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22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하성란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요즘은 책 살 돈이 없어서(정말 없다!!) 책장에 꽃혀진 책들을 읽고 있다. 이번엔 하성란이다.

워낙에 좋아하는 작가인 데다가 하성란의 단편집중 단연 최고로 꼽는 책이라 즐겁게 봤다.
스토리적으로 보자면 하성란의 소설 대부분은 반전이 세다. 워낙에 시작이 대책없어서 한줄이라도 대충 읽게 되면 스토리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반전이 센 만큼 첫번째 볼때의 충격이 크고, 그렇기 때문에 두번, 세번 다시 보면 그다지 크게 놀라지 않고 흥미롭지 않다. 하지만 하성란의 재미는 여기에 있지 않다. 하성란 소설의 구조는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거기에 하성란 특유의 섬세하면서 유려한 문체가 더해지면서 소설은 시너지 효과를 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책에 대해 말해보도록 한다.
전까지 하성란 단편소설들은 그로테스크함과 섬세함으로 뭉쳐 있었다. 정말 이상한 소재들을 잘도 찾아냈다. 단편 '루빈의 술잔'은 정말 충격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평범하다 말할 수도 있겠는데 소재는 정말 이상했다. 그런 소재를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하지만 본 책에서는 하성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전번에 봤을 때 기억에 남는 작품은 표제작인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별 모양 얼룩' '저 푸른 초원위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정도였는데 이 중 뒤쪽의 두 작품은 이것이 하성란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하성란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어서 기억에 가장 남는 작품은 '오 아버지'였다. 하성란의 자전적 서사라고 해설은 말하고 있는데 아주 맘에 드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아주 진솔하고 투명하다. '새끼손가락'의 경우에는 자못 유쾌하기까지 하다. 평소 하성란스타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급작스런 유턴을 시도한다. 약간의 오컬티즘까지 섞인 재미있는 이야기다. 물론 처음 읽었을 때 기억에 남던 작품들도 여전히 훌륭했지만 말이다.

채팅을 하면서 쓰고 밥을 먹고 쓰고 대충 쓰니까 이상하다.

2005.4.24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와타야 리사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최연소 아쿠타카와상 수상에 빛나는 바로 그 작품-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아쿠타카와상 수상+어린나이+예쁜 얼굴 덕분에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샀던 걸로 기억한다. 작년7월쯤? 사서 한 번 읽고 조금은 의아해 했다. 아쿠타카와상이라면 일본 최고의 권위(하하)있는 상이라 상당히 경이로운 작품일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표현의 어색함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큰 굴곡이 없는 이야기구성 또한 그간 일본소설들에서 심심찮게 봐온 것이다. 재밌는 작품이긴 하지만 아쿠타카와상까지 받다니 참, 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 볼 때는.

그후 이런저런 책들을 조금이나마 더 보고 다시 읽은 이 책은 분명 다른 의미로 다가왔고 아쿠타카와상 수상에 납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한 평론가가 말한 '일본소설은 등장인물도 두어명 뿐인데다 그 등장인물들조차 상당히 왜곡된 인간상이기 때문에 일본소설을 너무 많이 읽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정도의 말이었다. 읽는 순간 얼른 납득이 갔다. 많은 일본 문학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은 대다수의 일본문학은 바로 그랬다. 이를테면 하루키는 굉장히 현실도피적이다. 인물 사이의 관계라던가가 괴장히 비현실적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의 경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하루키는 적어도 '현실을 피해간다'는 인상이 뚜렷하지만 이들 작가는 아예 고민조차 하지 않고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나와서 정말 이상한 관계들을 맺는다. 야마다 에이미의 경우는 120%cool답게 정말 별 생각이 없다. 그래, 일본소설은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묘하게 도피적이다. 하지만 와타야 리사는 다르다.

주인공 '하츠'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입학한지도 2달이나 지난 6월. 하츠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아이는 중학교때부터 친했던 '키누요'한명 뿐이다. 하츠는 아이들의 인위적인 관계가 우습다고 생각한다. 억지웃음을 지으면서까지 친해지려는 아이들이 우습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상황에 괴로워한다. 하츠는 아직 어린애다. 그런 그녀는 반에서 자신과 같은 아웃사이더 '니나가와'와 인연이 생긴다. 니나가와는 모델 '올리짱'의 팬이고, 우연히 과거에 그녀를 만났던 하츠는 니나가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자 니나가와는 올리짱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녀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일들을 격으며 하츠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왜곡된 안경이 조금씩 벗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니나가와 또한 변한다. 하츠는 니나가와를 니나가와는 하츠를 변화시킨다.

