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4 퍼레이드-요시다 슈이치

퍼레이드 ㅣ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얼마 전에 아동에게 추천해줬는데, 너무 재밌게 읽었다고 하길래 나도 다시 보고 싶어서 샀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소설 뭐라고 물어 보면 이 소설도 집어 넣겠다. 동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삶을 너무도 절절하고도 깊이있게 그려낸데다, 단순히 그런 주제를 넘어서 소설로서의 가치, 즉 구조나 소재, 네러티브, 신선함 등등등 모든 부분에서 a+를 주고 싶을 정도다. 오히려 왜 이 상복많은 작가는 작품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이 작품으로 상을 타지 못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다섯 명의 주인공이 돌아가면서 퍼레이드를 하듯 서술하는 이 소설은 첫 요스케의 이야기를 읽다가 요스케의 파트가 끝나고 고토미의 파트가 시작되면, 아쉽다. 조금 더 요스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곧 고토미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다섯 주인공 모두의 이야기를 재밌고도 감명깊게 읽을 수 있다. 첫 두 주인공 요스케와 고토미는 현대 일본 소설의 트렌드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동경만경을 읽으면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수준 높은 사랑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미라이와 나오키의 파트에서는 인생에 대해 혹은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동거라는 은유로 현대인의 삶 자체에 대해 고찰한다. 사토루의 이야기도 나름의 깊이가 있지만 미라이와 나오키를 이어주는 일종의 가교적 파트다. 혹은 네러티브의 긴박감, 완성도를 위해 넣어 준 파트라고도 볼 수 있다.

솔직히 위의 말은 다 쓸데없고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스토리의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고 소재의 활용이 너무 뛰어나고 주제의 깊이도 너무 뛰어나다.

아, 한 마디만 더.

읽어라.

2006.10.22 마지막 기회-더글러스 애덤스, 마크 카워다인

마지막 기회 - 더글러스 애덤스의 멸종 위기 생물 탐사
더글라스 아담스 외 지음, 최용준 옮김 / 해나무 / 2002년 9월

원제는 'last chance to see' '보기 위한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히치하이커 시리즈로 유명한 더글러스 애덤스가 우연한 기회에 멸종위기에 처한 마다가스카르 손가락 원숭이를 보게 되는데, 작가는 그것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러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또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낀 바, 마다가스카르 손가락원숭이를 본 3년 뒤 여러 멸종위기의 동물들을 찾아다닌 것을 기록한 이야기다.

시작은 그러한식의 명종위기 동물 탐사기(약간 재치있는) 정도였지만, (작가 특유의 기질을 버리지 못했는지)점점 '약간 재치있는'과 동물 탐사 이전의 과정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멸종 위기의 동물(이 표현을 앞으로 얼마나 더 써야할지)에 대한 생각이 담긴 여행기 정도로 바뀌어간다. 첫 마다가스카르 손가락 원숭이 그리고 뒤에 흰코뿔소, 코모도 왕도마뱀 등등등 까지는 동물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감상과 인류에 무지 혹은 어리석음에 대한 한탄등이 적절히 뒤섞여 나왔지만 바이지 돌고래와 로드리게스 과일먹이 박쥐의 파트에 가서는 도무지 동물에 대한 감상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중국에서 콘돔을 사는 이야기에 대부분의 서술을 할애한 이 특이한 멸종위기 동물 탐사기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데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히치하이커 특유의 농담 이면에 담긴 진지한 성찰을 이 책 또한 그대로 취하고 있는 것이다.

2006.10.20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5-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전5권 세트 ㅣ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누군가는 술을 먹고, 누군가는 집에 가고, 누군가는 잠을 자고, 누군가는 피로 이어진 관계에 절망하고, 누군가는 사랑에 빠져있을 우주 구석 태양계의 세번째 행성 지구에서 누군가는 샤워를 마치고 그 날 읽은 책의 감상문을 두드리고 있겠지. 어떠한 한 선택에서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간절히 바라는 것일수록 이뤄지지 않는 법이고, 모든 것을 버렸을때야 비로소 평온이 찾아오지 것이지. 삶은 영화나 드라마는 커녕 시트콤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후로, 스스로의 삶을 대단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플롯을 짜고, 그를 위해 개연성과 필연성을 억지로 삽입시켜 보지만, 인위적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별 거 아니지. 그리고 이 책은 그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히 피식 웃고 넘어가기엔 너무 거대한 것을 농담처럼 이야기 하는 이 책의 장점은 그것이다. 날카로운 스트레이트가 아닌 묵직한 훅.

2006.10.14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4-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4 ㅣ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젊은 자포드 안전히 처리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아깝다 아깝다 아깝다를 연발하면서 읽는 책이 있는데, 그건 바로 문장이 너무 훌륭한 책. 다들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장면이 흘러가는 게 너무 아쉬운 경험을 한 적이 많다. 너무 아름답고 멋지고 좋고, 좋아서 그랬다. 이 책의 문장을 읽은 때 바로 그런 기분이 든다. 읽고 있지만 읽는 게 아쉽다. 그리고 척 보면 대충 쓴 것 같지만 모든 이야기의 아귀가 훌륭히 들어맞는다. 그리고 이것 이외에도 2314가지 정도의 좋은 점이 있는 책.

2006.10.11 귀뚜라미가 온다-백가흠

귀뚜라미가 온다
백가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7월

거듭 의문을 가지고 여기도 몇 번이나 쓰긴 했지만 세상에 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특히나 이런 소설을 읽을 때에는 그 의문이 더 커진다. 확실히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그것도 가능한 특이하고 기괴하게 비틀어진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는 이러 소설을 읽을 때 말이다. 대체 주변에 자신의 아내가 다방 레지여서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관계를 가졌고,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 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부인을 전부 겁탈하고 도망친 후 명태잡이 원양어선을 타고 우르과이로 도망쳐 양치기가 된다는 사람이 어디있단 말인가. 물론 이야기는 인상깊고 재미있다. 소위 말하는 '문학적'가치는 있을지언정 이런 소설을 어따 써먹겠는가. 사실대로 말하면 나도 근래 읽은 소설집 중 가장 재미있는 편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단순한 오락인 것일까. 현실을 떠난 단순한 오락. 그렇다면 다른 모든 오락들과 마찬가지로 문학도 싸구려 취급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 않다.

대체 이런 너무도 '문학적인'문학이 갖는 의의는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