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제1편 형성 제1장 유년기 & 제2장 젊은 처녀
(매번 쓸 때마다 헷갈리는 내용 구분 용어들. 그리고 쓰면서 보니 '처녀'라는 단어가 거슬리는구나. 을유에서 나온 개정판은 어떤가 미리보기 하고 왔는데 똑같네.)
여자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읽었다. 요약하는 재주가 없어서 긴긴 내용을 정리하긴 어렵고 두루뭉술하게 느낌만 말한다면, 모조리 다 맞는 말은 아닌 듯하지만 생각의 깊이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정도가 되겠다. 어째서 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지 나의 상태가 매우 의심스럽다. 정리도 안 돼, 비판도 안 돼, 열렬한 찬사도 안 돼,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슬프다. 다른 분이 올리신 지난 번 분량의 정리글을 보니 아 내가 책을 읽기는 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인용구가 새로웠다. 이 무슨. 그러므로 이 책은 대충 한 번 읽어서는 안 된다? 을유 개정판 사야 한다? 나에게는 프랑스어판도 있다?
** "어머니와 딸의 복잡한 관계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딸은 어머니의 분신인 동시에 타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딸을 가슴깊이 사랑하는 동시에 딸에게 적대감을 품기도 한다. 어머니가 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강요한다. 이는 어머니 자신의 여자다움을 자랑스럽게 요구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고, 또 그 억울함에 복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356)
플래그 붙여둔 이 부분을 다시 보니 최근 읽은 소설 두 편이 저절로 떠오른다. 엄마와 딸의 관계. 뜬금없이 여기서 추천함. <엄마에 대하여> <밝은 밤>
보부아르가 나중에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뒷부분 궁금해짐. 엄청 알고 싶다. 엄마와 딸, 엄마와 나. 애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관계. 모두 엇비슷해 보이지만 비슷하지 않은, 관계들.
** "자기를 하나의 주체로, 자율성·절대성·초월성을 갖춘 존재로 느끼는 개인에게, 자기 안에서 열등성을 선천적 본질로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다. 일자(一者, 단 하나의 존재)‘로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설정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또한 스스로 타자로서 바라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다. 인생수업을 쌓아 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여자로서 자각했을 때, 소녀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녀가 속해 있는 환경은 남자의 세계에 의해 사방이 막혀 있고 제한되며, 지배되고 있다. 여자가 제아무리 높이 뛰어오르고 멀리 밀고 나아가더라도, 언제나 그녀의 머리 위에는 천장이 있고, 앞길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 남자가 받드는 신들은 저 멀리 하늘 위쪽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여자아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신들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이다." (377)
'인간의 얼굴을 한 신들'이라니! 이런 적확한 표현이라니.
** "체계적인 교육으로도 그 문제만은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말해 두어야겠다. 부모나 선생이 제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성적인 경험을 말이나 개념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그것을 경험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분석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더라도 유머러스한 일면이 있으므로 진리를 전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꽃의 시적인 연애와 물고기의 결혼에서 출발하여 병아리 고양이 염소를 거쳐 인류에까지 올라갔을 때, 우리는 생식의 신비를 충분히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적 쾌락과 성애의 신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조용한 피를 지닌 여자아이에게 애무와 키스의 쾌감을 어떻게 설명하랴? 가족끼리는 때로 키스를 입술로도 주고받는다. 그런데 왜 어떤 경우에는 이런 점막의 접촉이 황홀감을 낳는가? 그것은 장님에게 색채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색정작용(色情作用)에 그 의미와 통일성을 부여하는 직감적 흥분과 욕망이 결여되어 있는 한, 그 작용의 여러 가지 요소는 불쾌하고 괴상하게 보인다. "(385)
9월에 작은넘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올해 만 15세다. 모르는 사이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 너무 갑작스러워 처음엔 좀 당황했고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조금 후에 수많은 걱정들로 바뀌었다. 나는 무엇이 걱정스러운 걸까. 어째서 내 아이가 상처받을 일보다 그 여자아이가 상처받을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걸까. 아니 내 아이가 상처를 주는 사람일까 봐 두려운 건 아닌가. 이것 또한 편견은 아닐까.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의사소통과 배려와 공감의 태도를 내 아이가 어느 정도 성숙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혹은 전혀 성숙하지 못하게 표현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데서 첫번째 불안이 온다. 이것은 내가 충분히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반성하나 지금도 여전히 뭔가 제대로 되고 있지는 않은 것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집에서의 태도와 바깥에서의 태도는 다르리라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내 아이를 내가 믿지 못하는구나 싶은 질책.
