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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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터지 문학이 순수 문학에 비해 갖는 장점은 주제를 위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핍박을 많이 받는 사회를 비판한다는 주제를 세웠다면, 그에 맞추어 남성에 비해 여성이 우월하다는 인식을 보통 가지고 있는 세계를 창조해 주제를 더욱 강조할 수 있다. 이것은 순문학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강점이다. 하지만 그 세계의 메커니즘이 조금만 헐겁다해도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과 그 새로운 세계에 독자가 새로 적응해야 한다는 등의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작가는 위의 말 그대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우월한 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나간다. 아주 작은 단어의 선택에서부터 큰 네러티브까지 모든 것이 무척 매끄럽게 주제를 향해 귀결된다. 하지만 조금만 살핀다면 그 매끄러움은 말 그대로 현실 그 자체인데, 단순히 남/여가 전환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의 아귀가 그렇게도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리라. 남성(작품 내에선 맨움manwom)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과 잘 가꾼 얼굴, 적당히 살집이 오른 귀여운 몸이며 여성(움wom)에게 요구되는 것은 호탕함과 맨움을 어느 정도 무시하는 듯한 태도, 그리고 사회적인 능동성이다. 이렇게 단순히 남/여의 역할 전환을 보다보면 우리는 쉽게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 세상이 이렇게 여성에게 가혹하지 않잖아, 이건 비약이 좀 심해, 라는 생각이 들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건 내가 남자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여성이 느끼는 세계는 이토록 가혹한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결국 비약이 심하잖아, 옛날엔 어땠을지 몰라도. 1975년에 쓰여진 이야기니까 결국 30년이나 지났잖아. 그간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고. 정도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식의 소통 불가가 결국 비극인 것일까.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무척 짧은 생각이건만) 가장 이상적인 페미니즘 소설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그 소설이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핍박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나는 그 예로 들고 싶지 않다. 실제로 이렇게 현실에 대해 불평을(무척 논리적이라 해도) 중얼거리는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초콜릿'을 이상적인 페미니즘 소설로 꼽는 내 견해는, 오로지 그 소설이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 쓰고 있다는 것에서 그렇다. 여성만이 완벽히 공감 할 수 있게 임신이나, 여성의 사랑, 그리고 요리 따위를 쓴 '초콜릿'을 보면서 나는 질투했다. 그것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도 아마 그 사실을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놀리듯, 너희 남자들은 이런 감정을 평생 가도 못 느낄걸, 이라는 식으로 써댄다. 어른은 아이를 모르고 대학생은 재수생을 모르고 누나는 동생을 모르고 부모는 자식을 모르고 여자는 남자를 모른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은 그것을 얼마나 가질 수 없는 가에 대해 비례한다. 남자는 가질 수 없는 여자의 것을 얼마나 잘 쓰는가가 페미니즘 소설이 갖는 의의라고 (적어도)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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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하성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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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도 못하겠다.

 

자문 자답이랄까. 지난번에 올렸던 하성란 왜 안팔릴까의 대답을 찾았다. 하성란은 점점 자신의 세계로 떠난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사람의 삶에선 얻지 못하는 경험을 책이라는 매체로 간접체험한다,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읽을 수록 맛이 나서 읽는다,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 읽는다, 나와 책의 공통 분모를 찾기 위해 공감 위해 읽는다. 수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최우선은 재미가 아닐까. 오늘도 수업시간에 아동 옆에 앉아서 아동이 읽는 퍼레이드 같이 보다가 수업 안 들은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 그렇다. 그럼, 재미를 위한 요소는 무엇일까. 다른 것은 다 제치고 무엇보다 읽기 쉬운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재밌는 책을 읽을 때, 앞부분이 너무 궁금해 그것을 다 읽느라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읽기 쉬운 책이 아니라면 잠이 들고 말 것이다.

딱 잘라, 하성란의 책은 읽기 힘들다. 분명 재미는 있지만 읽기 힘들다. 이야기를 시간 순서로 구성해 놓고 그것이 1-2-3-4-5의 순서로 진행된다면 하성란의 소설은 항상 3이나 4쯤에서 시작된다. 단 한 문장이라도 놓친다면 모든 순서가 헷깔려 소설의 이야기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장편의 경우엔 분명 재미도 붙고 이야기가 아귀가 맞아지는 걸 분명히 느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데, 단편의 경우엔 더욱 힘들다. 함축된 상징과 비유따위가 많은 단편이라 그렇다. 내 경우엔 정말 문장 하나를 놓쳐 앞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단편이란 게 대부분 그렇지만 이 작가는 특히 심하다. 소설의 소재 또한 일상적이긴 하지만, 일상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치약은 이를 닦는 데 쓰이지만 군대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하성란에게 있어서 소재는 군대에서의 치약과 같다. 문체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영화에서 카메라가 서서히 움직이듯 사물을 묘사한다. 자신이 묘사하고 싶은 물건이 컴퓨터라면 컴퓨터 밑에 있던 책상의 옆에 있던 의자의 뒤에 있던 침대에서부터 묘사가 시작된다.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문체를 읽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은 컴퓨터로 향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하성란이라는 하나의 유파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발전해 그녀는 자신의 세계로 떠났다. 나같은 소설을 좋아한다고 설쳐대는 사이비나 그녀의 세계를 겨우겨우 훔쳐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은 잘 안팔린다.