얼마전 전작'인스톨'을 읽었다. 작가는 처녀작부터 끊임없이 현실 문제에 대해 말을 걸어 왔다. 두 작품 모두 성장소설의 틀을 쓰고 있다. 주인공들은 이리저리 고민하다 결국은 조금씩 성장하고, 바뀌어 간다. 현실을 직시한다. 그런 성향답게 문체도 현실적이다. 실제로 격을 수 있는 공감이 가는 일들을 묘사하고 수사한다. 분명 여타 일본 소설들과 다르다. 이런 다름이 그녀에게 아쿠타카와 상이라는 것을 안겨 줬을 거란 생각이다. 그리고 촌스러우리만큼 고전적인 구조. '만남을 통한 변화'라니, 이 우직스러움 또한 얼마나 멋진가.

2005.4.28 나는 공부를 못해-야마다 에이미

나는 공부를 못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책을 읽은 다음 날 감상문(?)을 쓰는 이유는 잠자리에서 책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이유로는 대충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나도 생각이란 걸 한다!!) 책을 읽는 도중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독서도 물론 있다. 그런 독서는 분명 더디지만 즐겁다. 생각을 글로 옮길 상상에 즐거워진다. 또,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의 여운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독서와 생각이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지만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좀 더 깊게 생각 할 수 있다는 이유도 된다.(이유가 될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리 좋지 않은 경우는 읽을 때 별 생각 없이 보고, 보고 나서 별 생각없이 다음 책을 고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 이런 별 것 아닌 화두를 길게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이 책이 마지막의 경우에 해당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분명 야마다 에이미, 좋은 소설가고 즐겁게 작품들을 읽고 있다. 그런데, 이 작가 시쳇말로 너무 '쿨'하다. 은근히 대책없다.

주인공 히데미는 고등학생. 공부를 못 한다. 물론 학교 성적으로서의 공부. 그래도 히데미는 굴하지 않는다. 그건 특이한 히데미의 가정환경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 할아버지는 나이를 거꾸로 먹지만 먹을 만큼 먹은 지혜로운 인간, 아버지는 없음. 엄마는 히데미를 멋진 남자로 기르고 싶단다. 그렇게 자라난 히데미는 '쿨'하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잔뜩있지만 그리 감명 깊지 않다. 작품은 시종일관 경쾌하고 가볍게 굴러간다. 깊게 생각 할 부분을 남겨두지 않는 작가의 배려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여운을 준 후 그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나는 좋아한다. (예전에 이 작품이 식스티 나인과 박빙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짧았었나보다. '69'은 생각의 여지를 여러 곳에서 만들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4teen'과 이 작품은 비슷한 듯 하다.) 하루키와는 다른 의미에서 어쩌라는 거냐,는 의문이 절로 들어버린다. 작가의 생각, 철학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삶의 성찰이 없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지만 왜 이럴까? 내 생각엔 작가가 단정을 해버리기 때문이란거다. 책의 구조를 보자면, 어떤 문제와 관련된 사건이 생기고 히데미는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해 버린다. 이 책의 단점은 '해결해 버린다'는 것에 있다. 혼자 고민하다 해결해 버리고 속편해한다. 사춘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답이 없는 고민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런 사춘기의 학생을 너무 성숙하게 만들어 버렸다. 연애도 연상의 여인, 그것도 매우 안정된 여인과 하고 가족들도 이미 완성되어 버렸고 가장 중요한 건 히데미가 완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심심해진다.

