로 갈수록 젤라즈니에서 르 귄적인 느낌이 든다. 르 귄의 아버지가 인류학자라는데, 그런 것 답게 행성 겨울의 역사는 치밀하고, 설정은 흥미롭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나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해를 말하고 있다. 또 이해다. 신체 조건은 다르지만 엔보이 겐리 아이와 세렘이 시류에 휩쓸리는 동안 함께하게 되고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sf적인 상상력이 극대화되어 보는 것 자체로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자연스레 2편만 어렵사리 구해서 본 어스시 이야기 또한 엄청나게 보고 싶어 졌고, 이 노작가께선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더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남겨주시길 바란다. 아흔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 더 오래오래 사시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