사실 읽는데 무척 힘들었다. 하성란만큼은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며 조금은 다르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번이나 더 읽어야 이번 작품집을 읽었다고 생각하게 될지 막막하다.

 

뱀발.

스티븐 킹이 강조했던 플롯에 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나에게 너무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이후로 읽은 책에 대해서는 전부 플롯이라는 것을 생각했는데, 오쿠다 히데오의 책과 하성란의 작품에서 특히 느꼈다. 전자는 플롯을 아주 교과서적으로 활용한 책이라는 점에서, 하성란의 작품은 플롯보다는 '상황'을 활용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플롯을 쓰면 이야기의 안정성을 얻게 된다.(영화에서 말하는 공식에 맞춘 영화 또한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재미를 보장해 준다는 이야기인데, 그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느낄 수는 없다. 반면 상활을 활용한 소설은 재미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훨씬 가변적이다.

소설가를 스토리텔러로 봤을 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없는 플롯은 결국 쓰레기다.

하지만 플롯에 맞춰 쓴 소설이 꼭 쓰레기일 수는 없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플롯을 사용하고 다른 것에서 차별화를 둔다면 그 작품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작품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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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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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의 후속작.

마찬가지로 같은 플롯으로 구성. 울궈먹기.

 

무엇보다, 내가 책이 읽기 싫어서 이렇게 읽기 편한 책을 골랐다는 것에서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한심한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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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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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2회?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아마도...). 일본 내에서는 인지도가 상당하다고 번역가 김난주씨가 후기에 써놓았더라.

 

거두 절미하고 말하면 정말로 재밌고, 엄청나게 좋은 책이다. 첫 부분부터 작가의 필력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정말 좋은 책이라는 것을 알아갔다.

주인공은 열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는 미혼모다. 그녀의 어머니도 미혼모였기 때문에 그녀는 어렸을때부터 집안일을 해야했고, 그것을 살려 생계 수단으로 파출부를 택했다. 그녀의 다음 출근 장소는 한 수학자의 집이었다. 그 수학자를 주인공은 박사라고 부르는데, 박사는 1975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이 80분만 지속되는 희귀한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대충 이런 식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수학과 야구와 박사의 희귀병을 아주 잘 섞은 훌륭한 소설이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생각났는데, '아내가'의 경우에도 축구와 소설의 이야기를 적절히 잘 섞어 괜찮은 소설을 썼었는데, 이 소설은 더욱 잘 썼다. 지루할 것 같은 수학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고, 수식을 하나의 은유 혹은 상징으로 사용해 주 네러티브에 빠질 수 없는 요소로 만들었다. 결국 문제는 휴머니즘인 것인가.

정말로 무척이나 좋은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감상문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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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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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카스테라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 (내 생각으론)그리고 가장 잘 쓴 소설.(가장 마음에 드니 가장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묘하게 환상적인 이야기와 씁쓸하면서도 가슴 따뜻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언덕이라곤 해도 이렇게 아스팔트가 잘 놓여진 길인데 왜 인간들이 안 오는 거지?

(중략)

불쾌지수가 높은 날도 불쾌지수가 낮은 날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여름이었다.

 

나는 늘 불쾌할 정도로 외로웠다.

-카스테라,박민규

 

2.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작가가 인터뷰 등에서 항상 말하던 시스템에 관한 소설.

역시 세상은 이런 식이지.

 

3.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작가는 분명 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새로운 이야기만 쓰려고 해도 결국은 각각의 소설에선 공통점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집에선 드문드문 '삼미 슈퍼스타즈'의 인격이 뭍어나는데 이 소설이 바로 그 하나.

 

원래 좀 노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나는 조용한 소년이 되어버렸다.

(중략)

그것은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아니었으며, 누구를 원망할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박민규

 

4.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5.아, 하세요 펠리컨

어쨌거나 박민규의 소설이 가볍다고 진지하지 못하다고 까대도,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의미 있다.

 

6.야쿠르트 아줌마

박민규식 '개구라'

 

7.코리언 스텐더즈

이 소설집에서 역시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 외계인의 공격을 받는 공통체라. 역시 현실을 직시하며, 주인공은 인간적으로 나약하다. 무척 마음에 든다.

그 공동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나는 지금은 사라진 kbs1의 제 3지대 라는 프로그램에서 봤기 때문에 더욱 그의 소설엔 리얼리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대왕오징어의 기습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b와는 대왕오징어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주인공이었지만 대왕오징어는 주인공도, b도 잊지 않고 있었다.

 

어쩌지? 저공비행으론 자칫 요격될 가능성도 있어. 너도 알잖아?

-대왕오징어의 기습,박민규

 

9.헤드락

확실히 아무리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학자라도, 가장 예술적인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도, 그에게 화가 난 최홍만과 밀실에 가두어두면 무릎꿇고 사죄할 수밖에 없다. 깊은 생각과 많은 지식은 이토록 의미없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이 작가는.

 

잘못했습니다.

라는 사실을 부디 호건이 알아주길 바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잘못했습니다 가 계속해서, 게다가 진심으로 - 터져나왔다.

-헤드락,박민규

다시 봐도 슬프고, 처참하다. 화가 난다.

 

10.갑을고시원 체류기

마찬가지로 동시대에 대한 정면 응시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인격.

나도 고등학교 때 한 달 정도 고시원에서 살아봤다. 생각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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