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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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라우라 에스키벨의 영향으로 남미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주 들리는 이름-이사벨 아옌데의 책을 빌려 읽게 되었다. 고3시절 읽었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워낙 힘들게 읽었던 터라 남미문학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었는데, 라우라 에스키벨의 영향으로 완전히 정 반대의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이사벨 아옌데는 한 번 더 좋은 인상을 더해주었다. 이렇게 지금 생각해보면 마르케스의 작품도 당시 내가 조금 독서를 덜 했었기 때문에 읽기 힘들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조금 시간이 난다면 마르케스도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너무 좋았고, 또 너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대체 어디서부터 두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초반 서너페이지를 읽을 때 까지는 420페이지의 이 두터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책 자체의 재미에 빠져 그런 의문따윈 생각치도 않게 되었다. 중남미 문학의 소재는 죄다 가족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과 '백년의 고독'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델 바예라는 일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계속하여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두 작품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한 일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것은 아마 작가가 공통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이리라), 작가의 나라의 역사와 뗄 수 없는 사건 진행 등에서 그렇다. 사실 지금 2권을 한창 읽는 중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서는 다 읽고 나서야 할 말이 더 생기고, 정리될 것 같다. 따라서 일단은 딴소리만 잔뜩 해보자.

작가의 삼촌은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 최초로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회주의 대통령이었단다. 하지만 미국의 남미 공작으로 쿠바는 물론 칠레에서 또한 쿠데타가 일어나 쿠데타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건 비단 남미뿐 아니라 제3세계에 속하는 나라 전부에서 일어난 일인데, 우리나라도 무척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생소하지 않다. 소위 3차대전, 혹은 냉전이라고 불리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은 세계 전체에 영향을 줌으로써 이런 '세계문학'류의 80%이상 속에 그런 이데올로기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혹은 자그마한 소재로 사용된다. 곧,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세계문학'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좀 다른 쪽으로 샜는데 살바도르 아옌데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무심코 넘겼을 만한 문장을 나는 발견했다.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후보가 완전히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려 했을 때인 오십 년 후에나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33페이지

 

최근에 가능한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문학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럴수록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의 무지뿐이다. 특히 제 3세계 문학을 읽을 때 느끼는 현대사에 대한 무지를 너무도 절실히 느낀다. 조금 더 아는 게 많다는 보다 나은 이해를 할 텐데 말이다. 작품에 관해서는 말했다시피 2권을 마저 읽고 두르리겠다.

 

사족. 정말로 오늘은 글이 안 나오는구나. 형편없어. 이렇게 좋은 소설에 형편없는 감상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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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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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ㄹ누나의 추천을 받아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읽었다. 120페이지 조금 넘는 얇은 책이어서 금새 읽을 수 있었다.

소설가의 책 중 소설을 읽지 않고 수필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추천을 받아서 읽었는데 역시 처음 읽는 작가의 책은 그 작가의 전문분야여야 옳다는 생각을 했다. 빌린 책을 읽은 후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이게 옳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은 그 뒤에 쓰여져야 옳다.

 

라고 썼지만 뭐 빡빡하게 굴 필요 없지 않은가. 책은 제목 그대로 문명의 이기에 대한 작가의 감상을 한 페이지 반에서 네페이지까지 짧게 쓴 수필을 묶은 것인데, 수필인만큼 큰 색깔을 느끼지는 못했다. 만약 작가의 소설을 전에 읽어뒀었다면 조금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거 봐, 옳지 않은 일을 하니 결론이 똑같다) 대체로 평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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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법칙
라우라 에스퀴벨 지음, 미겔란쏘 프라도 그림,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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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왜 사서 봤는가.

A : 당연하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 샀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내가 작년에 건진 가장 좋은 책 중 하나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보고 싶어서 샀다.

Q : 그래서 어땠는가.

A : 그냥 그랬다. 팬터지인지 sf인지 모호한 배경에 작가 특유의 마법같은 사건 진행따위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별로였다. 이야기도 잘 이해되지 않았고, 공감도 적다. 내러티브도 심심한 편. 감성적으로도 별로.

Q : 조금 더 자세히 말해달라.