두번째 불안은 역시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성' 관념이다. 임신과 출산이 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야기하고, '콘돔 없이는 섹스도 없다'를 외치는 나지만 실제 두 사람 사이의 섹스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준 것이 없다.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몸으로 나누는 사랑이며 기타등등 두루뭉술한 말들을 해왔지만 정작 갑자기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니 엄청난 조급함과 불안이 마구 피어오른다. 친구 집에서 밤샘파티를 한다고 하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미 방학 때 2번이나 다녀옴) 더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랑과 섹스가 무엇인지 새삼 잘 모르겠다. 젊을 때 탐구했어야 하는 주제를 외면(?)하고 살아와서 이제야 탐구 중이고 답을 찾기는 아직 어렵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뭐라고 딱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두려움. 그래도 아니라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지금껏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이 많다고, 너희는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 것들을 말하고 싶다.
385쪽의 인용구.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게릴라 교육이라도 해야지 싶고. 교육 말고 또 어떤 방법이 있겠나 싶고. 집에서 각개전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 웃프고. 나 어릴 때보다 세상은 더 노골적으로 이미지화했고. 매일 그것들을 접하고 사는 아이들의 정신을 붙잡으려는 노력은 왜 엄마인 나만 해야 하나 싶고. 이런 말들을 늘어놓으니 그저 신세한탄에 불과하다 싶고. 나는 이 이야기를 왜 했나 싶고. 돌고돌아 자책이구만. 쩝. 결론! 결국은 '관계'다. 관계에의 탐색. 그리고 성찰. 무엇이 평등이고 존중인지. 우정도 사랑도 섹스도 결국은 모두.
** "한편 여자는 자기에 대해서처럼 애인에 대해서도 수동적 대상이기 때문에, 그녀의 에로티시즘에는 처음부터 모호성이 존재한다. 복잡한 충동 속에서 여자는 자기 육체를 차지한 남성으로부터 자기 육체가 찬미되기를 바란다. 여자가 남성을 매혹하기 위하여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거나, 자기가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매혹하려고 애쓴다는 견해는 사실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여자는 자기 방 안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시도하는 살롱에서도, 남자에 대한 욕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425)
'모호성'에 동그라미를 쳤다. 모호성. 그렇다. 처음부터 모호성이 존재하는 에로티시즘. 플러스 엄청난 수동성. 두려움. 어린 아이일 때부터 온몸으로 습득된 이런 성향은 나이 50이 되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모호하다.
** "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녀가 갇혀 있는 영역 안에서는 무의미한 물음이다. 진실은 베일이 벗겨진 현실이다. 베일의 제거는 행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녀는 행동하지 않는다." (452)
이렇게 뼈를 때리는 말이 나오면 아프다. 행동.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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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와 성장기 이야기라 나의 어릴 때, 아이들 어릴 때, 지금의 나와 아이들, 그리고 엄마를 비롯한 수많은 여자들의 말과 행동을 책에 비추어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했다고 쓰면 좋겠다. 시도는 했다.^^ 여자아이들의 '인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고.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역시.
읽을 때 흠칫거리다가 다 읽고 정리 안 돼서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책이 너무 좋아서,가 아닌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지난달 한동안 컨디션 난조일 때 침대에 누워 책읽어 버릇했더니 중간중간 정리할 겨를이 없더라. 9월에도 그 버릇 못 고치고 있다가 이렇게 또 같은 실수를 한다. 문장을 잡고 늘어져봐. 노트랑 펜은 옆에 늘 준비하고. 응, 그럴게, 근데 그거 침대에서 해도 되잖아? 이렇게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악당 같으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