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신, 그래 나도 그거 예전에는 좋아했다. 말랑말랑했고 그런 말랑함을 꿈꾸기도. 실제로 해보니 뭐 별로 좋은 것도 없더만, 왤케 좋다고 막 극성인지 하고 생각하다가, 실제가 엉망(?)이니 환상을 갖는 거지 라고도 생각했다. 쟨 키스를 잘 하더라, 쟨 좀 엉망이던데, 이런 말을 하려면 걔랑 진짜로 해봐야 아는 거잖아. 그리고 잘 하는 건 누가 정하는 기준이냐, 개인마다 다르고  감정 따라 가는 거지. 라고 적다가 아니 그게 스킬도 조금은 중요한 거 아니냐 싶기도 해서 약간 혼란스럽네? 아무튼. 그럼에도 우리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보여주는 키스의 장면들을 보며 혹 하고 은근히 그것(환상)을 즐기며 평까지 하곤 하지. 

지난 주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나를 정말 딥하게 빡치게 만들었다. 익준아, 왜 그랬니. 사귈래 라는 말이 뽀뽀할래 라는 말은 아니잖아. 그거 멋있는 거 아니거든. 그동안 니가 지킨 선들은 다 어디 갔니. 예의는 어디 갔니. 결국 멋짐 뿜뿜하던 너의 캐릭터는 그 행동 하나로 이렇게 다 무너져버리는 거니. 그러고도 너는 너의 무너짐을 몰랐겠지. 바보 같은 채송화여. 아무 말도 못하는 채송화여. 채송화의 멋짐도 연애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단 한 명의 '여성' 의사였는데.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슬기로운 연애 생활(그것이 슬기로운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고)로 나갈 때부터 정이 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시즌 1의 안정원과 장겨울 장면들은 뭐 말 안 해도 가관) 이젠 아주 대놓고 가관이다. 이번 주 마지막 회에서도 역시 빡침은 계속되었다. 정말 몇십 년을 변하지 않는 클리셰의 찬란함이냐. 온갖 세상의 망설임은 다 제가 가진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캐릭터인 양석형은 어째서 키스신 장면에서만 망설임도 없이 동의도 없이 그냥 직진인 것이냐. 그걸 또 좋다고 받아주는 너 추민하, 너는 뭐냐. 하. 이제 정말 드라마 키스신 못 봐주겠다. 환타지 그만 좀 심어. 여자들아, 제발 그냥 다 받아주지 마. 

이쯤에서 예전에 본 드라마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웬일로 그 장면에서는 그동안의 클리셰를 한방에 깨버리는 남주의 대사가 나왔다. "뽀뽀해도 돼?" 나는 이 대사를 들으며 이제 우리 나라 드라마 키스신의 클리셰는 깨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만세! 드디어! 그.런.데. 물론이지,라고 대답하는 여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다음 말은. "다음부터는 안 물어봐도 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 나는 너무 성급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또다른 드라마의 장면 하나. 여주가 먼저 남주에게 달려(?)들어 무지막지하게 키스를 퍼붓는다. 분위기상 분명 여자가 '먼저', '자발적으로' 행동했고 (아 물론 예의바르게 남주를 동의시켰지) 키스신도 그렇게 흘러가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남주가 거기 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 것 같다. 왠지 '남자라면' 여자보다 더 박력있어야 해,라는 강박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짐작. 

가져오자면 한없이 줄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은 드라마 영화의 장면들, 이제 그만 좀 하자. 여자 남자들아 연애해라, 연애 그거 좋은 거야, 결혼도 해라, 여자는 이렇게 남자는 저렇게 행동해라, 이런 거 이런 식으로 같잖게 머리에 심어대지 마라. 안 보면 그만이라고? 안 본다고 주입당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텔레비전만 있던 시대가 아니다. 아이들은 영상 세대다.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영상의 홍수 속에 사는 세대다. 제발,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저거 아니야, 저러면 안 되는 거야, 나쁜 노므 셰키, 키스든 섹스든 둘이 하는 거지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저렇게 다 받아주면 안 돼, 저건 사랑이 아니야, 버럭버럭 부글부글 욕쟁이 엄마가 되는 일 좀 없어지면 좋겠다. 

그러려면 다르게 써야 하고 다르게 연출해야 한다. 여성 작가 여성 감독이라고 해서 모두가 "깨인" 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작가 더 많은 감독이 여성이어야 한다.(요즘 많아져서 즐겁지만 많이 소비되는가,에 있어서는...) 연애가 목적인 드라마 영화 말고 연애가 소재이더라도 환상을 심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는 드라마 영화가 필요하다. 좀더 나아가서 어떻게 키스하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섹스하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면 좋겠다. 이런 교육은 왜 없는지 통탄할 노릇이다. 전부 미디어로 보고 배워! 말도 못 꺼내게 해! 언제까지 이럴 건가. 욕이라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좋은 극본을 쓸 능력은 안 되니까, 이렇게라도 욕을 하고 지적질을 한다. 문제는 지적질 할 것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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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9-2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다 보진 않았지만ㅋㅋ(슬의 집안일할 때 켜둬요)ㅋㅋ스포당했네요.. ㅋㅋㅋ 익준아... 그리고 뭔말인지 알겄어여ㅋㅋㅋㅋ 저도 이 연출자들 드라마는 응답하라 때부터 (그게 컨셉인듯 하지만) 진짜 짝 못지어줘서 환장했나 이러면서 보긴해요. 보긴본다ㅋㅋ

난티나무 2021-09-29 15:13   좋아요 0 | URL
악 스포!! 근데 뭐 시작부터 이미 예견된 결말 아니었겠습니까.ㅠㅠ
맞아요 응답 시리즈도 그랬죠. 제가 버럭버럭하니까 옆지기가 그러더라고요. 응답 첫시작이 이미 결혼한 두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원래 짝짓기였다고..ㅎㅎㅎ