A : 작품은 단순히 글 이상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명 만화가라는 '미겔란쏘 프라도'의 만화가 작중 인물들의 전생을 보여주며, 그에 맞춰 작가가 직접 선곡한 시디 속 음악을 듣게 해준다. 사실 시도나 그 결과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소설 자체가 큰 매력이 없었기 때문에 잔재주로밖에 안 보인다. 그래, 사실을 말하자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때문에 기대 수치가 너무 올라가서 이렇게 재미없게 책을 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작가가 이정도의 작품을 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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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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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엔 고전이라 부를 만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들이 없다. 한글이 보편화 된 것이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크겠지만, 그것 이전에 우리의 오래된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고전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없다. 고전이라 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재미나 감동 혹은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재미나 감동 혹은 가르침 이전에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야 한다. 춘향전 등등의 -전 따위나 구운몽 등등의 교과서 고전 부분에서나 볼 수 있는 고전 소설들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 알고 있는 유명작이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무척 드물다. 앞서 말했듯 같은 한글이라 보기엔 지금과 글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고전에 대한 이미지는 고전=어렵다, 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고전이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내 얉은 지식으론 얼른 대답하기 힘들지만 고전을 대체할만한 작품은 있다고 곧장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서두를 길게 늘인 독후감상문의 대상인 이 작품이 그렇다고 말하겠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두드려 보자면, 초판이 39쇄, 재판이 47쇄, 3판 4판이 각각 25쇄 23쇄로 총 134쇄이며, 2000년에 개정본으로 새로 나온 판본만 83쇄를 찍어 모두 합쳐 217쇄이다. 217쇄는 정말로 굉장한 숫자다. 요즘 잘 나간다는 하성란의 책은 3쇄를 못 넘기고, 김영하는 고작해야 10쇄를 넘기면 잘 팔린 것이고, 가장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그나마 12년만에 60쇄정도를 팔았다. 일단 널리 읽힌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합격이다. 또한 이 작품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우수하다.(교과서에 실려야 우수한 작품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시대상을 너무도 잘 반영했으며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성찰은, 소설에 있어서는 이상적 모델로 삼아도 좋을 정도로 그 구조나 소재, 주제의 활용이 훌륭하다. 고전이란 검증이 된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70년대를 떠올렸을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인 난쏘공은 60년대의 김승옥과 함께 내 자신이 발견한 한국의 고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30년 밖에 되지 않은 작품을 고전이라 말하기 힘들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겠으나, 흔히 세계문학전집이라 불리는 외국의 고전들도 어지간해선 채 50년을 넘지 못했다는, 길어야 100년 조금 넘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난쏘공의 고전으로써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진다. 분명히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보다 보편적인 언어로, 보다 현대와 흡사한 언어로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난쏘공을 읽는 것은 처음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인가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집에 있었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난쏘공만 읽고 싶어져서 봤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마지막 구절의 처절함을 잊지 않고 있었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교과서나 참고서나 모의고사에서 의례 발견했고 왠지 그런 작품들은 자연스레 잘 읽지 않게 된다. 반쪽이나 한 쪽 정도로 짧게 인용되곤 하는 구절을 읽을 때 마다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찾아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서 읽게 되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작가 조세희가 1975년부터 1978년 사이에 발표한 연작 12개를 하나로 묶은 책인데, 단편집이라기 보다는 연작 소설이라는 말이, 옴니버스 장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구조를 지닌 책이다. 주인공이 같은 작품도 있고 다른 작품도 있지만, 그 모두는 난장이 혹은 난장이 가족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단연 백미는 표제작인데, 어째서인지 문체가 가장 뛰어나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를 제외하고는 딱히 견줄 작품이 없을 정도로 문장 문장이 압권이다. 특유의 설명이 적은 짧은 문장의 연속된 나열과, 회상과 현재가 줄바꿈없이 이어지는 서술 형태는 조금은 읽기 힘든 면이 없잖아 있지만, 문체 자체의 뛰어남덕에 그것은 오히려 장점으로 보인다. 다만 줄바꿈 하나만으로 독자의 이해를 배는 더할 수 있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내가 겪지 않았지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70년대에 대한 너무도 처절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는 이 작품의 존재 이유이다.(실제로 70년대에 이 소설을 읽은 노동자들은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표제작을 읽었을 때 단지 아버지 난장이의 비극만으로 마무리 되었던 소설의 끝은 끝이 아니었고, 뒤로 이어지는 영수의 이야기는 너무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단지 노동자들만의 시선이 아닌 자본가들의 시선(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이나 제 3자의 시선(칼날, 육교 위에서 등)을 교대로 서술하는 것은 보다 작품의 질을 높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표제작 마지막 영희의 말을 통해 독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서술이 작가가 이 작품을 쓴 진정한 의도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 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래. 죽여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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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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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7월 14일에 산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이우일의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얻었다. 생소한 덴마크 소설이라는 것과 매력적인 제목에 흥미를 느꼈지만, 600페이지를 넘는 두터운 두께 덕에 100페이지만을 읽곤 6개월간 방치해두었다가 드디어 집어 든 것이 지난 주. 마음을 먹고 나머지를 읽는데도 무려 일주일이 넘게 걸린 것이다. 활자도 무척 빽빽해서 1.5배는 더 힘들게 읽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매력적이라는 것에는 (나 또한)이견의 여지가 없다. 차가운 눈과 같은 문체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일관되어 있고, 얼음과 같이 날카로운 문장은 두 단락에 한 번씩은 튀어 나온다. 그리고 이 문체와 문장이 만들어 내는 인물이 스밀라. 뒷표지에 해설을 짤막하게 쓴 소설가 김연주의 말처럼 스밀라는 정말로 인상적인 주인공이다. 과거 강한 여주인공의 태반이 그저 정신적으로만 그랬었다면 스밀라는 자신이 가진 160센치미터와 50킬로그램의 몸무게로 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행동을 한다. 작품 내에서 이따금씩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걷지만 결코 기대지는 않는다. 벌써 한 세번은 작품 내 문장을 인용하고 싶었지만 참는다. 이런 식이라면 절반 이상은 인용문으로 이뤄진 독후감상문이 나올 것 같아서다.

소설의 기본적인 틀은 추리 소설로, 작품이 시작하자마자 죽은, 스밀라의 이웃인 이사야의 죽음의 비밀을 캐는 스밀라의 행적을 따라가는 아주 보편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그건 이 소설이 너무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갖추고 있었기 때문. 단지 따라가기 어렵다는 불편함보다는 이 정도의 전문적 지식의 리얼리티(이를테면, 두번째 장인 '바다'에서의 선원생활)를 보인다는 점에서 감탄을 나게 한다. 그러나 역시 이런 지식인 만큼 아무리 작품 내에서 설명한다 해도 단번에 쉽게 작품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고.

그렇지만, 어느 것보다 소설 본질적인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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