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1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이 책을 빌려 준 선임은 문학 작품을 읽고 나서 그 작품 자체 속에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어쩐지 나와는 다른 방식이어서, 우와 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나도 그렇게 써볼까 했지만 사실 그건 나에게 맞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독서는(이렇게 말하기 쑥쓰럽지만) 내 삶의 일부다. 책을 읽는 동안 사랑을 하고 웃고 울고 춤을 추고 입대를 했다. 그래서 나의 독서 감상문은 이토록 나 자신을 빼놓고 쓸 수 없는 것이노라.

김연수의 책은 처음이었다. 이름은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에 찬 마음을 가지고 읽었다. 그러나 단지 하나의 작품만 읽었으므로 나는 김연수를 읽었다고 말하기보다 이 작품을 읽었다고만 말하기로 한다. 이 책은 일종의 액자소설이다. 주인공의 이야기(주 내러티브)에 수십 개의 이야기(부 내러티브)가 중첩되어 마치 학창시절에 미술 시간에 배운 몬드리안인지 칸딘스키인지 하는 사람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색색의 크고 작은 네모가 네모난 큰 액자의 틀 안에 나열된 그림처럼 개개의 이야기들이(부 내러티브)가 합쳐져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룬다. 그리고 그 개개의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만큼 개별적이지 않고 조화롭다. 하지만 개개의 이야기의 개성이 뚜렸했던만큼 응집력이라는 면에서는 마이너스다.(실제도 나도, 선임도 주 내러티브보다 주인공의 입으로 쏟아지는 부 내러티브에 더 큰 재미를 느꼈다.) 조금만 그 이야기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곧바로 다음 얘기가 쏙아져 나오는 만큼 정신이 없다. 그리고 그런 잽만 난무하는 덕분에 큰 한방이 없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뒤로 갈수록 집중력도 잃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여기서 다른 책들을 읽고 썼듯, 운동권에 대한 철지난 향수라는 점에서 우리 세대에겐 큰 공감이 없다. 용두사미한 소설이었다.

2008.1.18 모모-미하엘 엔데

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드디어' 읽었다. 언젠가 읽겠지 싶은 책이었는데 결국 읽다. 그냥 알던 책에서 '끝없는 이야기'를 읽고, 읽고 싶은 책이 되었는데 삼순이로 갑작스레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리는 꼴을 보니 어째 괜한 펑크 정신에 안 읽다가, 결국 읽다.(쓰고 보니 삼류 로맨스같다. 10년 전의 첫사랑 다시 만난 것 같은)

끝없는 이야기보다 훨씬 동화 같은 책이었다. 나니아 연대기 정도. 그래서 조금은 낮은 연령대에 맞춘 문체와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본 이야기도 좋았다만, 기기가 모모에게 들려주는 한층 더 동화같은 이야기 속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다만 내가 조금만 더 어렸을 때(초~중) 읽었다면 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 자식은 적어도 지금 내 나이까지는 나이별로 읽을 책 리스트를 만들어주리라, 하는 생각을 했다. 추가적으로, 이야기와 줄거리 등을 소개하지 않는 것은 팬터지에서 내러티브를 짊어지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에서다.

2008.1.13 인연-피천득

인연 - 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보석과 같은 책이었다. 모두 다 아는 이런 책을 읽다보면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보통 물리는 수필들은 경험-경험의 특별화-그리고 독자들에게 훈계(좋게 말하면 가르침)이런 식이다. 이건 수필에서는 작자-上 독자-下라는 공식이 전제되어야 하리라. 하지만 피천득 선생의 수필은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수필이라는 말 그대로 그냥 썼을 뿐이다. 그래서 '장미'라는 짧은 수필을 읽는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장미 일곱 송이를 사서 집에 오다보니 아는 사람에게 다 주게 되었다,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정말로 그 한 장(두 쪽), 십여 문장의 글이 공의 경계 두 권보다 내 마음에 더 묵직한 충격을 주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약간 집중력이 떨어져 제대로 읽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2008.1.8 공의 경계下-나스 기노코

공의 경계 - 하
나스 키노코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5년 5월

사실 좀 예전이었다면 '정말 재밌게 보고 어쩌고'뭐 이런 식으로 썼을 거 같은데 나이도 먹었고 취향도 변했고, 라이트 노벨의 소재나 장르적 공식도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그냥 그랬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만 썩 재미가 있었다고 말하기에도 좀 그랬고, 아무튼 이런 종류의 소설은 너무 흔하고 흔해서, 그래서 별로였다. 소설이나 음악을 읽고 듣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찾는 의미도 있는데 이렇게 어디서 읽은 것 같은 건 정말 별로다. 더불어 해설에서 하루키 운운한 것은 명백한 '오버'.

2008.1.4 공의 경계上-가스 기노코

공의 경계 - 상
나스 키노코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5년 5월

이 책이 출간되었을 직후, 재밌어보여서 기억 해뒀는데, 여기와서 다른 중대의 선임이 이 책을 가지고 있길래 빌려봤다. 사실 그럭저럭 재밌게는 봤는데, 코미켓(동인)출신이라 그런지 굉장히 동인스러운 면이 많은 소설이라 좀 많이 유치하고 식상하게 느껴졌다. 캐릭터는 죄다 어디서 좀 본 것 같고 필력은 너무 힘이 잔뜩 들어가 붕 뜬 기분에 너무 멋부린 티가 난다. 내가 본 얼마 안 되는 라이트 노벨 중에도 굳이 분위를 매기자면 좀 아래에 넣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쨌든 아직 하권을 안 봤으니 모든 평가는 차후에 할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