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안 에르보
안느 에르보는 1976년 벨기에 위클리에서 태어났다. 왕립 브뤼셀 미술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전공했고, 1997년에 첫 번째 단행본 <보아 뱀>을 출간했다. 이후부터 에르보는 자국 내에서 수여하는 도서상을 휩쓸었다. <나의 어린 왕자>로 프랑스어 작품상을 받았고, 1999년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로 볼로냐 어린이 그림책 부문 예술상을 수상했다. 에르보는 부드럽고 시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지만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하다. 그녀는 높은 감성으로 그레용과 연필, 수채화 물감과 꼴라주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넘나든다. 또한 문법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연수와 현장 실습도 마다하지 않는다. 에르보는 깨어있는 호기심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책을 창작해 왔다. 지난 이년간 <에두아르와 아르망> 시리즈 세 편을 완성했고, <가벼운 공주> <파타프는 적이 많아요> <엄마는 작아질 거야> 등 다수의 책을 쓰고 그렸다. 국내에는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 <파란 시간을 아세요?>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작은 걱정> 등 총 다섯 권이 번역 출판되어 있다. 에르보는 현재 그림책 작업과 동시에 일러스트레이션 교사로 일하고 있다.
이야기 실을 되찾은 마녀, ANNE HERBAUTS
안 에르보는 아름답고, 감각적이고, 세련된 그림책을 쓰고 그린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해석해 놓는 실력이 놀랍다. 낮과 밤 사이를 '파란 시간' 이라 하고, 정해진 시간을 엄수하는 '꼬박꼬박 아저씨'가 시간을 어기고, '늘그렇듯 씨'가 이름과 달리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은 에르보가 생활 속 틈새에서 발견한 이야기이다. 에르보는 다양한 판형을 적절히 활용하며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탁월하게 그리고 있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부드럽고 따뜻한 선
안느 에르보(1976~)는 브뤼셀 미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전공했고, 글쓰기와 그래픽 디자인 등 출판에 필요한 지식을 배웠다. 비교적 어린 작가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에르보는 넘치는 재능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다양한 그림책을 창작해 왔다. 첫 번째 단행본 (보아 뱀)에 나온 에두아르와 아르망은 이후 시리즈물로 연결되었다. 처음 만든 캐릭터가 계속 등장하는 것에서 그녀가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우수를 담은 듯한, 사색에 잠긴 듯한 키다리 인물과 귀여운 상상력이 가미된 괴물은 한 눈에 에르보를 알아보게 한다. 길고 가느다란 선, 작은 머리, 마르고 긴 팔 다기, 커다란 몸통, 이 모든것이 그녀를 대신한다. 그녀는 해와 달, 낮과 밤, 하늘고 구름 등 주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을 소재로, 부드럽고 따뜻한 곳선을 이용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에르보는<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이나 <엄마는 작아질 거야>처럼 부드러운 선에 몽환적인 색조가 어우러진 작업을 선보였다.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것 또한 그녀스타일이다. 푸르스름하고 불그스레한 색조가 만드는 화풍은 그녀를 확실히 기억하게 만든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
앨리스, 앨리스
에르보는 지난 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그리기도 했다. 창작 그림책 위주로 작업한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선택이었다. "카스테르만 출판사에서 제게 명작 일러스트레이션을 해 보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앨리스!'라고 대답했습니다. 루이스 캐럴 문학을 잘 모르지만 그가 상상한 세계는 무척 매혹적입니다. 저는 영어로 된 원본 텍스트를 해석하는 것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막연히 이해하고 그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있게 들어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저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연결시켜 그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작을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언니와 상의하면서 앨리스가 경험한 것을 저의 세계, 제가 해석한 이미지, 프랑스어의 보석같은 유희로 다시 쓰고 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린 루이스 캐럴이 일상과 옥스퍼드 시절에서 보편적이고 영원한 세계, 부조리하지만 논리적인 세계를 영국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에르보는 자기 문화에 맞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완성시켰다. 이 책에서 그녀는 텍스트를 분석하듯 이미지와 색을 깊이 있게 풀어 놓았다.
