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들이 사기꾼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생각에 충실한 사람들은 대개 떠돌아다닌다. 생각이라는 비물질적인 것에 충실한 유형과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터전에 충실한 유형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나 터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한곳에 머물러야 하는 반면, 생각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가가기 위해 떠난다고 할까. 사색가가 떠돌아다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생계다. 생각이란 모든 사람들이 신뢰하고 좋아할 수 있는 그 무엇, 이를테면 농작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을 재배하는 사색가는 진리를 찾아다녀야 할 뿐 아니라 먹고살 길을 찾아다녀야 한다."

(35/648)



어제 일기장에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정착,이라는 것에 대해 끄적거렸다. 나는 한번도 어딘가에 정착한 적이 없었고 고향이라 할 만한 곳도 없다고. 정착하는 것을 인생 최대의 과제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볼 때마다 정착이 꼭 필요한 것인가 의문을 가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매우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넋두리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 그러니 여기까지. 좀더 생각이 정리되면 글로 풀어보겠다. 리베카 솔닛의 위 구절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내가 원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게 된 것은 아니라 할 지라도, 역시 내가 원해서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도 않을 것같다는 생각에 나는 정말 '정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가, 쭈글쭈글 되어버리기가 일쑤였거든. 생각에 충실한 건 음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가능성 있을 것도 같고. 생계. 하 이게 문제네. '사람이나 터전에 충실'한 사람들도 있겠구나, 그런 사람들이 정착해서 사는 거구나, 갈피 하나 머릿속에 더 끼워넣고.



​"루소의 글이 철학적 보행을 다루는 문헌의 효시라면, 그것은 루소가 자기의 사색이 어떤 정황 속에 행해지는지를 상세히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저술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루소가 과격파였다면, 루소의 가장 과격한 행동은 (보행, 고독, 자연 등을 기반으로 조성되는) 개인적, 사적 경험의 가치를 재평가한 일이었다. 루소가 다양한 혁명, 이를테면 정치조직의 혁명뿐 아니라 상상의 혁명과 문화의 혁명을 고취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루소에게 혁명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런 사색 경험의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루소가 자신의 지성을 십분 발휘해 가장 강력한 주장을 펼칠 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드높이고 있는 정신 상태와 생활 방식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였다." (48/648)


"루소와 키르케고르에게 보행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지금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보행을 이야기한 곳이 비개인적, 보편적 철학에 속하는 저서가 아니라 개인적, 묘사적, 구체적 작품(루소의 『고백록』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키르케고르의 일기들)이기 때문이다. 보행이 그런 종류의 글에 어울리는 소재인 이유는 보행 그 자체가 보행자의 사유를 개인적, 구체적 경험의 세계에 정박시키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보행의 의미를 논하는 글이 대개 철학이 아니라 시나 소설, 편지, 일기나 여행기, 수필인 것은 그 때문이다." (61/704 - 글자 크기를 키웠더니 페이지 수가 늘어남)



루소와 키르케고르 이야기, 재미있었다. '업적'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그 외에는 다 까는 듯한 어조.ㅎㅎㅎ 철학자들 책은 안 읽고 이렇게 뒷이야기만 듣다 보면 그만 그들의 작품들을 외면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루소는 어이없고 키르케고르는 좀 불쌍하다. 흠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감상일 뿐.





"길을 걷는 몸은 상처 입고 아파하고 부서질 수 있는 본래적 한계로 되돌아가지만, 길을 걷는 일 그 자체는 마치 몸을 연장하는 도구처럼 세계로 열린다. 길은 걷는 일의 확장이고, 걷기 위해 만든 공간들은 걷는 일의 기념비들이며, 길을 걷는 일은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 세계를 생산하는 일이다. 길을 걷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들에 흔적을 남긴다. 거리와 공원과 보도는 길을 걷는 상상, 길을 걷고 싶은 욕망의 흔적들이다. 지팡이와 신발, 지도, 물통, 배낭은 그 욕망의 물질적 산물들이다.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한다는 것, 그것이 보행과 생산적 노동의 공통점이다." (67/704)



'길을 걷는 상상', 좋다. 안 가본 산티아고 순례길도 막 떠오르고. 안 가봤는데 왜 생생함? '지팡이와 신발, 지도, 물통, 배낭' 같은 단어들을 보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배낭 짊어지고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고 싶지는 않다. 여행을 생각하다 보면 나이를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다. 보기에 따라 많기도 적기도 한 나이, 그 숫자 자체보다 여행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 여전히 여행은 설레는 단어로 다가오지만 막상 실제로 여행을 가게 되어 어렵게 숙소를 찾고 교통편을 예약하는 데 골머리를 앓다 보면 그만 에잇 여행 같은 것, 이런 마음이 되어버린다. 이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고. 준비하는 과정 전체가,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 노동이었어도 좋았다고. 이제 힘들다. 그러면서도 여행지의 식당이나 까페, 기타 흔치 않은 장소들을 지도 위에서 헤집고 다닌다. 안 가본 장소가 이미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아직 두 발로 서 보지 않은 그 거리, 아직 들어가보지 않은 그 가게, 풍경, 평면 지도 위의 어슬렁거림과 기대, 실제로 그 거리에 섰을 때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풍경, 납작한 평면이 입체가 되는 순간. 기대와 욕망이 입체 속에서 사그라들기도 하고 채워지기도 하는 순간. 이 맛에 여행하기도 하지.

