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투쟁 -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부터 삶의 보호까지 아우또노미아총서 71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이영주.김현지 옮김 / 갈무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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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부터 삶의 보호까지'이다. 

가사노동은 지금까지 수없이 논의되어왔고 그런 논의들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도 단어만 듣고도 어 그거, 하게 되었지만, 과연 우리는 가사노동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으며 여성에게 가사노동이 어떤 의미인지, 남성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 실상과 본질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말했는지,를 묻게 된다. 매번 여성의 '집안일'과 남성의 '바깥일'이 다르지 않고 남자도 똑같이 힘들다는 말을 들을 때, 그 다름을 어떻게 설명하고 표현해야 할 지 아득하기만 하다. 이 책의 한 구절을 옆지기에게 톡으로 보냈다가 본의 아니게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가사노동에 관한 구절)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문장 사이 거리를 온몸으로 느껴버렸다. 하나하나의 문장을 가지고 오래 이야기해야 했다. 이 거리는 평소 내가 가사노동의 분배와 재정립에 대해 생각할 때 뭔가 석연치 않다고 느꼈던 지점이기도 한 것 같다. (이전 페이퍼에서 나의 부족함이라고 썼었다. 일치한다.)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그러니까 내가 아직 납득하지 못했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결혼 계약의 '사랑과 관계된'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는, 가사노동을 이루는, 어떤 임금도 주어지지 않는 엄청나게 긴 노동 시간과 끝없는 과업들을 설명할 수 없다. - p.483 후주 부분의 문장.) 명쾌하게 짚어주는 책을 읽고 싶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혁명의 영점>을 다음주쯤 받을 것 같고 우에노 지즈코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을 예정인데 이 두 권이 좀 도움이 될지. (쉽다고 생각했던 저자의 글은 절대 쉬운 게 아니었다.)


이탈리아 페미니스트의 글은 처음이 아닌가 싶고, 이탈리아 페미니즘 운동 이야기도 처음이다. 그러고 보면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우리 나라 역사도 모르는데 오죽하랴. 반성반성. 미국, 영국, 프랑스 아닌 나라의 페미니즘 이야기를 읽으니 새로웠다고 해야 할까. 투쟁이 있었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투쟁이 승리한 결과를 보고 듣는 게 중요하다는 달라 코스따의 말은 옳다. 돌봄이나 재생산과 이민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눈이 번쩍 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반부터 계속 이어지는 토지 문제, 환경 문제가 크게 와닿았다. 며칠 전 본 다큐멘터리가 어쩔 수 없이 계속 떠올랐다.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우려했던 환경파괴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자연재해라 불리는 가뭄, 홍수, 산불, 지진 등의 횟수는 상상 이상으로 늘었고 각종 재해의 소식이 연이어 뉴스를 타고 흘러넘친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이제는 인재다. 지구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서 한쪽에서는 땅이 마르고 한쪽에서는 땅이 잠긴다. 꺼지지 않는 불이 산들을 집들을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따뜻해진 바다에서는 이미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해조류나 생선을 먹을 수 없게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출산 후 미역국을 끓여먹는 것이 당연한 우리 나라에서 미역이 사라진다면? 실제로 바다에서는 감태와 같은 해조류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성게를 먹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건 어떤 것 한두 가지를 먹고 못 먹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저자의 말처럼, 농사 지을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바다가 죽는다면,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소름이 돋았다. 개인적인 노력이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전세계의 협동이 필요한 일이고 거시적 정책이 필요한 일이다. 내 집은 괜찮다고, 내 나라는 괜찮다고, 어떻게 안심할 것인가? 환경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어째서 욕심은 환경을 외면하는가.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글들은 통렬하면서, 지금의 현실에 고개를 떨구게 한다.  


<페미니즘의 투쟁>은 페미니즘 책이다. 읽은 후에 왜 환경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페미니즘이 연결되지 않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겁이 많고 소심한 개인인 나는 이 거대하고 암울한 환경파괴문제(와 여기에 얽힌 수많은 갖가지 문제들 역시)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 그럴 흉내나 낼 수 있을지, 방법을 알 수 없다. 거대한 문제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가능할지, 어떻게 가능할지도.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기껏해야 거리 시위에 나갈 준비를 하'(p.41)는 사람으로 살면 되는가. 내가 만드는 투쟁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드는 투쟁의 마당에 발만 담그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 것인가. 핑계 같지만 아직 나도 나를 제대로 모른다고 말해 두자. 