철학이 담긴 그림책
에르보는 놀라우리 만치 정확한 관찰력으로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형상화 시켰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에서 그녀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그렸다. 원제는 <텅빈 시간> 불을 켜기에는 너무 밝고 책을 일기에는 너무 어두운 파란 시간 이야기이다. 에르보는 태양 왕(남자)과 밤의 여왕(여자)을 보여주며 시간을 낮과 밤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하루가 정확히 둘로 나쥐지 않는 것에 착안하여 낮도 밤도 아닌 시간을 '파란 시간'이라 불렀다. 해가 뉘엿 뉘엿 지는 이른 오후와 어스름한 새벽은 파란 색과 잘 어울린다. 책 속에서 파란 시간은 정체불명 인물로 말이 없다. 에르보는 이 어중간한 시간을 머리는 빛이 가득하고 몸통은 어둡게 표현했다. 그녀가 지은 이야기에는 종종 전능한 힘을 가진 인물과 나약한 인물이 대비되는데, 부모와 아이를 상징할 때가 많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에서도 막강한 힘을 가진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은 부모로, 이곳저곳에서 내쫓김 당하는 파란 시간은 아이로 그려지고 있다. 시간이라는 소재를 조금 다르게 해석한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똑같은 일을 꼬박꼬박하는 아저씨가 등장한다. 어느 날 아저씨를 빼쭉이를 만나 '꼬박꼬박 하지 않은'하루를 보낸다. <이상한 나무>가 원제인 이 이야기에서 아저씨와 빼쭉이는 커다란 방울, 멈춰버린 회중시계, 먹음직스런 살구, 쓴 사과, 마법 달걀이 달린 이상한 나무를 발견한다. 이를 통해 둘은 음악, 시간, 사랑, 슬픔, 상상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발견하며 새로운 오늘을 경험한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에르보느 밤이라는 시간을 소재로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를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주인공 달님은 온몸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하늘에 별을 그리는 일이 즐거운 달님, 누가 깰까 조심조심 걷는 달님, 힘센 병사처럼 악몽을 쫒는 달님,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하는 달님 등 이야기하기 어려운 개념을 에르보는 섬세하게 그려냈다. 아이가 걱정하는 데서 착안한 <작은 걱정>은 아기 곰 악쉬발드가 느끼는 걱정을 구름으로 표현한 멋진 작품이다. 실제로 아이들 걱정은 어른의 그것과 달리 적당히 넘어갈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 걱정도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에르보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구름을 통해 아이들 걱정을 절묘하게 그렸고, 아름다은 색채로 가득한 감동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남겼다. 더욱 놀라운 것은 <파랑 시간을 아세요?> <작은 걱정>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무형의 시간과 걱정은 에브로에 의해 완벽하게 의인화된다. 관념적인 개념이 사람으로 바뀐것을 독자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정형화하기 어려운 개념이 쉽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
☞ 그림책 작가가 된 계기 ? - 중 고등학교때 수업이 끝나면 미술학원에 갔습니다. 브뤼셀에 있는 오뤼에 셍 피에르 학원이었는데 방과 후에는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후 4년 동안 브뤼셀 미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를 전공했습니다. 우연히 카스테르만 편집자 눈에 띄어 졸업과 동시에 그림책을 낼 수 있었고, 그 때를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 작품 속에 등장하는 키다리 주인공에 대해 ? - 국적도 없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망토를 두른 듯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단순하고 연약하면서 어딘가 부자연스럽습니다. 네 키가 커서 그런지 작품 속 등장인물은 연약하고 길쭉한 채로 이야기 속을 산책하고 합니다.