재밌는 책을 추천해 달라면 물론 이 책을 선택해 주겠다. 재밌다. 좋은 책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2005.5.2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요즘 한창 문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작가 박민규의 처녀작. (등단작은 '지구영웅전설')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했다. 프로야구가 개막하던 해에 있던 '도깨비팀'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을 한 작품이다. 작품 대부분은 삼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실은 삼미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때는 1982년. 주인공은 인천에 사는 평범한 한 소년. 이제 중학교에 입학한다. 비록 뺑뺑이지만 주인공이 배정받은 중학교는 인천의 명문이다. 그와 동시에 개막하는 프로야구. 주인공은 중학교에 갈 기대보다 프로야구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인천을 연고지로 출범한 팀은 삼미 슈퍼스타즈. 비록 다른팀과 달리 유명 선수 하나 없는 팀이지만 꿈에 가득 찬 소년들에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 친구들과 리틀 삼미 팬클럽에 가입하고 모였다 하면 야구이야기를 한다. 드디어 시작한 프로야구 원년 시즌. 기대와는 달리 삼미는 매번 진다. 이름과 달리 슈퍼스타가 하나도 없는 팀인 만큼 당연한 결과이다. 소년들은 상처를 받는다. 결국 일곱명의 소년들중 두명은 다른 팀의 팬이 되는 변절을 하고 셋은 야구에 흥미를 잃었다는 이유로 빠져나간다. 남은 두 소년 주인공과 '조성훈'은 오히려 오기가 생겨 더욱 삼미를 응원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지던 삼미는 이기지 않고 소년들은 더욱 상처가 쌓여간다. 쌓인 상처만큼 두 소년의 훗날의 삶에도 삼미는 큰 영향을 준다.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 대충 이쯤에서 끝맺기로 한다.
책은 크게 '그랬거나 말거나 1982년의 베이스볼', '그랬거나 말거나 1988년의 베이스볼', '그랬거나 말거나 1998년의 베이스볼'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챕터는 주인공의 유년기 두번째 챕터는 주인공의 청년기 마지막 챕터는 주인공의 성인기를 다루고 있다. 실존했던 프로야구팀 '삼미'를 비롯, 작품 전체는 시대적 흐름과 매우 밀첩한 관련을 맺으며 진행된다. 아니, 실은 시대적 상황이 없다면 이런 이야기가 없었을 것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삼미'와 '삼미의 야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제로 작가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삼미의 야구로 상징되는 그 무엇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다. 참 시대의 조류를 잘 읽은 책이고, 참 시대의 조류와 상관 없는 책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철저한 고증과 리얼리즘이 살아있다. 발로 쓴 소설이라는 게 분명 느껴진다. 실제로 작가는 삼미의 팬도 아니고 인천에 살았던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역시 문체를 빼 놓고는 이 책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재미있게 진행되는 문체. 특히 한 단어를 파고들때가 난 너무 좋았다. 게다가 즐거운 와중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이것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위에 글을 쓰면서 이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이 막 든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책이니까.

2005.5.4 리틀 바이 리틀-시마모토 리오

리틀 바이 리틀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4년 8월

83년생에 98년에 데뷔했다는 바로 그 작가 '시마모토 리오'.
어째 요즘 일본은 나이 어린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사실 좀 부러운 일이다. 게다가 질투심이 드는 일이기도 하고.

주인공 다치바나 후미. 엄마와 동생과 함께 셋이서 산다. 첫번째 아빠-후미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헤어졌고 동생유의 아빠-두번째 아빠-는 엄마와 얼마 전 이혼했다. 그렇게 되니 집안 경제사정도 어렵고 해서 재수를 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엄마의 직장은 망한다, 라는 설정은 한없이 우울해 보이기만 하지만 주인공 후미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의 새 직장을 통해 만나게 되는 소년, 슈. 상큼발랄 스토리 스타트!♥

정말 저 하트를 찍어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 소설은 예쁘다. 리틀 바이 리틀이라는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작가는 삶의 소소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소함속에 조그만 행복을 찾고 즐거워 하는 주인공을 보면 덩달아 즐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로지 밝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은 참으로 와닿는다.

요컨데, 이 작가의 문체는 이미 완성되었다. 어린 나이지만 한 부분도 어색한 문장을 찾을 수 없다. 나이많은 작가의 늦은 데뷔작 속에도 어색한 문장은 심심찮게 발견되는데 반해 이 소설은 절대로 어색한 문장이 하나도 없다. 그것이 안타깝다. 와타야 리사의 경우는 상당히 다음 소설이 기대됨에 반해 시마모토 리오의 다음 소설은 와타야 리사의 그것만큼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비슷한 류의 작가로 요시모토 바나나가 있겠다. 새 소설을 사는데 기우따위는 들지도 않고 기대도 그리 많이 생기지는 않는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겠지, 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소설은 적어도 읽고 있는 만큼은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고, 그것은 결국 읽은 다음에 우리는 현실에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소설은 절대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소설과 현실을 맺는 것 따위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서정성과 소소함은 정말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동안에라도 즐거운 게 어디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