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5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존 테니엘 그림, 최인자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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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 연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마틴 가드너(맞냐?)씨가 주석을 붙인 책. 앨리스 시리즈는 영국, 미국, 캐나다 따위에서는 굉장히 애호가가 많은 도서인가보다.

다행히도 주석은 주석에 그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볼 때에 1권 마지막에 해석이 달려 있어서 별 생각없이 봤다가 상징에, 비유에, 가장 큰 결말까지 다 알아버린 후로는 해석읽기를 꺼리게 되고, 지금은 좋아하는 소설가가 쓴 해설이 아닌 이상 전혀 읽지 않는다. 주석이 주석에 그친다는 이야기는 독자의 생각의 영역을 주석이 결론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주석의 대부분은 이해하기 힘든 영어로 된 말장난을 해석하거나 작품 내의 패러디 시들의 본문을 설명하는 정도다. 가끔 도가 지나친 주석이 있긴 했지만 어느정도는 저울질을 잘 한 듯 하다.

하지만 작가가 쓴 이상으로 보이는 문제들을 해석하는 건 언짢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기들끼리 발견한 내용을 작가가 의도한 양 해석을 써대는 모습은 우습다. 평론가들은 작가를 신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듯하다. 

도서 내의 삽화는 앨리스 가장 초판의 삽화를 그리신 존 테니얼씨의 삽화가 삽입되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많은 작가가 앨리스의 그림을 그렸지만 역시 존 테니얼의 삽화가 원조다. 루이스 캐럴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는 분으로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일부분에 대해 조금 의문을 제기하셨고 루이스 캐럴은 그것을 받아들여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단다.

첨부한 삽화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직후에 집어먹은 갈색 병에 들어 있는 액체로 처음으로 커진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이토준지의 그림이 생각나 모 동호회에 저 그림을 올렸다.

우스운 건 그곳의 난척하고 싶은 침팬치들이 저마다 아는 척을 하며 앨리스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대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는데 앨리스는 성인을 위한 동화도, 잔인하지도 않다. 캐럴이 밝혔다시피 이 동화는 전적을 어린이를(그중 특별히 여자아이들) 위해 쓰여진 것이다. 이런 우스운 사태를 평론가의 바보짓과 연상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는 얼추 알고 있었지만 항상 그렇듯 확실히 알진 못했다. 더욱이 거울 나라 부분은 처음 봤다. 알고 보니 앨리스는 개념을 상실한 푼수였다. 뭐든 낼름 집어 먹는 것은 물론, 말도 참 막한다. 하지만 호기심과 모험심, 용기 따위는 많기 때문에 이상한 나라를 탐험하기엔 더없이 좋았다. 중간중간 촌철살인의 대사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줬다.

다만 안타까운 건 원문보다 긴 주석을 읽느라 원문을 놓쳤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도 멍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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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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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가볍고, 쓸데 없는 생각 안 들고 무지막지하게 가슴이 뛰는 소설을 보고싶다!!!하는 마음으로 빌렸다.

 역시나 항상 그렇듯이 절반의 만족일 뿐이었다. 

예전에 ebs문학극장(그런 비슷한 이름이었음)에서 이 책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었다. 그기에 주인공으로 류덕환이 나왔었지. 동정없는 세상도 무지막지하게 기대하다가 역시나 실망했던 기억이 있던걸로 적당히 기대했다. 기대이상은 절대 보여주지 않는 작가.

흡입력있고, 재밌어서 빨리 읽긴 했지만, 부족하다. 극단적으로 가볍고 재밌기만 한 소설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소설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을텐데 말이다. 사람들은, 특히 작가들은 다들 최소한 이상의 가식을 가지고 살아가니 별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을 보고 난 다음에 도서관에 있는 청소년 필독서라는 잡지를 펴보니 마침 이 책이 소개된 페이지가 펼쳐졌다. 신기하기도 하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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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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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듯 베스트셀러언저리에 있는 소설들은 언제 한 번 봐야지 하고 생각한다. 생각만. 가끔 실천도 한다. 가끔. 

어처구니 없는 소설이다. 나름대로 시간적 순서의 앞뒤를 다르게 구성하려고 한 듯 한데, 모자이크처럼 치밀한 구조가 아닌, 덕지덕지 기운 천과 같은 기괴한 구조다. 일단 주인공을 죽이고 시작하는 소설은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쿠와 아키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 따위는 대충 그렸다. 필연성이 있어야 비극이 다가올 때 독자는 이야기에 빠져서 같이 슬퍼하는 것이다. 스토리도 참 막나간다. 어느 정도의 생략은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생각할 여지를 주어 좋겠지만 최소한의 설명마저 생략해 버리면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다. 어째서 아키가 수학여행에 빠지게 되었는지 따위를 생각하려면 추리를 해야한다. 우습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게? 대사는 잔뜩 힘이 빠져있고, 주인공은 횡설수설이다. 대사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두세군데 발견했고, 주인공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하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아키를 걱정하곤 하고, 퇴고를 거쳤나 의심이 될 정도다.  

