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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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비틀거렸으나 원만하게 이어가던 리듬을 뭉개버렸다. 스스로의 발을 밟아 넘어져 버렸다. 문자가 없던 과거에 최초로 시작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 이외의 행동-곧, 예술이라 불리는 것은 아마 춤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춤에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이지 싶다. b boy들을 보면 아무리 에어트랙 30바퀴 도는 파워무브라고 해도 심판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스타일 무버들의 손을 들어준다. 춤의 본질, 그것은 리듬인 것이다.

그리고 생계를 위한 본능적인 행위 이외의 것에는 모두 리듬이 있다. 춤에서 모든 것-문학음악영화만화사진그리고들-이 출발했기 때문에 그것은 살갓 속, 핏줄 깊은 곳에 박혀있는 것이기에 당연하다. 나는 독서에 대해 몇 가지의 리듬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작가의 책을 연속으로 세 권을 읽는다는 것은 리듬을 파괴하는 행동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음에도 행동을 해버렸다. 두 권까지는 여러 정황상 괜찮았다. 사실 두 권도 좀 위험하지만(말 안해도 알겠지만 '한 권'이라는 건 하나의 시리즈라고도 할 수 있다. 앰버 연대기 5권을 연속으로 읽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당시 주위의 여러 요소들이 적절하다면 괜찮다. 하지만 3권 이상은 역시 주위 요소에 상관없이 리듬을 해치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래서 책 읽는 속도가 느렸고 책도 재미 없었고 즐겁지도 않았다.

이 책은 윤대녕의 여행산문집1이다. 아래의 책의 전편격인 것이다. 그러나 청출어람. 뒤쪽이 여러모로 낫다. 난 김훈이라는 작가가 쓴 글은 아무리 잡문이라도 대개 좋아하는 편인데, 자전거여행이라는 산문과 그의 독후감상문만은 못 읽겠다. 후자의 경우는 읽지 않은 시와 책에 대한 말이기 때문에 어떠한 공감도 못하는 것이지만(따라서 읽은 책이나 시라면 보통 즐겁게 읽곤 한다.), 전자의 경우는 그냥 이유 없이 못 읽겠더라. 원래 태생이 천박해서 그런지 난 묘사가 많은 글은 대체로 못 읽는다. 그리고 이 책이 그렇더라. 도무지 읽어도 머리에 제대로 들어와 박히지 않는다. 이따금씩 기억나는 것들은 그가 여행을 한 전경을 묘사한 글이 아니라, 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 하는 것 정도였다. 게다가 난 이 책을 샀다. 지금까지 읽은 윤대녕의 몇 안되는 책들 중 가장 좋지 않은 책을. 이건 징크스인가보다.

윤대녕은 이제 조금 시간을 두고 읽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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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
윤대녕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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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거르고 청소를 하고 수영장에 가서 그랬을까, 나도 어쩐지 하루키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다 수영장 물을 절반정도 마셨기 때문에 그닥 밥 생각이 나지 않아 그대로 도서관에 갔다. 이런 하루라면 부웅 뜬 기분의 산문집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져갔던 책을 읽지 않고 이런 날에 어울리는 책을 찾았다. 이 책 저 책 조금씩 읽어보기도 하며 어렵사리 책을 찾고 있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미란을 읽고 빌려둔 다른 사람의 소설집을 한 권 읽고 다시 윤대녕의 사놓은 책을 읽으려 했었다. 한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연속해서 읽는다면 쉽게 그 작가에 지쳐버릴 여지가 많다는 것을 나는 그간의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그러나 어쩌랴. 아침을 거르고 수영장에 갔다왔는데! 짧게 고민하고 윤대녕의 산문집을 굳게 집어들었다.

작품은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적인 이야기 열 두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은 무난한 자신의 실제 이야기(라고 생각되는)로 시작해 점점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져 간다. 즉, 일부는 사실 같지만 전부는 사실같지 않다. (다만 마지막 이야기만큼은 작가 자신의 누나에게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아 사실같이 느껴졌다.) '미란'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작가는 두 명의 미란으로 은유되어지는 불특정 다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말을 했는데, 이 책은 그런 열 두명의 미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태리에서 산 우산에서, 하이네켄 맥주 마니아였던 대학 동기, 고대 왕국의 여왕 이름을 가진 여자까지.

