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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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에 대한 이야기. 이 매력적인 남미 문학의 원제는 'Como agua para chocolate'.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나 상황을 의미한다. 다만 먼저 한국에 소개되었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제목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었기에 번역자는 그를 따랐다 한다. 하지만 '달콤쌉싸름한'은 잘못된 표현. 쌉싸름한(하다)은 잘못된 표현으로 쌉싸래한(하다)이 맞는 표현이다. 아마 떨떠름하다, 따위의 표현들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달콤쌉싸래,도 틀린 표현인데, 형용사로서 달콤쌉싸래라는 단어는 없고, '달콤하다'와 '쌉싸래하다'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곧 옳은 표현은 '달콤하고 쌉싸래한'이라던가 '달콤, 쌉싸래한'정도이다.

서술자의 이모 할머니 '티타'에 대한 회상이라 하기도 뭐한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곧,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가부장(가모母장이라고 해야할까)적인 제도 덕에 막내딸로서 결혼하지 못하고 어머니만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악습 때문에 주인공 '티타'는 사랑하는 남자인 '페드로'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기 보다는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페드로의 청혼은 무효가 된다. 페드로가 생각했던 사랑은 티타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티타의 맏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함으로써 그녀와 가능한 가까이 있는 것이다. 둘 모두 서로에 대한 사랑을 알고 있음으로 페드로와 티타가 아닌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은 진행된다.

이것은 곧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페미니즘적인 소설이다. 전에 여기에도 두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페미니즘 소설은 바로 이것이었다. 임신과 출산, 요리, 여성만이 할 수 있어 보이는 사랑 따위에 대해 너무도 아름답고 유려하게 묘사, 서술하면서 남성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러움을 사게 만든다. 또한 구성에서 봤을 때도 단지 참으며 견뎌야 했던 '티타'와는 달리 둘째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자유를 찾아 집에서 도망치고,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두 번째 아이인 '에스페란사' 또한 막내딸의 의무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게 된다.(물론 티타의 큰 도움이 있었지만) 이것은 곧 여성의 해방이라는 아주 구태의연한 메시지였음에 분명하다.

또한 단순한 사랑, 페미니즘 이야기라고 보기엔 너무도 소설적 재미가 크다. 남미 특유의 환상적인 과장인지, 단순히 작가의 특징인지, 작품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드문 드문 섞인 과장의 서술은 너무도 재밌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티타가 짠 담요가 3 헥타르가 넘었다던가, 흘린 눈물이 계단을 흘러 그것에 놀란 존이 올라왔다던가, 티타와 페드로가 사랑을 나눌 때 빛이 발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티타는 장미꽃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래서 부엌에 들어왔을 때에는 원래 분홍색이었던 장미꽃이 티타의 손과 가슴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55p

 

마치 영화 '사랑니'에서 김정은이 이태성과 입을 맞추는 장면에서 공중에 뜬다던가, '괴물'에서 괴물을 좇아 온 가족이 매점에서 라면을 먹는데 고아성이 갑작스레 등장해서 그들이 주는 음식을 받아 먹는 따위의 장면을 생각케 하는 아주 마음에 드는 서술이었다.

또한 단순히 일어나는 사건을 대책없이 받아 적은 듯 하지만 끝까지 읽는다면 이 사건들이 얼마나 짜임새있게 진행되는지는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모두는 알아챌 것이다. 결국 너무도 훌륭한 소설이어서 단지 읽으라고 밖에 말하고 싶지 않다.

 

사족.작가와 티타와 나와의 생일이 같다는 점에서 나는 또 한 번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사족2.주인공 티타와 삼각 관계를 이루는 남자는 마찬가지로 티타가 완벽에 가까운(혹은 완벽한) 사랑을 느끼는 주인공인 페드로와, 티타에게 반해서 티타가 받은 상처들을 치유해 주고 싶어하는 존 두 명인데, 나는 아무래도 존에게서 감정을 이입시킬 수 밖에 없었다. 티타는 너무도 강한 인물인 페드로에게서는 절대적인 사랑을 느끼는 반면, 부드럽고 따스한 존에게는 사랑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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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까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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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우스운 게, 이따금씩 스스로를 조작한다. 사람은 대체로 25세 이후로는 잘 변하지 않는다, 라는 정도의 문장이 생각났었는데 이게 이 책이라고 생각했고, ㅂㅈㅇ누님이 알려줬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 문장은

 

생각건데, 사랑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열여섯에서 스물하나까지가 아닐까.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였다. 어쨌든 나이에 대한 서술이었지만 내 기억은 전혀 다른 말을 ㅂㅈㅇ누님께서 하셨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그리고 아마 25세 어쩌고는 내가 다른 책을 읽다가 ㅂㅈㅇ누님이 그랬다고 착각한 것이겠지.

그리고 푸른 새벽 라이브 음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내가 ㅈㅎㄱ와 가서 함께 본 것이라고 기억을 조작했었다. 알고보니 역시 아니었고.

이도 이렇지만 왜 이렇게 병신같이 사는지 모르겠다. 병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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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설공주 2006-12-09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16일~~~~~!!! 내 생일이었는데 ㅎㅂㅎ!!! 재밌군...

김동훈 2006-12-0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때 독후감상문 보니까 당시의 기분이 그렇고 그랬다는 걸 알 수 있네요 ㅎㅎ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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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이 빌려달라고 해서 가져왔지만 아동이 학교를 안 나와서(...) 내가 잠깐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마저 읽는다.

'북고'라는 학교엔 24시간 동안 80km를 걷는 학교 행사가 있는데, 그 행사 중에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하여 이 소설은 쓰여졌다. 전에 말했던 대로 너무 정교하게 이야기가 짜여져 있어서 무척 읽기에 재미있다. 그런 네러티브도 좋지만 인간 관계에 대한 성찰이랄까 하는 것도 너무 정곡을 찌르는 서술이 가득해서 내 삶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쓸 말이 무척 많았던 듯 싶었지만, 두드리다 보니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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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 연대기 3 - 유니콘의 상징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예문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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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유니콘의 상징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전에 읽은 책이었지만 주 네러티브가 전혀 생각나지 않아서 처음 보는 기분으로 봤다. 워낙에 이야기 자체가 재밌고 캐릭터들의 개성이 뚜렸해서 정말 잘 읽힌다. 이야기로 따지자면 '위기' 부분. 시리즈라서 독립성이 약하긴 하지만 미약한 독립성은 각 권마다 존재한다. 특별히 할 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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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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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하고 뭘 하다 서점에 들어가 이 책을 서서 봤는지에 대해서는 직접 만나서 물어보도록 하고, 아무튼 말했듯 서점에 서서 이 책을 봤다. 100페이지 정도 되는데다가 판형도 작아서 금새 읽었던 듯 하다. 꽁트? 단편 소설? 세 편에 수필 비슷한 것 한 편이 섞인 네 편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앞의 세 편은 '비약에의 강조'. 그러나 모든 비약이 그렇듯, 이 비약 또한 현실에서 특별히 어렵잖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단지 세상의 시스템을 약간 더 확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마지막 한 편도 어느 정도의 비약은 있지만 이야기보다는 수필이라는 점에서 약간은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상당부분 마음에 든 책이었다. 단지 조금 더 진지하게 읽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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