밤에 읽은 소설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이후로 나는 종종 혼자 일본에 갔다. 그날은 오사카의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역에서 십 분 거리라는 호텔은 아무리 걸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내가 가지고 있던 지도를 펼쳐 호텔을 가리켰다. 그 행위만으로도 그 사람은 내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지도 밖 허공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우리가 서 있는 길을 한번 가리키고 다시 지도를 카리키더니 길이 그려지지 않은 지도의 테두리 부분, 여백을 짚었다. 그리고 조금 더 손가락을 옮겨 다시 또 허공을 짚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지도의 바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왔던 길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쭉 가라는 뜻 같았다. 그렇게 하면 다시 지도 위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도로만 살펴보던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여전히 지도 속 일원들 같고 나도 아직 지도 속을 걷는 듯했다. 지도 속 사람들과 부딪치고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이동하고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사면서 서서히 나는 그 장소와 같은 축척을 갖게 되었다. 익숙해진 다음에야 어떤 실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낯선 골목을 걸으며 서서히 현실과 같은 축척을 갖게 되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길을 잃었지만 완전하게 안전하다고 느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나 안도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한참을 걷던 중에 너무 피로해졌기 때문에 지나는 버스에 그냥 올라타버렸다. 헤맸던 탓에 자리에 앉아 잠깐 졸았다."

(「작정기」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지도와, 거기 그려진 길과는 전혀 다른 것같은 현실 공간, 그 둘이 끝까지 불화(?)하는 경험을 자주 하는 나. 내 사고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공간을 떠올릴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그 기준은 어떤 기준에서 온 것일까? 가끔 그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메고 있는 배낭의 앞, 뒤, 안, 바깥,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의 전, 후. 나와 다른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기준이 달라 말만 듣고 엉뚱한 공간을 헤매게 되는 경험. 장소에 대한 생각이 계속되는 와중에 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고, 다음에 집어든 책에 또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경험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 잘 알겠고, 그래서 이렇게 연결되는 지점들이 좋고. 책 읽기 만만세.

... 그런데 이젠 좀 미리 안 찾고 준비 안 하고 그냥 떠나는 여행도 하고 싶다. 성향상 아주 힘든 일이라 아직 실천해보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좀더 귀찮아지면, 그러면 그럴 날도 오지 않을까? 캐리어에 여행 짐 쌀 때가 제일 설레는데, 어딜 가지는 않지만 짐이라도 싸봐? ㅋㅋ 매일 동네 산책이나 거르지 말고 하삼. 걷기를 위해 걷기단련.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7-06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란 항상 자기가 갖지 못한걸 동경하는거 같아요. 제 삶에서는 공간의 이동이 거의 없어 정착민으로 쭉 살아왔는데 그러나보니ㅠ안제나 떠남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듯해요. 어떤 삶이든 그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얻는것이 있다는 건 자명하니ㅠ나머지 하나를 꿈꾸는 삶으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듯하달까.... ㅎㅎ

난티나무 2022-07-07 21:27   좋아요 0 | URL
‘어떤 삶이든 그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얻는 것이 있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이동의 기회가 적거나 없을 경우도 있겠군요. 맞아요, 이동 역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 문제 역시 개인마다 다양한 조건과 이유를 갖게 되겠네요.
꿈꾸는 삶!!

공쟝쟝 2022-07-0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저 사두고 앞부분만 보고 아직 안읽고 있어요. 이렇게 난티님 글로 읽으니... 참으로.. 미리 사두길 잘했다.. 보고 싶을 때 냉큼 꺼내 읽어야지!! ㅋㅋㅋ 솔닛은 정말 너무 좋죠 ㅜ 너무 좋음... 흑흑.. (저는 아마 현시점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솔닛이....)

난티나무 2022-07-07 21:28   좋아요 1 | URL
오 제일 좋아하는 작가!
<길 잃기 안내서> 읽으면서 깜놀 했잖아요. ㅎㅎㅎ 느무 잘 써서...
앞으로도 계속 솔닛 읽게 될 듯합니다.
공쟝쟝님 솔닛 책 다 갖고 계신 거예용?^^

공쟝쟝 2022-07-10 02:51   좋아요 0 | URL
아녀 ㅋㅋㅋ 다는 아니고 거의 다 갖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솔닛의 산문은 진짜 …… 아 ㅜㅜ 그는 어렵지 않지만 충분히 심오하고 충분히 심오하지만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해요 리베카 솔닛!!!

난티나무 2022-07-10 06:14   좋아요 0 | URL
저도 벌써 다섯 권... 있었는데 한 권 누구 줘버려서 네 권이네요.^^
어렵지 않지만 심오하고... 완전 공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