☞ "시간"이라는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데.. ? - 시간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중 하나입니다. 저와 시간은 이상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시간이 저를 엄청나게 괴롭히기도 하고, 제가 시간에 대해 기준이 없기도 합니다. 가끔은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초연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고, 잡을 수 없는 것을 움켜쥐고, 보이지 않는 것에 깊이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시간은 여기에 알맞은 소재입니다. 오브제인 책 또한 시간의 장소입니다. 독서하는 시간, 한 페이지씩 넘어가는 과정, 이미지 속 여행 등을 생각해 보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리듬을 거치며 만들어지는데 그 역시 시간의 일부입니다.
☞ 글 그림 작업에 순서가 있다면 ? - 글과 그림 모두 중요합니다. 저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구상합니다. 떠오르는 문장과 색각을 적는 동시에 이미지도 간단하게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점차 이미지와 텍스트 윤곽을 잡아갑니다. 아름다운 이미지나 훌륭한 텍스트를 남기는 것보다 그 둘을 어울리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책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고, 저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충돌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기발한 아이디어 -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서 지속적으로 영감을 받습니다. 얘기를 듣거나, 대상을 보았을 경우, 머리속은 벌써 그것을 변형시키기에 바쁩니다. 항상 은유에 대해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거나, 일상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은 그리스를 추천하는 여행 잡지에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하얀 집을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만약 저 집이 파랗다면, 사진 속에서 파란 이미니밖에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느낌과 대상 사이를 보다 철학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이나 <파란 시간을 아세요?>를 보면 선호한느 색이 분명히 보이는데..? - 저는 뜨거운 빨간색과 먼 파란색을 아주 좋아합니다. 대개는 네 가지 색으로 출발해서 혼합된 색을 만들어 냅니다. 연한 색을 쓰든 짙은 색을 쓰든, 항상 무언가 이야기하려 합니다. 기법과 타이포는 이야기의 일부이며 독립된 요소입니다. <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은 상당히 뜨겁습니다. 저는 건조한 열기를 이미지에, 재잘거리는 새들을 텍스트에 담고 싶었습니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 에서는 하늘, 색감, 약한 윤곽선, 투명함 등을 애용해 낮과 밤을 해석했습니다. 색은 하늘을 막아서는 안 되고, 종이와 그 위에 떨어지는 빛 사이에 놓여야 합니다.
☞ 작업한 책 중에서 애착이 가는 작품은 ? - 모든 책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없습니다. 종종 제 그림과 마주하면 비평적 입장이 되곤 하는데, 그림 놀이와 책의 관계를 좀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습니다. 모든 책은 세계의 일부, 겨우 윤곽이 잡힌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시간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단어와 이미지를 더 찾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란 시간을 아세요?>를 좋아합니다. 쓰고 그릴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은 저를 진정시켜 줍니다. 저는 평소 생활할 때나, 새로운 책을 구상할 때, 상당히 열을 내는 편입니다.
☞ 좋아하는 예술가 ? - 그림책 작가이며 화가인 크베타 파코브스카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고 그녀 그림에 매료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미지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볼프 에얼브루흐도 좋아합니다. 영화감독 펠레시안, 장 뤽 고다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많은 작품으로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타티오 잉그마르 베르히만 영화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는 풍부하고 창의적인 아시아 현대 영화도 상당히 좋아합니다.
☞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 계속해서 이야기 세계를 탐사할 것입니다. 현재 어린이 책과 만화를 준비 중이고, 앞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이나 데생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 분야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독자에게 -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받으면 항상 감동 받습니다. 인쇄상태도 좋습니다. 한국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직선으로 네모 반듯한 타이포가 제게 새로운 것을 말해 줍니다. (저는 각진 것을 좋아합니다.!) 제 이야기가 세계 반대편 독자에게 읽혀지고 제 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자문해 볼 때도 있습니다. 보편성을 띠도록 애쓰는 것도 그러한 까닭입니다. 한국 독자가 가진 어떤 부분, 추억, 생각, 고통 등을 어루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따금 한국 독자가 벨기에 독자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 작품을 보는 한국 독자는 이야기 속을 함께 여행하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입니다.
- 산그림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