열 두 이야기 모두 소위 말하는 동화 식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동경하는 15세 소녀의 마음으로 읽는다면 이 작가는 머리가 이상한 게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정은 낭만적이지만, 결과는 현실적이다. 그게 윤대녕의 시각인데, 건조하다. 12월의 온풍기만큼. 그러나 그래서 따뜻하지. 입술은 트지만 립글로즈를 바르면 돼. (미안. 또 정신이 나갔었다. 여기서는 가능하면 이성적으로 말하고 싶다. 독서를 한다는 건 이성의 행위라고 생각하고, 음악을 듣는다는 건 감성의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건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음은 물론이고 그냥 나의 하나의 믿음에 불과하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와서. 결국 이 책은 말 그대로 산문인 것이다. 운문이 아닌 산문. 소설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 좋은. 그런. 가을에 읽기 좋지. 아무래도. 쓸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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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
윤대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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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이성이 된 상상을 하는데, 그때는 또한 나의 취향으로 좋아할 법한 남성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미 남성으로 21년을 살다보니 남자놈들은 지긋지긋한데다가 연애감정 같은 게 생길리 없다.(쓰고 보니 엄청 징그러운 이야기다) 하여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남자가 봐도 멋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멋진 사람은 많지만 연인으로서 괜찮다/아니다를 생각하면 상당한 취사 선택을 해야 한다. 일테면 커트 코베인은 않되지만 노엘 겔러거라면 괜찮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남성은 윤대녕(혹은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이다. 여성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최소한의 것을 항상 지키면서 사는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은 정말로 멋진 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나는 윤대녕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비록 킹 크림슨을 들으며 쓸쓸하게 담배를 펴야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뻔뻔스럽게 처음 만난 여자에게

"방문을 열어두고 바다를 보며 얼음에 재운 콜라를 마시고 싶군요"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을 연습해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훌륭한 윤대녕적인 인간이 된다면 좋아하는 여자에게 거절당하는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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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여자
정도상 지음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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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더 재밌었어도 그저께 읽었겠지만, 직접적으로 형편없고, 간접적으로 읽기 싫고, 돌려 말하면 재미 없고, 은유적으로 말하면 춤 잘추고 노래 안 하는 가수같고, 우회적으로 말하면 짜증난다.

씹자면 3박 4일 합숙해서 밥 먹고(3분 카레) 레크리에이션 하고, 캠프파이어 하면서 씹을 수 있을 정도로 할 말이 많은데, 말해 뭐하나. 그러나 사람 좋은 작가가 형편 없는 작품을 쓸 수는 있다. 그리고 형편 없는 인간은 좋은 작품 쓸 수 없다. 좋은 작품을 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위의 세 문장은 내 믿음이다.

평소라면 뭐 이딴 소설이, 라며 넘겼겠지만 그래도 얼굴 본다는데 욕만 하기 뭐해서 나름의 변명을 해봤지만, 형편 없는 소설. 3쇄를 찍을 정도로 누가 샀을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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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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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할 때 도서관에서 볼까 했으나 그냥 안 봤다. 물론 게으름 때문에. 왕따인 두 중학생이 세계를 건 탁구 대결을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또 그닥 확실한 줄거리 소개는 아니다. 결국 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세계의 시스템에 대한 뒷담화, 소외(소설 내에서는 배제라고 썼지)되는 주인공을 내세워 이놈의 세상이 대체 왜 이 꼬라지가 됐고 인류는 어떻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듯 말듯한 이야기를 한다. 실은, 그닥 재밌게 보지 않았다. 근데 재밌게 봤다.

쓴 소리 좀 하자.

벌써 4권째의 책이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박민규의 문체는 새롭지 못하다. 오히려 슬슬 지겨워진다.(아직도 좋긴 하지만서도) 작품도 점점 소설의 범주를 벋어나는 듯하다. 카스테라까지만 해도 그럭 저럭 형태는 남아있던 네러티브가 사라져간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느낌만으론 '지구영웅전설'과 '카스테라'의 그닥 주목 받지 못했던 단편들과 닮아있다. 오히려 '삼미 슈퍼스타즈'가 이단이었다는 이야기일까. 박민규가 뜨면서 '삼미'와 '카스테라'만 인구에 회자되고 '지구영웅전설'은 마치 없는 작품인 양 대했던 것 처럼 이번 작품도 나날이 베스트 셀러 순위를 높여만 가지만, 글쎄. 그는 이제 슬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대중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듯하다. 부분 부분 무척이나 좋고도 좋은(주로 주인공이 맞거나, 착취당하고, 빼앗기고, 맞고, 괴롭힘 당하고, 다시 맞고, 또 맞고, 때론 맞고, 이따금씩 맞고, 아무튼 맞는 부분 말이다.)서술이 있었지만 말 대로 부분 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결국은 전작에서도 그 전작에서도 하던 이야기를 다시금 재탕 반복하고 있다는 기분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그 이야기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겐 너무도 어럽다. 어려운 소설이다.

여하튼 현재 가장 주목 받는 작가 중 하나이니, 많은 분들이 신작을 기다렸을 것이고 나보다 나은 안목의 독자들이 더욱 좋은 감상문을 써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것보다 더욱 좋은 것은 각자가 이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겠지.

정말로 뭐라 말하기 힘들다. 고전을 읽었을 때의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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