* KBS 다큐인사이트에서 최근에 방영한 [붉은 지구] 4부작 영상을 첨부한다. 유튜브에서 '붉은 지구'로 검색해서 볼 수 있다. 








발전과 저발전을 한 단면으로 하는 자본주의 발전을 전체적으로 설펴보면, 우리가 자본주의 발전의 대가를 계속 지불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발전의 대가는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 P197

선진국 혹은 조금 덜 선진화된 국가의 시민들은 타인을 빈곤에 빠뜨리고 뿌리째 뽑아 쫓아내는 이런 유형의 사업에 자기도 모르게 돈을 댄다. 더욱이 그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기부금은 자신과 타인의 목에 부채라는 훨씬 더 무거운 맷돌을 매단다. - P238

그래서 나는 투쟁은 물론이고 투쟁이 거둔 승리를 사람들이 잘 아는 게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투쟁이 거둔 승리를 잘 알면, 자본은 전능하다는 자명해 보이는 사실이 힘을 잃고, 곧 닥쳐올 가장 높은 수준의 발전을 덜 신뢰하게 된다. - P239

살 수 있는 것이 독극물뿐이라면 임금이 무슨 소용인가? - P244

식량은 기본적인 인권이다. 왜냐하면 식량은 모든 권리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권리, 즉 다른 모든 권리를 좌우하는 생명권의 토대이기 떄문이다. (중략) 요컨대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살지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즉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을 먼저 찾아내지 않고서는, 그 밖에 다른 어떤 이야기를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는 모두 생존 문제에 종속된다. - P378

아주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어떤 여성도 임금이 없는 재생산 노동에 대항하는 투쟁을 가족의 안녕을 해치는 데까지 끌고 가진 않는다. (중략) 여성들은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드는 지점까지 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이는 재생산 노동을 둘러싼 투쟁에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계이다. (중략) 따라서 삶과 노동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조건을 달성하려면, 사안을 다른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말하자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모든 거짓된 해결책을 거부하겠다는 윤리적 다짐을 한 주체들이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 P398

청색 혁명이란 새우 양식이 주를 이루는 산업화된 수산 양식업을 말한다. 이 양식 유형은 인도뿐만 아니라 수많은 열대 국가에 자리 잡았다. 소비자들이 주로 선진국에 거주하는데도 이 양식 유형이 원칙적으로 개발도상국에 자리 잡은 이유는,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산업화된 새우 양식은 ‘먹튀‘ 산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보통 그 개발 지역을 바로 벗어나야 할 정도로 생태계가 황폐해지거나, 양식에 타격을 주는 전염병의 확산 혹은 시장 수요의 가변적인 속성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 P425

현재 이탈리아는 토양의 유기물 함량이 1% 미만으로, <유럽환경청>은 이탈리아를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으로 분류했다. - P445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에 이어 중국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유전자 변형 식품(주로 형질전환 쌀)을 많이 생산하는 국가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조제 보베는 "유전자 변형 식품 생산은 소농 2억5천만을 없애고 싶어 하는 중국 정부의 현행 논리와 일치한다"며, "하지만 소농들을 어디로 보내야 하나? 유전자 변형 식품 생산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고 말한다. (- 후주) -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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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28 2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300 쪽 남짓 읽고 있는데 토지 문제에 열변을 토하는 마리아로사에 고개 끄덕이고 있어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결국 거기가 아닌가 싶고요. 이 리뷰 참 좋아요, 난티나무 님. 감정적 동요도 얼마나 컸을까 짐작해 보게 되네요.

난티나무 2021-09-28 23:09   좋아요 0 | URL
감상에 불과한 글에 좋다고 해주시는 다락방님! 이 책을 읽으며 건진 큰 물음이 하나 있어 보람찬! 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