게다가 왜 세상의 중심인지도 안나온다. 아동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책을 좀 대충읽어서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세상의 중심을 설명하는 부분을 봤다는 사람은 리플을 좀 남겨줘라. 반성할게.

 제목에 사랑까지 달고 나오려면 사랑이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을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사랑을 외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따위 소설이 잔뜩 팔렸다니, 일본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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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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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울 뿐이다. 질질 끌다가 겨우 겨우 읽어냈다. 무려 8일이 걸렸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책을 읽는 적당한 속도는 100페이지/하루 정도라는 생각을 했다. 무작정 읽기만 하는 건 자기 계발이든 개발이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적당히 생각을 하면서 읽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다만 이렇게 늦게 읽으면 호흡이 깨져서 처음부분의 내용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물론, 막판에 가서는 쫓기는 독서를 하게 된다.

(단편집은 평균 8~10개 정도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2~3편씩 읽는 게 옳을 것 같다. 단편도 장편도 호흡조절이 중요하다.) 

작가는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츠메 소세키다. 자세한 건 알아서들 찾아 보시고, 내 느낌으론 새의 선물과 조금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큰 차이는 인물의 능동/수동성에 있다고 본다.

본디 단편이었던 것을 열개의 이야기를 더 추가해서 장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의 호흡과 후반의 호흡이 다르다. 초반부분은 주인공이 고양이라는 것이 꽤나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주인공 고양이는 점점 관찰자가 되어간다. 전지적 시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주인공이 고양이인것에 대부분의 독자는 눈치를 챘겠지만 이건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을 풍자하는 것이다. 집필 시기와 현재는 무려 100년 정도 차이가 난다지만 지금 읽어도 대부분의 비판이 뜨끔하다. 고양이의 주인 구샤미는 소세키 자신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그 주위 인물도 아마 주변 인물이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중간 중간 굉장히 유머러스한 부분이 있어 크게 웃게된다. 그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삼천포로 엄청나게 빠져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끌고가다 말고 한참 샜다가 다시금 복귀한다. 이것 자체가 지식인에 대한 풍자인지 작가의 특성인지는 다른 작품을 더 봐야 알것 같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중에 하나다. 

ps. 이것을 보느라 너무 오랜시간을 들인 나머지 그간 산 책과 빌린 책등 볼책이 다섯권이나 쌓였다. 당분간은 독서에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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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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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작으로 여행에서 모티프를 얻은 단편집. 바나나는 점점 힘이 빠져간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중 하나인 키친의 경우엔 가끔 그 작품을 돌이켜 보면 가슴 두근거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요즘의 단편들은 전혀, 정말로 전무할 정도로 별로다. 바나나의 작품들 자체가 워낙에 호흡도 짧고 이야기도 적어 장편을 봐도 섭섭한 기분이 조금 드는데, 단편이면 오죽하랴? 재밌는 아이디어는 자주 발견할 수 있지만 그것을 깊게 발전시키지 않는다. 아쉬운 기분이 든다.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불륜과 남미를 모티프로 일곱개의 작품이 엮여져있다. 바나나가 남미(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본곳이나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섞어서 소설로 만든 것이다. 소설은 소설가의 삶이라는 말을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잠깐 딴 길로 새자면 바나나의 작품은 불륜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불륜이 그렇게 많은지는 아직 느끼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어쩐지 불륜이란 것을 당연시 시키는 듯해서 묘하다. 물론 불륜도 사랑이라고 주장하면 사랑이겠지만, 결혼이란 것을 사랑을 전제로 했다고 보고, 불륜을 새로운 사랑이라고 주장한다면 사랑은 이토록 쉽게 깨지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직 스무살의 나로써는 환상을 가지고 싶다. 누구누구 평론가가 주장했듯 일본 소설은 특이한 형태의 가족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의 시야를 좁힐 수 있다. 바나나의 책을 보면 깨닫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쉽게 읽고 즐겁게 생각할 뿐이다. 전혀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쉽게 받고, 리얼리티의 상실은 현실세계와의 고리도 끊기 때문에 독서를 실생활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물론 독서라는 것이 꼭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아니지만-단순 취미수준에서 즐기기-아무래도 조금은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글솜씨는 워낙 좋기 때문에 흡입력이라던가 재미는 여전하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바나나의 작품은 독자에게 문제를, 생각의 여지를 잘 던져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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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6-10-0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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